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 상장폐지·세그먼트 개편에 "둑 너무 높이면 물길 말라"

프리미엄·스탠다드 분리·상폐 요건 강화시 회수 시장 위축 우려
'정량 지표 일변' 상폐 요건 벤처 직격탄…상설 정책협의체 제시

송병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2026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6.10 (벤처기업협회 제공)

(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 벤처·스타트업 3개 단체가 금융당국의 코스닥 세그먼트 도입과 상장폐지 요건 강화에 "방향은 공감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책 취지는 인정하지만, 현안대로 밀어붙일 경우 혁신기업 자금조달과 벤처투자 회수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코스닥 세그먼트, 서열화·낙인 우려

벤처기업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 그랜드 스테이션홀에서 '혁신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자본시장'을 주제로 공동 정책제안 기자간담회를 열고 금융당국에 자본시장 개편 관련 5대 정책과제를 공식 제안했다.

협단체들은 정부가 코스닥을 자본시장 개혁의 핵심 의제로 올린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규제·관리 중심 개편은 코스닥의 자본조달·회수 기능을 함께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 단체가 첫손에 꼽은 것은 코스닥 세그먼트 도입안이다. 코스닥을 '프리미엄'과 '스탠다드'로 나누는 방안은 시행을 유예하고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리미엄·스탠다드 이원화가 시장 내 서열화를 고착화하고, 스탠다드 편입 기업을 사실상 '비우량'으로 낙인찍어 기관투자자 관심이 떨어지고 유동성이 마르며 기업가치 저평가와 후속 자금조달 애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이 13일 서울 강남구 트레이드 타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3.14 ⓒ 뉴스1 김명섭 기자

상장폐지 요건 강화와 관련 우려도 크다. 금융당국은 △시가총액 △주가 △자본잠식 △공시 위반 등 상장폐지 요건을 단계적으로 강화해 좀비기업과 부실 상장사를 신속 퇴출하는 방안을 예고한 상태다. 코스닥의 경우 시가총액 기준을 2027년 1월 1일부터 300억 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협단체들은 "부실기업 퇴출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정량 지표만으로 혁신기업의 미래 가치를 판단해선 안 된다"며 "상장폐지 기준에 근접한 기업이 시장에서 상장폐지 우려 기업으로 낙인찍히면서 선제적 매도와 주가 급락, 자금조달 악순환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2027년 예정된 시가총액 300억 원 상장유지 기준 적용을 유예하고, 업종·성장단계 특성을 반영한 재검토를 요구했다.

규제 강화·지원정책 병행 필요

중복상장 금지 추진과 관련해서도 예외 규정 마련을 주문했다. 업계는 규제 기준을 '중복상장 여부'에 둘 것이 아닌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여부, 일반주주 보호장치, 사업 독립성 등을 종합 평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벤처·혁신성장 기업, 국가전략산업, 벤처캐피털(VC) 투자기업 등에는 별도 심사트랙과 예외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전했다.

코스닥 개편은 현재 상장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짚었다. 협단체들은 "코스닥은 단순한 주식거래 시장이 아니라 벤처기업의 자본조달 창구이자 벤처투자의 핵심 회수 무대, 혁신경제 성장 인프라"라며 "코스닥 개편은 상장사만의 이슈가 아니라 상장 준비 기업, 예비 창업가, VC, 나아가 회수와 재투자로 이어지는 생태계 전체 문제"라고 설명했다.

최근 4년간 기술특례 상장 127개사 중 114개사(89.8%)가 벤처기업이라는 점도 제시했다.

김재원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이 11일 오후 서울 강남 씨스퀘어에서 열린 AXIS 2026 KSF Startup-led AI Summit에서 발언하고 있다.(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제공)

협단체들은 정책 입안 초기부터 업계와 충분히 소통했다면 지금과 같은 현장의 불안은 줄었을 것이라며 금융당국에 실질적 소통과 전향적 의견 반영을 요청했다. 5대 과제로는 △코스닥 세그먼트 시행 유예 및 재검토 △중복상장 금지 예외 적용 △상장폐지 요건 시행 유예 및 기준 재고 △정책협의체 상설화 △기술특례상장 제도 보완 등을 제안했다.

아울러 금융당국, 한국거래소, 중소벤처기업부, 벤처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상설 정책협의체를 통해 자본시장 제도 개편 전 사전 의견수렴과 영향평가를 정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특례상장 제도와 관련해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검증 강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본래 취지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을 겨냥한 별도 정책지원사업 신설 요구도 나왔다. 협단체들은 "상장 전후 벤처기업의 공시, 회계, 법률, 금융규제 대응과 상장 유지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상장 적합성 진단, 기술특례 준비, 상장 이후 스케일업 전략, 자본시장 이슈 대응 역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코스닥 활성화는 지난 20여 년간 어느 정부도 풀지 못한 오래된 과제"라며 "현 정부가 코스닥 개편 의지를 보인 점은 평가하지만, 지수 상승 이면의 양극화 심화와 낙인 효과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코스닥은 대체 불가능한 핵심 회수 무대"라며 "세그먼트 분리와 중복상장 일률 규제가 모험자본 생태계 자금 순환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김재원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은 "규제는 시장을 지키는 둑이지만 너무 높이면 물길마저 마른다"며 "부실은 정리하되 혁신기업 자금조달 통로는 지켜 달라"고 했다.

ideae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