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AI 바이오, K-바이오 도약의 두 번째 골든타임

권석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 인공지능(AI)과 바이오가 결합하면서 전 세계 연구실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알파폴드가 단백질 구조 예측의 난제를 돌파하고, AI 신약 플랫폼이 수 년 걸리던 후보물질 발굴을 몇 주 안에 끝내는 시대다. 문제는 이 패러다임 전환의 파도 위에 우리가 올라탈 수 있느냐, 아니면 완성된 플랫폼을 수입해 쓰는 '사용자 국가'로 남느냐다.
바이오 연구는 복잡한 생명 시스템을 대상으로 하기에 전통적인 실험 방식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해왔다. 하지만 AI 기술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AI 바이오헬스 시장 규모는 2023년 26조 원에서 2034년 8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향후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37%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AI 바이오가 현재 바이오 산업의 중심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의 출발선은 나쁘지 않다. AI를 활용한 바이오 논문과 특허는 이미 전 세계 중상위권 수준이고, 루닛, 뷰노와 같은 AI 헬스케어·신약개발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AI+과학기술 활성화 방안’, ‘AI 바이오 확산전략’을 통해 방향을 제시했고, 국가 바이오 데이터 스테이션과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같은 데이터 인프라도 활발하게 구축·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AI 바이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AI 중심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 200개에 총 180억 달러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투자금의 60%가 상위 20개 기업에 집중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AI 바이오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으며, 글로벌 빅파마들은 빅테크 기업과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생성형 AI 신약개발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또, 생물보안법 등 미·중 갈등이 생명공학 분야로 확대되면서 공급망 재편까지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AI 바이오 혁신의 중심축으로서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첫째, AI 기반의 혁신적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ETRI를 포함한 AI 전문 연구기관과 협력해 국내 최초의 바이오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국가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을 통해 AI가 설계한 실험을 로봇이 자동으로 수행·학습하는 차세대 AI 연구 플랫폼을 마련하고 있다. 셋째, AI 바이오 융합 생태계 조성을 위해 산·학·연·병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데이터·컴퓨팅·인재 등을 하나로 묶어 연계할 수 있도록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적인 추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과기정통부 주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주관으로 ‘2025 바이오미래포럼(B.U.I.L.D. AIxBio: 바이오 미래를 완성한다)’이 개최되었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이번 포럼은 생성형 AI 시대의 디지털 헬스케어, AI 신약개발, 정밀의학, 바이오 파운드리, 규제·윤리까지 한 자리에 모아 국가 전략과 현장 수요를 잇는 논의의 장이었다. AI 바이오 시대에 필요한 공감대와 정책 아젠다를 함께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 바이오 혁신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AI로 설계된 후보물질이 임상에 진입했고, AI 기반 정밀의료 기술이 진료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AI 모델과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 인재 생태계는 한 번 글로벌 주도권이 형성되면 뒤집기가 쉽지 않다. IT 혁명 초기에 과감한 도전으로 반도체와 모바일에서 선도국으로 올라섰던 경험을 바이오에서도 되풀이할 수 있을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AI 바이오는 K-바이오 도약의 두 번째 골든타임이다. 정부와 민간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과감하게 도전할 때, 우리는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라 기술패권을 주도하는 선도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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