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의 주주환원 인식…자사주 소각 의무화 계기로 바꿔야"
[자사주 쌓아둔 中企]⑬ 뉴스1 전문가 좌담회(下)
"자사주 취득 줄어들 것"vs"소각은 지배주주에도 좋은 일"
- 이정후 기자, 장시온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장시온 기자 =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담긴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것을 두고 경영계와 전문가 집단은 주주 환원에 대한 기업 경영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일부 공감대를 형성했다.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기업인들의 자발적인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했다는 것이다.
다만 '각론'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경영계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전문가들은 이미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고 판단했다.
1·2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만큼 3차 상법 개정안 통과도 유력한 가운데 경영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시 향후 기업의 자사주 취득이 줄어 오히려 주주 환원 효과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은 벌써 자사주 취득 및 소각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경영계가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1은 그간 진행해 온 [자사주 쌓아둔 中企] 기획의 일환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발의된 직후인 지난 26일 경영계 대표 단체와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좌담회를 진행했다.
특히 관심과 견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 상장회사의 경우 이번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으로 인해 경영 전략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를 초청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을 두고 입법이 능사는 아니라는 데 전체적으로 공감했다.
다만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와 소액주주 대표 측은 일부 기업들이 주주 환원 요구를 외면하고 경영권 강화에만 써 왔기에 소각 의무화 법안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액주주 대표로 참석한 이상목 액트 대표는 "기업들이 그동안 자사주를 정말 예외적으로만 활용했다면 소각 의무화 법안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자사주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니 소각 의무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형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역시 "입법이나 규제로 해결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동안 주주들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사주 소각 의무를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그동안 일부 기업들의 일탈 행위가 부적절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주주들의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하는 게 먼저 필요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송승혁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 금융산업팀장은 "최근 금융감독원이 교환사채 발행을 못하게 하니 기업들이 실제로 발행하지 않는다. 법이 강제하지 않더라도 제동을 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자사주를 소각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강제하는 건 방법론에서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영계와 전문가들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먼저 경영계는 법안 통과 시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1월 13일 자사주 10% 이상 보유 상장사 104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1%는 '향후 자사주 취득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박화선 중소기업중앙회 기업성장실장은 "기업의 자사주 취득이 소극적으로 변하면 주주가치 제고 수단이 줄어 결국 주주들에게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지난 상법 개정안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도 확대된 상황에서 자사주 활용 폭을 넓혀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경영에 자사주를 최소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소각 예외 사항을 좀 더 넓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승혁 팀장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적용 시점에서 단기적이고 일회성으로 주가 부양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계속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며 "소각 의무 예외 사항을 넓고 유연하게 인정해 주고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독일처럼 자사주 보유율을 자본금의 10%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3년 이내에 처분해야 하는 방안 등을 절충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주주 환원에 대한 경영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사내 유보금을 쌓아만 두고 주주들과 나누지 않은 일부 기업의 행태가 지금의 소각 의무화 법안까지 이끌었다는 지적이다.
이번 기획 전편을 자문했던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회계사는 "자사주 취득은 '의식적으로' 소각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자사주를 쌓아두고 있는 것은 회계적으로 기업에 득 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자사주는 발행주식 수 내에는 있지만 유통주식수에서는 빠지고 사업보고서에서도 다 마이너스로 처리되고 배당도 제한되고 의결권도 없다"면서 "회사 입장에서는 회삿돈을 들여 자사주를 사왔지만 아무 쓸모없는 자산을 들고 있는 것인 셈"이라고 짚었다.
이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소액주주의 주식가치 상승과 마찬가지로 지배주주의 지분도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진이 의식적으로 '자사주는 소각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김형균 한국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경영자는 이익으로 사업에 투자할지, M&A로 성장 동력을 확보할지, 아니면 주주가 다시 재투자할 수 있도록 나눌지 고민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시가총액보다 큰 현금을 들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돈을 쌓아만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영진들은 자사주를 취득한 뒤 소각하면 회삿돈이 줄어든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주당 가치는 오히려 늘어나 재산이 늘어나는 것"이라며 "대표적인 사례가 메리츠금융지주"라고 말했다. 회사 주가가 낮을 때 자사주를 취득·소각하는 것이 경영진의 재산도 늘리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경영계가 자사주 취득 감소를 전망하자 이상목 액트 대표는 소액주주들의 집단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주주의 지지를 받아서 선임된 이사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면 소액주주들은 이사 교체나 자사주 매입 안건을 주주총회에 상정할 것"이라며 "주주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반응을 볼 때마다 자사주 소각을 강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일부 기업의 일탈 때문에 나머지 상장사까지 피해를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이번 법안에 담긴 이사 개인에 대한 과태료 조항이 소극적인 경영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도 우려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자사주보유처분계획을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지 않은 상태에서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에 소각하지 않거나 처분계획과 다르게 보유 및 처분할 경우 이사 개인에 대해 5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송승혁 팀장은 "이사의 책임감을 점점 강조하고 있는데 이 경우 이사직을 맡는 게 상당히 부담될 것"이라며 "지금도 사외이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사들이 이를 의식하다 보면 기업 경영 역시 보수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며 "책임질만한 큰 사업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더 나아가 임기 동안 문제가 되지 않는 식의 경영만 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강대준 대표 회계사도 경영계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공감했다.
강 대표는 "현재 한 상장사의 사외이사를 하고 있는데 (여러 법률 강제로 인해 실제로)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며 "뜻하지 않게 벌금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될 경우 본인 사업에 제동이 걸리거나 정부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으나 기업 경영진의 인식 전환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법으로 강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된 것도 기업 경영인들의 인식이 부족해서라는 이야기다.
송승혁 팀장은 "법을 아무리 강하게 만들어도 구멍이 생기면 또 만들어야 한다"며 "법이 아니라 문화나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액트 같은 곳에서 목소리를 내주는 게 기업 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상목 대표는 "주주들은 회사를 해치고자 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회사와 함께 잘 돼서 돈을 벌려고 투자했는데 이사들이 주주를 위해 행동하지 않으니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해달라"고 답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주주 환원을 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만드는 게 더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사주를 취득할 자금도 없는데 소각은 '먼 나라 이야기'라는 주장이다.
강대준 회계사는 "경영 일선에 있는 분들을 만나다 보면 자사주를 매입할 정도로 돈을 버는 회사가 얼마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며 "주주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화선 실장 역시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영업이익률도 낮고 내부 유보금도 적다"며 "결국 높은 이자가 붙는 차입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중소기업이 자사주를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현실을 전했다.
한편 뉴스1이 지난 10월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로부터 국내 상장사 중 자사주 보유율이 높은 100개 기업을 확보해 확인한 결과 84%가 중소·중견기업(금융회사 제외)으로 나타났다.
■진행=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이정후, 장시온 기자
lee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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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담긴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스1>이 전수조사를 한 결과 국내 상장사 중 자사주 보유율이 높은 100대 기업의 84%가 중소·중견기업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유독 중소·중견기업이 자사주를 많이 보유하고 소각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승계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일종의 편법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뉴스1>은 상대적으로 언론과 사회의 감시에서 비껴나있는 중소·중견기업의 자사주 보유 현황과 지배구조를 전문가와 함께 직접 분석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