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세상, 서정시가 필요해"...문태준 시인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서정시의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는 문태준 시인이 여섯번째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을 냈다. 2012년 시집 '먼 곳'(창비)를 내놓은 후 3년만에 그간 쓴 61편의 비교적 짧은 시편들을 엮었다.
꽃과 열매, 수풀, 햇살, 겨울달이 나오는 그의 시는 투명하고 아름다워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목을 축이라고 내미는 한잔의 시원한 물같은 느낌이다. "시에게 간소한 옷을 입혀보려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지 않았나 싶다. 대상과 세계에게 솔직한 말을 걸고 싶었다. 둘러대지 말고 짧게 선명하게"라는 '시인의 말'처럼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다소 짧다. 하지만 그의 시는 김소월의 시처럼 짧고 단순하면서도 긴 음영을 드리운다. 짧아도 더 쓸 것 없이 꽉 차 있다.
예를 들어 '가을날'은 "아침에 단풍을 마주보고 저녁에 낙엽을 줍네/오늘은 백옥세탁소에 들러 맡겨둔 와이셔츠를 찾아온 일밖에 한 일이 없네/그러는 틈에 나무도 하늘도 바뀌었네('가을날' 전문)'라고 노래하며 문득 다가온 가을의 정취와 여백을 노래하고 있다. '백옥세탁소'에서의 '백옥'은 가을의 선득하고 맑은 공기를 연상시키고 '한 것 없는' 느릿한 속도 속에서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는 가을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강촌에서…수변시편 5' 역시 여백 속의 긴 여운을 보여주고 있다. '말수가 아주 적은 그와 강을 따라 걸었다/가도 가도 넓어져만 가는 강이었다/그러나 그는 충분히 이해되었다'('강촌에서…수변시편5' 전문)라며 군더더기 없는 미학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연속의 일부로서 스러질 수 밖에 없는 생명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담겨있는 강렬한 시도 그의 작품속에서 두드러진다. 병석에 누운 소중한 누군가를 바라보며 지은 듯한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은 가늘어지고 낮아지고 희미해지면서 잦아드는 생명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중략)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중략)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일부)라며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산문시 '조춘(早春)'에선 이른 봄 또는 퇴장하는 겨울의 끝머리에 내린 눈의 입장에서 사라져야 하는 운명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그대여, 하얀 눈뭉치를 창가 접시 위에 올려놓고 눈뭉치가 물이 되어 드러눕는 것을 보았습니다/눈뭉치는 하얗게 몸을 부수었습니다 스스로 부수면서 반쯤 허물어진 얼굴을 들어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내게 웅얼웅얼 무어라 말을 했으나 풀어져버렸습니다 나를 가엾게 바라보던 눈초리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라고 슬퍼한다.
이어 그는 "나는 한 접시 물로 돌아간 그대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제 내겐 의지할 것이 아무 데도 없습니다 눈뭉치이며 물의 유골인 나와도 이제 헤어지려 합니다('조춘' 전문)라며 '(겨울이 끝났기에) 의지할 곳 없는' 비탄과 김소월적인 '자학적인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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