[인터뷰]20년 무명시인 림태주, 페북 친구 1만 3천명에 전한 이야기 에세이집으로 뜨거운 사랑 얻다

에세이집 "그토록 붉은 사랑" 발간한 림태주 작가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5.6.4/뉴스1 2015.06.04/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꽃들이 피어 서로 마주 보며 수화를 한다. 깔깔거리며 웃고, 장난치며 떠든다. 오래 참아서 그런가. 무진장 고요하게 시끄러운 저 꽃님들, 나를 보여주기 위해 너를 듣기 위해 사람은 너무 많은 말을 공중에 쏟아낸다. 사계절 내내 내보낸다.('그토록 붉은 사랑'에 실린 '수화' 중에서)

등단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시집 한 권 내지 않은 무명시인 림태주는 얼굴을 보면 70, 80년대 대학마다 한 명 이상 꼭 있었던 기인처럼 보인다. 4일 오후 서울 상수동의 꽃으로 가득한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어깨까지 오는 곱슬머리 단발을 초여름 바람에 한들거리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과 꽃, 글쓰기 그리고 페이스북에 대해 이야기했다. 간혹 노란 나비 흰나비가 꽃과 사랑에 '미친' 시인의 주변을 맴돌았다.

"5년전 출판사를 차린 후 페이스북을 하면서 책을 소개했지만 반응이 없었죠. 그래서 내 얘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평소에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틈틈이 글로 올렸더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약 3년 동안 페북에 올린 에세이를 추려 지난해 '이 미친 그리움'(예담)으로 펴냈어요. 이번에 낸 '그토록 붉은 사랑'(행성B잎새)은 30년 동안 겪었던 사랑과 이별 등을 정리한 것입니다."

림태주 시인은 1994년 황동규 시인의 추천으로 시단에 발을 들였지만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일단 등단후엔 어떤 문학단체에 속해야 하는데 패거리를 짓는 게 싫었고 먹고사는 문제로 직장을 다니니 자연히 작품과 멀어졌다. 재능있는 시인들이 많아 독자로 만족하며 살아왔다는 그는 "나를 절망하게 한 시인은 장석남 시인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산문을 발표하면서 그는 일약 무명시인에서 페이스북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현재 그의 페이스북 친구 수는 1만 3000명이다. 그가 글을 올리면 이들 친구중 10%정도가 '좋아요'를 누른다. 그 친구에게 친구 300명이 있다고 계산하면 30만명이 그의 글을 읽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에 열광적인 반응에 힘입어 낸 '이 미친 그리움'은 그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자연스레 서로 권하고, 친구에게 선물하면서 10쇄, 1만 5000부가 팔렸고 이번에 낸 책 '그토록 붉은 사랑'는 4쇄까지 찍었다.

시인은 "제 글의 자양분은 어머니에게서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텃밭에 야채를 전혀 심지 않고 장미랑, 국화, 온갖 꽃들을 심었습니다. 가을에는 꽃씨를 갈무리하고 봄에는 꽃씨를 뿌리고요. 그리고 어머니는 제게 늘 '정성껏 살아라'하고 말씀하셨어요. '정성껏' 산다는 것은 네 형편과 상황이라는 한도 내에서 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도 '최고가 되려고 하지도, 최선의 삶을 살려고 하지도 말라'고 말합니다. 최고가 되려는 삶은 경쟁상대를 눌러야 하는 고달픈 삶이지만 정성껏 사는 것은 각자 고요한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조화롭게 사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토록 붉은 사랑'은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보내라','너는 정성껏 살아라'로 맺은 어머니의 편지에서 시작해 '붉은 사랑의 사명을 마치고 당신 곁으로 가겠습니다'라는 아들이 쓴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로 끝난다. 두 편지 가운데 산문들은 얼마나 어머니 말대로 정성껏 사랑하며 살았는지 어머니에게 알리는 글들일 수도 있다.

어째서 아버지에 대한 글들은 별로 없는가, 하고 묻자 시인은"가산을 탕진하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을 고생시키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아버지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그간 아버지에 대한 글을 거의 쓰지 않았죠." 하고 말했다. 하지만 시인은 '그토록 붉은 사랑'에 아버지에 대한 글이 딱 하나 실려 있다고 덧붙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시겠다고 하는 아들들을 마다하고 빈 집을 지켜며 살고 있는 아버지가 밥먹는 것을 본 아들의 글이다.

"근처에 출장갈 일이 있어서 시골집에 들렀다가 아버지 혼자 앉아 쓸쓸하게 식사하는 뒷모습을 봤죠. 아버지는 같이 밥먹자고 했지만 같이 얼굴 맞대고 밥먹는 것이 편치않아서 밖에서 먹고왔다고 거짓말했어요. 아버지가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설겆이를 하려 하자 아버지는 저를 밀쳐내셨죠. 이건 내가 견뎌내야 할 몫이라고 말하는 듯이. 밥과 끼니는 다른 것 같아요. 아침을 먹었다고 점심을 건너 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은 밥이라는 에너지를 요구하고 있으니 안먹을 수는 없고… 아버지는 끼니를 잇는게 싫어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신 적도 있어요. 노인이 혼자 힘들고 외롭게 끼니를 이으며 사는 것을 보면서 저는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벌을 달게 받고 있구나. 내가 미워하지 않아도 되겠다, 용서해도 될 것 같다고 느꼈어요. 이때 느낀 감정을 '아버지에 대한 변명'에 담았죠. 오랫동안 불화해온 아버지와 일종의 화해를 한 것입니다. 그걸 쓰면서 울었어요."

시인은 다른 시인이나 소설가들에게는 대중에게로 내려와 작품활동을 하라고 권했다. "페북을 가상의 세계인 것처럼 말하는데 실제로는 체온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실제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리고 제가 페북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멀리 있던 시인이라는 존재가 가까이 느껴져서일겁니다. 이렇게 체온을 나눈 것이 보이지 않는 의리와 우정을 형성했고 이들이 책을 홍보해주고 사줘서 책이 많이 팔리게 된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들의 이름은 다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이다. 페이스북은 '얼굴책', 트위터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인 '트윗, 트윗'하는 소리를 딴 거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시인은 독자들에게 '내 탓'이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시인은 "출간된 후 책을 병원으로 보내달라, 고생하고 있는 아들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을 보면서, 고달프고 힘든 삶을 사는 분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그분들이 절대 '내 탓이다'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종교도, 국가도 자꾸 네 탓이라고 개인에게 말하는데 저는 이것이 체제와 종교, 교육, 기업, 자본가들의 '영업비밀'이라고 봅니다. 이래야 자신들의 책임이 없어지니까요. 남탓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책하지 말고 존엄을 스스로 세우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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