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중혁 "카툰·음악·인터뷰·팟캐스트…부대껴야 글도 쓰죠"

제지·콘돔·간장·가방·엘피 등 공장 탐방기 '메이드 인 공장' 펴내

공장 탐방기 '메이드 인 공장'을 낸 소설가 김중혁ⓒ News1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어떤 소설가는 글을 쓰기 위해 칩거에 들어간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이방인의 나라로 날아가는 소설가도 있다. 감정을 방해받지 않으려고 사람과 지인이 없는 곳으로 글쓰기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어떤 소설가는 세상에 부대끼면서 글을 쓴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고정 게스트이자, 카툰과 음악에 소질을 보이며 글의 재료가 되는 만사에 호기심을 가진 소설가 김중혁이 그렇다.

"저한테는 소설을 쓰는 나와 에세이를 쓰는 나, 그림 그리는 내가 약간 다른 사람 같아요. 다양한 나에 늘 균형을 맞추려고 합니다. 몇 달 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소설을 쓰는 데 집중이 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더 부대끼고 느껴야 글도 잘 쓸 수 있어 고정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최근 나온 '메이드 인 공장'(한겨레출판)도 '인간 호기심 천국'이라 불리는 김중혁 작가가 발품을 판 결과물이다. 제지, 콘돔, 간장, 가방, 도자기, 엘피, 맥주, 라면 등 국내 15개 공장 탐방기로 한겨레 신문에 1년간 연재한 글을 엮었다.

"한겨레 21에 '감정이입'이라는 꼭지로 사물에 대한 카툰을 그리고 있을 때였어요. 그리다 보니 사물에 감정이입이 되는 느낌을 받았고 사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공장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한국적인 공장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았죠."

(한겨레 출판).ⓒ News1

공장은 작가의 의견, 지인과 공장 직원의 추천으로 결정됐다. 그 중 김중혁 작가가 직접 가보고 싶었던 곳은 제지, 초콜릿, 간장, 엘피 공장이었다고 한다. 이왕이면 작가의 관심사가 담긴, 그래서 해줄 이야기가 많은 공장을 방문했다.

"지구본 공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수작업이 많았습니다. 공장은 크지 않은데 오랫동안 같이 일한 사람들이 공장을 만드는 풍경이 공장스럽기도 하고 공장 같지 않기도 해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맥주 공장은 누구나 견학할 수 있는 시스템인 데다 맥주도 공짜로 마실 수 있어요. 맥주 애호가로서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공장에서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고 전문 용어를 익히고 공정을 지켜봤지만 글 쓰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는 "이 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사람의 이야기여야 하는가, 아니면 물건들의 세계사여야 하는가, 또는 공장의 구석구석을 바라보는 세심한 관찰기여야 하는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공장에 대해 쓰기에는 재밌는 글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고, 인터넷 검색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정이나 전문 용어는 의미가 없어보였다. 작가는 고민 끝에 정보들을 걸러내고 사물에 얽힌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담았다. 그래서 "이 책은 공장 탐방기가 아니라 공장 산책기"가 됐다.

"요즘 휴대전화나 자동차 등 자기 물건을 사귀듯이 함께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물에 대한 사랑은 깊은데 그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공감이 어떤 의미일지, 주변에 있는 사물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사물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등 인간의 공감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이야기도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메이드 인 공장'은 김중혁의 '사물 노트'가 됐다. 헛간에서 태어난 탄생기라던가 가방에 대한 그의 애착(자신을 '가방 중독자'라 소개한다) 등 가짜 같은 진짜 이야기가 담겼다.

"나는 가방을 집처럼 사용했지만, 어떤 사람은 가방을 방패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막고, 공격을 막고,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자괴감을 막고, 내가 남들에 비해 뒤처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막는, 방패처럼 사용되는 가방도 있다"(83쪽)고 가방이라는 공산품에 새로운 감정적 기능을 부여하기도 한다.

독자로서 가장 눈에 띄는 공장은 '김중혁의 글 공장'이다. 이 공장은 김중혁 작가가 한 편의 글을 제작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글감 분류실'을 지나 '숙성 창고'에서 숙성된 소재들은 '소설 공장'과 '수필 공장', '그림 공장' 등의 생산 라인으로 이동해 최종 상품이 돼 나온다.

카툰 연재가 공장 산책기로 이어졌듯, 이번 공장 산책기는 작가의 뇌관을 타고 또 다른 호기심을 만들어냈다. "'김중혁의 글 공장'을 쓰다 보니 이 이야기를 좀 더 길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작가는 최근 '창작의 비밀'이라는 연재를 시작했다. 음악, 그림, 무용 등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을 만나 창작의 비밀을 캐묻는 프로젝트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예술의 비전"보다 "사소하고 구체적인 창작의 비결, 작은 팁" 위주의 연재가 될 것 같다.

"생각나는 것들은 꾸준히 다 해나가고 있어요. (단 1회에 그쳤지만) 예전에 친구들이랑 했던 낭독 페스티벌처럼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 이런 경험이 제 소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소설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고, 소설의 대사나, 사소한 묘사 하나도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 해서 사람 만나는 일은 힘들어도 계속 할 겁니다."

letit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