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키를 쥐고 있다

(서울=뉴스1) 강은성 ICT과학부장 = 최근 미국 정부는 앤트로픽의 최상위 AI 모델인 '클로드 미토스5'와 '클로드 페이블5'의 수출을 금지하고 외국인의 이용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다소 충격적인 발표였고, 정부도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아주 뜬금없는 흐름은 아니었다.
앞서 이른바 '미토스 쇼크'로 AI발(發) 사이버 공격 위험이 불거졌을때, 우리 정부는 미국 기업인 앤트로픽과 미국 정부를 향해 '부디 우리도 끼워달라'며 미토스 쇼크 글로벌 대응반인 '프로젝트 글라스윙' 참여를 간곡히 요청했다.
수개월을 끈 협상 끝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인터넷진흥원(KISA)을 필두로 한 한국 정부의 프로젝트 글라스윙 참여가 가능해졌는데, 이 대목부터 벌써 AI가 국가의 전략자산으로 취급되는 현상을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미국 정부가 최상위 모델의 타국 이용을 제한한 것은 보다 노골적인 전략무기화로 보여진다.
앤트로픽의 최상위 모델 수출 제한이 과연 끝일까. 만약 오픈AI의 챗GPT와 구글의 제미나이, xAI의 그록 등 글로벌 최상위 모델 전체에 대해 미국이 하루아침에 이용을 제한한다면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반도체 수출 통제 역사가 있었듯 앞으로는 AI 모델 수출 통제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자 AI 모델 논쟁은 산업 경쟁력의 문제에 가까웠다. 이미 출발선이 한참 늦은 상황에서 독자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과연 경쟁력을 갖출수 있느냐, 효용이 있느냐는 냉소가 뒤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 주권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해외 기업이 제공하는 AI를 사용하는 것과, 독자 AI 모델을 가지고 필요할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정부가 이런 사태를 예견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추진중인 독자 AI 모델(소버린AI) 육성 전략은 꽤나 잘 준비한 정책이 되었다.
그런데 정책이 당위성을 얻었다고 해서 바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중국은 딥시크,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의 AI 모델로 미국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 이어 AI 강국 세계 2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양 국가는 서로를 강하게 의식하며 경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3대 AI 강국이 되는 것이 '목표'다. 독자 AI 모델이 그 목표에 다가서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지만, 현실에선 냉정하게도 미국과 중국에 비해 격차가 뚜렷하다. 정부가 수 조 원을 투입하고 GPU를 확보하는 이유도 결국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다만 많은 예산과 노력을 기울여 독자 AI 모델을 만들고 격차를 줄여 나간 그 이후에는 어떻게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출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근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그는 한국이 AI의 최고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혹자는 이 발언이 한국의 AI 기술에 대한 찬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젠슨 황이 주목한 부분은 다른데 있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제조업과 중공업, 전자와 소프트웨어, AI 역량이 한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결합돼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이러한 역량이 향후 로봇과 물리 AI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또한 한국의 원전과 에너지, 공장 건설 역량도 언급했다. AI 인프라는 결국 전력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같은 거대한 산업 기반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한국 산업이 오랫동안 성장해온 방식과도 닮아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개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가장 잘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CPU를 설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었다. 즉 생산과 제조에서 경쟁력을 보여온 나라가 한국이다.
젠슨 황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을 추격해야 하는 입장이면서도, 동시에 제조 역량과 에너지, 로봇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국가이기에 그 잠재력도 또한 크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했다. 무엇보다 K콘텐츠, 게임 등 문화 산업의 힘도 한국의 AI 저변을 이끌 수 있는 원동력으로 꼽았다.
AI 모델 하나만으로는 선두 국가를 따라잡는 것이 상당히 버거울수 있어도, 현재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인프라와 문화역량을 결합하면 의외로 글로벌 AI 3대 강국의 길은 생각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GPU 보유 숫자나 모델 랭킹 너머에 생각보다 많은 카드를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esth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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