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미국기업을 '차별'하고 있다[강은성의 감]

'무역장벽'이라는 망사용료, 정작 내는 곳은 한국기업뿐
韓 기업이 지는 규제·의무, 美 기업은 회피함으로 '차별'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대한민국은 미국 기업을 '차별'하고 있다. 적어도 미국 정부와 의회는 그렇게 주장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의 망 이용대가에 대해 '터무니없는 무역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미국 의회의 일부 의원들은 한국 정부가 애플, 구글, 메타, 쿠팡 등 미국 기업을 체계적으로 겨냥하고 있다며 주미 한국대사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서도 한국이 이를 빌미로 '정부 전체 차원의 공격'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이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압박하는 나라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 시장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들여다보면 이 '차별'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같은 韓 시장, 다른 세금 부담…네이버는 32배 더 냈다

넷플릭스 사례부터 보자.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넷플릭스 한국 법인에 부과된 세금 762억 원 중 687억 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법원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시장의 결과는 별개의 문제다. 넷플릭스의 한국 이용자는 1600만 명에 달한다는 시장조사가 있다. 매출과 이익이 해외 관계사 구조를 통해 설계되면 한국 과세망은 제한적으로만 작동한다. 국내 OTT 사업자들은 한국 법인에 매출과 비용, 이익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잡힌다. 같은 한국 이용자를 상대로 경쟁하지만, 세금을 내는 구조는 딴판이다.

구글도 마찬가지다. 구글코리아의 지난해 법인세 납부액은 약 187억 원이었다. 구글클라우드코리아와 구글페이먼트코리아까지 합친 국내 3개 법인의 법인세는 약 283억 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경쟁사 네이버(035420)는 지난해 매출 12조350억 원, 영업이익 2조2081억 원을 기록하며 법인세 6014억 원을 냈다. 구글코리아 단독 법인세와 비교하면 네이버는 구글보다 약 32배 많은 세금을 냈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무역장벽'이라는 망사용료, 정작 내는 곳은 한국기업뿐

미국 무역대표부가 지적한 망 이용대가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측은 한국이 인터넷 트래픽 전송에 별도 비용을 부과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주장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뉴스1> 취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2012년 코젠트와 프랑스텔레콤·오랑주 간 피어링 분쟁에서 오랑주의 추가 용량 과금이 이뤄졌다. 독일에서는 메타 자회사가 도이치텔레콤의 피어링 포인트를 이용한 대가로 약 3000만 유로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미국내에서도 망 이용대가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4년 컴캐스트와 직접 접속 계약을 맺으며 망 이용대가를 내고 있으며 이어 버라이즌, AT&T와도 유료 피어링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에서는 국내 통신사와 국내 콘텐츠·플랫폼 기업들이 시장에서 망 이용과 관련한 비용을 계약으로 부담하고 있다. 네이버, 숲(067160)(SOOP) 등 국내 사업자는 한국 통신망 위에서 사업하면서 비용을 지불한다.

반면 글로벌 빅테크는 캐시서버, 해외 계약, 글로벌 백본망 등 구조를 활용해 비용 부담을 최소화해 왔다. 법률상 국적 차별 규정이 없더라도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과 해외 빅테크 사이에 부담의 비대칭이 생긴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망 이용대가가 '터무니없는 무역장벽'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 넷플릭스와 유튜브, 구글 서비스가 차단되거나 실질적으로 배제된 적은 없다.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압도적이다. ‘무역장벽’이라는 표현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통신사는 '조단위 보상' 하는데 '쿠폰 보상'하는 쿠팡이 차별?

개인정보 유출과 보상 문제로 가면 역설은 더 커진다.

SK텔레콤(017670)은 지난해 해킹에 따른 정보유출 사고 이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134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피해 이용자 1인당 10만 원 상당의 보상을 권고했다. 이 결정이 전체 피해자에게 확대될 경우 보상 규모는 약 2조3000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신규가입자 모집중단, 위약금 면제에 따른 가입자 이탈 등을 고려하면 SK텔레콤이 정보유출로 감당한 대가는 천문학적이었다.

쿠팡은 3370만 명의 고객 정보 유출 사건 이후 1인당 총 5만 원 상당의 쿠폰 보상안을 내놨다. 구성은 쿠팡 일반 상품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여행상품 2만 원, 럭셔리 뷰티·패션 플랫폼 2만 원 쿠폰이었다. 소비자단체에서는 이를 실질 보상이라기보다 매출 유도형 쿠폰으로 보는 비판이 나왔다.

물론 통신사 해킹 사고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안을 1대1로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산업 구조와 적용 법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용자 피해 규모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때, 국내 기업과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보상 압박의 체감 온도차가 크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서울의 한 SKT대리점. 2025.11.21 ⓒ 뉴스1 구윤성 기자
韓 기업이 지는 규제·의무, 美 기업은 회피함으로 '차별'

이것은 단순한 통상 논쟁이 아니다. 한국 시장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다.

통신망 투자는 국내 통신사가 한다. 규제 부담은 국내 기업이 먼저 진다.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면 국내 기업은 과징금과 집단 보상 압박을 받는다. 세금도 국내 기업이 훨씬 많이 낸다.

글로벌 빅테크는 같은 시장에서 같은 이용자를 상대로 사업하면서 시장을 압도적으로 점유하고 있음에도 한국내 사업에 따른 의무의 상당 부분을 피해 간다.

한국 시장에서 국내 기업은 국내 규제, 세금, 망 비용, 정치적 압박을 정면으로 받는 반면 미국 기업은 매출 인식 구조, 조세조약, 글로벌 서버·계약 구조, 외교적 지원을 활용해 부담을 줄인다는 얘기다.

그리고 한국이 이 불균형을 시정하려 할 때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를 ‘미국 기업 차별’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미국 기업을 차별하고 있는가. 아니면 미국 기업에 대해서만 유독 조심스럽고, 국내 기업에 대해서만 유독 엄격한 시장을 방치하고 있는가.

차별은 법 조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세금, 비용, 제재, 보상 책임이 구조적으로 다르다면 그것도 차별이다. 국적 중립이라는 말만으로 결과의 비대칭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해서는 안되지만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한국 시장의 기본 비용을 비켜가게 해서도 안 된다.

한국 정부와 국회가 따져야 할 것은 하나다. 한국 이용자로 돈을 벌고, 한국 통신망 위에서 사업하고, 한국 소비자 정보를 다루는 기업이라면 국적과 관계없이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미국 측에 묻는다. 누가 정말 차별을 받고 있는가.

esth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