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빠도 대단했지 참"…가족뮤지컬 '건전지아빠'[토요리뷰]

아빠의 무한한 헌신과 사랑을 그린 '건전지 아빠'
한국의 정서가 곳곳에 묻어나…"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뮤지컬"

'건전지 아빠' 공연장 이화여대 ECC 영산극장 ⓒ 뉴스1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가족 뮤지컬 '건전지 아빠' 공연장은 아이들로 가득했다. 어쩐지 유치한 소품들과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과연 이 공연을 즐겁게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웬걸, 시계를 한 번 보지도 않았는데 공연은 끝나가고 있었고 눈에선 눈물이 계속 흘렀다. '건전지 아빠' 속 젊은 아빠를 보는데 일흔을 넘긴 우리 아빠가 자꾸 겹쳐보였다.

전승배·강인숙 작가의 동명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을 원작으로 한 '건전지 아빠'는 NHN링크가 제작한 창작 뮤지컬이다. 24일까지 서울 이화여대 ECC 영산극장에서 공연한다.

가족뮤지컬 '건전지 아빠' 공연 사진 (NHN링크 제공)

주인공은 여섯살 아이 '동구'의 가족이다.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향한 아빠의 무한한 헌신과 사랑이 담겨 있다. 장난감, 리모컨, 도어락 등 생활 곳곳에서 묵묵히 작동하는 AA 건전지를 아빠의 모습에 빗대 '건전지 아빠'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어릴 적 우리 아빠는 일요일마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어디 놀러 가자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베란다 밖 주차장을 보면서 "다른 가족들은 다 놀러 가서 주차장에 차가 없다"며 투정을 부렸다. 그래도 누워서 야구를 보던 우리 아빠였다.

동구의 아빠를 보면서 눈물이 나는 건 색깔이 달라도 모두 '아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되고, 퇴직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돈을 벌어온 우리 아빠가 투영됐다. 동구의 아빠가 방전되는 모습에선 그 일요일이 떠올랐다. 투정 부리는 딸에게 화도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놀러 갈 힘은 없는 과거의 젊은 아빠 말이다.

한국에서 만든 뮤지컬답게 우리 정서가 곳곳에 묻어난다. 동구의 여름 방학엔 계곡에 놀러 가고, 밤엔 모기를 잡으려고 아빠가 전기채를 든 채 잠을 설친다. 딱 지금쯤 계곡에 수박을 띄워놓고 가족끼리 쪼개먹었던 그날이 생각나고, 걷기 싫다는 딸을 등에 업고 가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그 아빠의 모습이 겹쳤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뮤지컬을 즐긴다는 건 행운이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밖에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NHN링크는 최근 토니상을 수상한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적인 투자 이후 가족 뮤지컬 제작에 도전했다. 덕분에 누군가는 나처럼 무대를 보면서 '아빠'라는 존재를 다시 사랑하게 된 관객이 있을 거다.

eo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