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디지털 갈등 갈림길…韓, EU와 달리 아직 시간 있다"[일문일답]

[인터뷰]나이젤 코리 美 아시아정책연구소 연구원
"韓, 美와의 기술·통상 관계 향방 결정할 양갈래길 놓일 것"

나이젤 코리(Nigel Cory)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소(NBR) 객원연구원

(서울=뉴스1) 이민주 기자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특정 사건 하나의 결론보다 규제가 적용되는 절차와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나이젤 코리(Nigel Cory)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소(NBR) 객원연구원은 현재 한미 간 디지털 규제 갈등을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진단했다. 구글과 쿠팡 등 개별 기업에 대한 규제를 넘어 미국 정부와 의회가 한국의 규제 환경과 집행 방식 전반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코리 연구원은 디지털 무역과 데이터 정책을 연구해 온 통상 전문가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무역정책 부소장 등을 지냈으며 최근에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법 집행이 미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다뤄왔다.

미국 기업 관계자와 변호사 등을 직접 인터뷰해 한국 공정위의 조사·제재 절차와 기업 방어권 문제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고,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한국의 규제가 한미 경제·기술 협력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코리 연구원은 지난 3일 뉴스1과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한 단독 인터뷰에서 향후 수개월이 한미 양국간 디지털 갈등의 향방을 가를 수 있다고 봤다.

그가 꼽은 첫 번째 변수는 공정위가 심의 중인 구글의 'GVP'(Games Velocity Program) 사건이다. 과징금 규모뿐 아니라 제재 시점과 공정위가 결과를 발표하는 방식까지 미국이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11일 시행을 앞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도 거론했다. 반복적이거나 중대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해 기업 전체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제도에 미국 정부와 의회가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이 유럽연합(EU)의 디지털 규제에 무역법 301조를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지도 변수로 꼽았다. 미국의 대EU 대응이 향후 한국에 유사한 통상 조치를 취할지를 가늠할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한국 국회에서 추가적인 플랫폼 규제가 입법될지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코리 연구원은 "한국은 EU와 달리 아직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코리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최근 한미 간 디지털 규제 갈등을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보고 있나.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본다. 이제는 기술 정책 차원의 논의를 넘어 정치와 통상의 문제로 확대됐다. 디지털 관련 이슈가 교역 협상의 대상으로 올라왔고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 미 의회에서도 한국의 규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약 3755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해 쿠팡에 6246억81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두고 미국 정치권에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미 행정부와 의회 등에서는 쿠팡에 대한 조사와 제재를 미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타겟팅'으로 보고 있다. 다만 쿠팡은 최근 부각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더 이상 개별적인 케이스로 보지 않고 한국 공정위와 규제 당국이 미국 기업을 대하는 과정에서 반복된 이력과 패턴이 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의 미국 기업 대상 제재뿐 아니라 클라우드 보안 인증과 지도 데이터 반출 규제 플랫폼 규제 등에서도 미국 기술기업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우려가 누적돼 있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사건 이후 고액 과징금과 추가 입법으로 규제가 확장되는 흐름도 미국에서는 문제로 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 의회의 쿠팡 관련 문제 제기에 쿠팡 측 주장이 일방적으로 반영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 의회의 문제 제기가 쿠팡의 이해관계나 로비에 과도하게 영향을 받았다는 비판은 어떻게 보나.

▶쿠팡이 워싱턴에서 자신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쿠팡은 최근 사례이기 때문에 지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지,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미국 기업의 변호사와 임직원들을 만났을 때 공정위로부터 불공정한 처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들었다. 이들은 쿠팡이 받고 있는 처우와 비슷한 경험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쿠팡이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공정위가 미국 기술기업들을 대했던 일련의 이력 가운데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미국 정부가 디지털 교역과 미국 기술기업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맥락도 있다고 생각한다.

-쿠팡과 미국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의 조사·제재를 문제 삼을 때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반면 미국에서 진행 중인 개인정보 유출 소송에서는 사업과 사건의 중심이 한국에 있다는 논리로 미국 법원의 관할권을 다투고 있다. 사안에 따라 '미국 기업'과 '한국 중심 기업'이라는 논리를 달리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쿠팡의 역사와 한국과 미국에서의 사업 등을 생각하면 공정위가 쿠팡을 어떻게 대하고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이야기할 때도 쿠팡이 양국의 교역과 기술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안이기 때문에 쿠팡 문제를 잠시 제쳐두고 논의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쿠팡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쿠팡의 역사나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을 모두 제외하고 공정위의 미국 기업에 대한 처우만 보더라도 구글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여러 사례가 있었다. 쿠팡은 그 긴 이력 가운데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본다. 한미 기술·교역 관계에서 갑자기 등장한 독특한 사건이라기보다 이전부터 이어져 온 문제의 연장선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공정위가 현재 구글의 게임사 대상 'GVP'(Games Velocity Program) 계약이 경쟁 앱마켓의 사업 활동을 방해했는지를 심의하고 있다. 현행법상 최대 8500억 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데 실제 대규모 과징금이 확정될 경우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보나.

▶미국 정부와 의회가 아주 신속하고 분명하게 대응할 것으로 생각한다. 최대치에 가까운 과징금이 부과되면 미국에서는 이를 통상적인 경쟁법 집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과징금의 규모와 부과 시점 그리고 공정위가 이를 어떤 방식으로 발표하는지도 중요하다. 특히 최근 미국 정부가 유럽연합(EU)의 미국 기술기업 제재에 강하게 대응하고 있는 시기인 만큼 한국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미국이 한국의 규제를 '차별적 규제'나 '무역장벽'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미국 기업도 한국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 다만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특정 사건 하나의 결론보다 규제가 적용되는 절차와 반복되는 패턴이다. 미국은 같은 사안에서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에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 조사와 제재 절차가 불공정하게 적용되는지 규제 설계 자체가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여러 부처가 특정 미국 기업을 동시에 조사하는지 등을 살펴본다. 표면적으로 법이 중립적이더라도 실제 집행 과정에서 미국 기업이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지가 중요하다.

