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혁신형 제약기업 육성 '요란한 빈수레'

[뉴스1 창사 2주년 기획] 창조경제 로드맵을 짜자
시행1년...정책 실효성 논란

지난해 6월 보건복지부는 동아제약, 녹십자, 광동제약 등 43개 '혁신형 제약기업'을 선정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제약사들이 제네릭의약품(복제품) 위주의 제품생산과 영업경쟁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 육성하기 위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신청조건도 매출액에 따라 5~7% 이상을 의약품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으로 내걸었다.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되면, 연구개발비 지원은 물론 약가인하시 우대, 법인세와 소득세, 취득세, 등록면허세 등 각종 세제감면 혜택도 제공한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 제정했다.

정부자금지원에 대한 우선권도 부여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자금을 우선적으로 융자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한편 제약펀드를 조성해 이 펀드자금을 우선 투자받을 수 있도록 특혜를 줄 계획이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개발사업에서도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해 2점의 가산점을 주도록 했다.

지난 1월17일 제약협회에서 혁신형 제약기업 CEO 및 보건복지부 차관을 비롯한 관계자, 유관단체장들이 모여 신년 간담회를 열었다.(사진제공=한국제약협회) © News1

그러다보니,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에 수많은 제약사들이 몰려들었다. 일반제약사 50곳과 바이오벤처 23개, 다국적 제약사까지 뛰어들어, 경쟁률은 2대1에 달했다. 매출액 1000억원이 넘는 일반제약사에서는 LG생명과학, SK케미칼, 한미약품, 녹십자, 셀트리온 등 26개사가 선정됐고, 매출액 1000억원 미만인 중소제약사에서는 SK바이오팜과 삼양바이오팜, 한올바이오파마 등 10개사가 선정됐다. 또 바이오벤처에서는 기술력과 창의적 사업모델을 인정받은 크리스탈지노믹스와 바이로메드 등 6개사 선정됐고, 다국적 제약사로는 한국오츠카제약이 유일하게 선정됐다.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되면 3년간 효력이 유지되므로, 지난해 선정된 43개사는 2015년 6월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인증기업 자격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43개사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불법 리베이트 제공혐의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이 취소될 처지에 놓여있다. 혁신형 제약기업이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이 발각되면 인증을 취소하도록 규정을 마련해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된 제약사 가운데 인증이 취소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곳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인증취소되는 편이 낫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된 이후, 지난 1년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쥐꼬리' 지원금으로 제약사들의 애를 태웠고, 제약사들간의 소모적인 출혈경쟁은 나아지지 않았다.

◇혁신형 제약사로 선정되면 뭐하나…

보건복지부는 7월말 2차로 혁신형 제약기업을 선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해처럼 혁신형 제약기업에 신청하는 제약사가 많을지는 의문이다. 600여개에 이르는 국내 제약사 가운데 매출 1000억원을 넘는 제약사는 다국적 제약사를 제외하곤 32개에 불과한 게 우리나라 제약시장의 현실이다. 매출 1000억원이 넘는 제약사 가운데 1차로 혁신형 제약기업에 선정된 곳이 26개사기 때문에 2차 선정에서 '매출 1000억원 이상'을 만족시킬만한 제약사가 별로 없는 셈이다. 혁신형 제약기업을 43개나 선정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쥐꼬리' 연구개발 지원금도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혁신형 제약기업 지원금으로 349억원을 지급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자금은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등 각 부처에서 연구개발과제를 추진하면서 지원된 금액을 모두 합친 것이어서, 혁신형 제약기업을 위한 지원금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지난 1년간 혁신형 제약기업을 위해 배정된 예산은 지난달 발표한 국제공동연구지원사업이 유일하다. 보건복지부는 국제공동 연구개발비를 지원할 목적으로 이 사업에 6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연구내용에 따라 기업별로 총 3억원 이내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혁신형 제약기업들은 기업별 최대 3억원 지원이라는 정부 발표에 기막혀 했다.

제약사 관계자들은 "글로벌 공동연구와 인력교류 등을 지원하는게 사업목적이라고 하지만 기업당 최대 3억원은 너무 작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신약을 개발하려면 작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정부는 이런 현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업계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이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국제연구비 60억원을 몇 곳의 제약사에게 집중해 지원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기존의 정부 연구개발 사업과 차이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다"며 "국제사업의 씨앗이 되는 기술교류, 인재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낫다는 결론하에 최대 3억원씩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제약업체의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43개 혁신형 제약기업에 총 60억 지원

제약사들은 정부가 예산을 '나눠주기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제네릭의약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고작해야 1~2억원에 불과하지만,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1조원이 필요하다.

국내 제약사가 이 비용을 감당하면서 수년간 투자할만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는 게 제약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자금동원력이 높은 대기업이 뛰어들거나 정부가 작정하고 국책사업으로 육성하지 않는다면 '한국산 바이오의약품' 개발은 묘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고작 60억원을 43개 기업을 대상으로 '찔금' 지원해주는 것으로 제역할을 다했다고 말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라는 얘기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신약개발 등 혁신형 제약기업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제약사간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선발된 제약사에게 현실적인 지원금과 지원정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약사들 사이에선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사업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원되는 연구개발비가 '쥐꼬리'라면 다른 혜택이라도 푸짐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약속했던 '약가인하' 우대정책도 무용지물이 됐다. 일반제약기업의 복제약은 오리지널 약의 59.5% 수준으로 가격이 책정되는 데 반해, 혁신용 제약기업의 최초 복제약은 처음 1년간 오리지널 약의 68%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혜택을 주겠다고 했지만 제약시장의 과당경쟁으로 보장된 약가를 받지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오리지날 약 가격이 복제약의 가격과 비슷하게 된 상황에서 복제약이 살아남으려면 가격을 오리지널 약보다 더 내리는 수밖에 없다"며 "약을 판매하려면 약가를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혁신형 제약사가 약가인하 우대정책은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세제혜택도 특별한 게 없다는 게 중론이다. 보건복지부는 "전체 연구개발 사업 점유율에 혁신형 제약기업의 비중이 89%이므로 사실상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이라고 강조하지만, 제약사들은 "연구개발비에 대한 세제혜택이 확대됐다고 하지만 이 혜택은 혁신형 제약기업뿐 아니라 일반제약사들도 해당되는 사항이라 특별한 게 없다"고 했다.

이처럼 혁신형 제약기업의 실효성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보건복지부는 혁신형 제약기업이 받은 혜택에 대한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와 시기를 조율해 혁신형 제약기업의 지원사업에 대한 그동안의 성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련업계와 전문가들은 제약을 비롯해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육성하려면 정부가 '전시행정'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실효성있는 육성정책으로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국내 바이오산업의 현주소를 파악해서 우리나라에서 특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해 선택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fro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