-한국 공정위의 조사 방식은 미국이나 EU 등 주요 경쟁당국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미국 기업들에 어느 나라 경쟁당국을 상대하기 가장 어렵냐(challenge)고 물으면 한국 공정위라는 답이 나온다. EU에서도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지만 한국 공정위의 조사 절차와 방식은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투명성과 적법절차다. 기업이 왜 조사를 받는지 어떤 혐의가 적용됐는지 조사 근거가 무엇인지 충분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 조사가 시작된 뒤에도 여러 정보를 조각조각 모아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EU에서는 조사 대상 기업이 사건 파일에 접근해 조사 이유와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조사 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판단하거나 조사 범위를 벗어난 자료를 요구받더라도 법원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다른 국가에서는 정보나 자료가 유출될 위험이 있을 때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기습조사가 한국에서는 비교적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기업에 압박을 주거나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다른 국가에서는 경쟁당국의 조사와 제재가 형사절차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한국에서는 기업 임원이 형사사건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조사 방식에 더해 적법절차를 통해 기업 스스로를 보호할 법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 미국 기업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디지털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하면 한미 간 AI·반도체·데이터센터 등 기술 협력이나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나.

▶그럴 수 있다. 미국 기술기업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그 전제는 한국 시장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규제나 법 집행 과정에서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가 커지면 향후 투자 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기업들과 이야기해 보면 한국을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가 높은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신규 제품이나 AI 관련 서비스를 한국에 출시할지 또는 언제 출시할지를 늦춰 지켜볼 수 있고 아예 출시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반대로 한미 간 경제·기술적 상호의존이 갈등 확산을 막는 완충장치가 될 가능성은 없나.

▶그런 측면도 있다. 한미 기술기업 간 관계와 투자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고 한국이 미국의 AI와 첨단기술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는 한국의 규제 문제를 제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동시에 한미 간 대규모 기술 투자와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호의존은 양국 관계의 버퍼(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다는 인식이 계속 커지면 미국이 상호성의 관점에서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향후 수개월간 한미 디지털 규제 갈등이 실제 통상 갈등으로 확대될지를 가늠하려면 무엇을 주목해야 하나.

▶우선 공정위가 구글 GVP 제재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봐야 한다. 과징금 규모와 제재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발표하는지를 미국이 면밀히 지켜볼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미국이 한국을 EU와 유사하게 대우할지를 판단할 수 있다.

또 9월 11일부터 시행되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최대 매출액 10% 과징금 제도에도 미국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미국이 EU의 디지털 규제에 무역법 301조를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지도 중요하다. 그 대응에 따라 한국에도 디지털 규제를 이유로 301조를 적용할지 지켜봐야 한다.

여기에 한국 국회에서 추가적인 플랫폼 규제가 나올지도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플랫폼 규제가 입법되면 공정위가 미국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디지털 규제 갈등을 줄이기 위해 한국이 우선적으로 무엇을 바꿔야 한다고 보나.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비차별 원칙을 문서상으로만 두지 말고 실제 규제 집행에서도 적용해야 한다. 적법절차도 보장해야 한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조사 내용을 고지하고 기업이 관련 정보와 증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당한 조사나 요구를 받았다고 판단할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공정위 조사와 제재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회사들이 클라우드 기반 AI 보안 도구를 활용할 수 있도록 물리적 망분리 규제의 예외를 허용한 것처럼 공공 분야의 클라우드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규제와 관련한 장벽도 낮춰야 한다.

플랫폼 규제 역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한국 시장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본다.

한미 양국이 디지털과 기술 현안을 상시 논의할 수 있는 정부 간 대화 창구도 필요하다. AI와 반도체 클라우드 사이버보안 등 협력할 분야가 많은 만큼 새로운 규제나 입법이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충분히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EU와 달리 아직 방향을 바꿀 시간과 기회가 남아 있다. 규제와 제도를 개선한다면 미국과 기술·통상 분야에서 더 많은 협력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반대로 이런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미 관계가 양갈래길에 놓일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진정한 파트너로 볼지 아니면 혜택을 받으면서 미국 기업에는 징벌적인 조치를 하는 국가로 볼지가 결정될 수 있다.

-한국이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설계하거나 집행할 때 미중 기술 경쟁이나 경제안보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보나.

▶미중 기술 경쟁은 미국 의회에서 드물게 양당의 지지를 받는 이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같은 국가의 규제 조치가 미국 기업의 혁신과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한국의 규제로 미국 기업의 활동이 위축되는 사이 중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볼 가능성에 민감하다. 실제 한국이 중국 기업에 혜택을 주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한국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추가 규제가 시행되고 그 결과 중국 기업의 한국 시장 진입이나 사업 확대가 쉬워진다면 미국에서 추가적인 관심과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이젤 코리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소(NBR) 객원연구원 약력

△現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소(NBR) 객원연구원

△現 크로웰 글로벌 어드바이저스 디렉터

△前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무역·디지털 정책 담당

△前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동남아시아 프로그램 연구원

△前 호주 외교통상부 근무

△조지타운대학교 공공정책 석사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국제비즈니스·상학 학사

minj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