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기술 훔치면 과징금 20억…피해 기업엔 보상 현실화

전문가 현장 조사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 도입
중기부에 직권조사·시정명령 권한 부여…처벌 강화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정부가 한 해 약 300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뿌리뽑기 위해 강력한 제도 개선과 처벌 강화에 나선다.

기술탈취 의혹에도 자료 제출에 협조하지 않았던 기업들은 앞으로 전문가의 현장 조사에 응해야 하고 실제 기술을 훔친 것으로 드러나면 최대 2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와 함께 거래 기업의 보복 행위를 막고자 익명 제보 제도를 신설하고 중소벤처기업부에 직권조사와 시정명령 권한을 부여하는 등 사건 단계별로 행정조사를 강화한다.

기술탈취 피해 기업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연구개발 비용도 손해액에 산정하는 내용으로 관련 법도 개정한다.

10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공정거래위원회, 특허청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 대책을 발표했다.

전문가가 현장조사 한다…한국형 증거개시 제도 도입

이번 대책은 기술탈취 피해 중소기업이 겪는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범부처 대책이다.

먼저 기술침해 소송 과정 중에서 중소기업들이 가장 많은 애로를 호소하는 '증거 수집 곤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를 도입한다.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란 기술자료·특허·영업비밀 침해 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변리사·변호사·기술심리관 등)가 기술침해 의혹 기업을 방문해 증거를 확보하는 제도다.

이와 함께 법정 밖에서 이뤄진 진술 녹취와 불리한 자료를 파기할 수 없도록 하는 '자료 보전 명령 제도'도 동시에 마련한다.

또한 중기부나 공정위 등이 행정조사를 진행하고 확보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할 수 있도록 '자료제출 명령권'을 신설해 기술탈취 여부를 다각적으로 판단한다. 중기부는 행정조사 관련 자료와 더불어 디지털 증거자료까지 제출할 수 있다.

만약 조사를 거부·방해하거나 기피하는 경우, 혹은 자료를 미제출하는 경우에는 5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현행 10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해 행정조사의 실효성을 높일 예정이다.

익명 제보 가능해져…과징금 최대 20억 원으로 상향

기술탈취 의심 사건이 발생한 경우 접수·조사·조치 등 사건 단계별로 행정조사도 강화한다.

먼저 기술탈취 행위가 기업 간 거래 관계에서 다수 발생하는 것을 감안해 불이익을 최소화하고자 누구나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

이와 함께 중기부는 별도 신고 없이도 직접 조사에 나설 수 있는 '직권조사' 권한을 이번 대책을 통해 확보한다. 기존에 직권조사를 해왔던 공정위는 기술탈취 빈발 업종 중심으로 조사를 강화한다.

기술탈취 관련 위법 행위에 대해 시정권고만 할 수 있는 중기부의 권한은 시정명령까지 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이에 따라 위법 기업은 시정명령 미이행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만약 수·위탁 관계에서 중대한 법률 위반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 최대 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이는 현행 최대 5000만 원의 과태료 기준보다 40배 강화한 것이다. 아울러 위법 기업은 공공조달 입찰도 제한된다.

이와 함께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할 때 처벌하는 대상에 '브로커 행위'와 '미신고 수출'을 포함하고 벌금을 현행 최대 15억 원에서 최대 65억 원으로 대폭 상향한다.

기술탈취 보상 제대로…손해액 산정에 연구개발비 포함

정부는 기술탈취 피해를 본 중소기업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손해배상액 기준을 현실화한다.

현재는 기술 연구개발에 투입된 비용의 경우 손해액 산정에 포함되지 않지만 상생협력법을 개정해 연구개발 투입 비용도 손해액 산정 기준에 포함할 예정이다.

이를 통한 손해배상액은 지금보다 약 1.1~2.1배 상승해 현행 평균 1억 4000만 원에서 최대 3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법원이 손해액 산정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전문기관에 손해액 산정을 촉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아울러 현재 손해액 산정을 지원하고 있는 기술보증기금 중앙기술평가원은 '중소기업 기술손해 산정센터'로 확대한다.

이 밖에도 기술보호 정보 제공 온라인 플랫폼인 '기술보호 울타리'를 통해 손해액 산정과 관련된 판례, 기술개발비용 등 여러 데이터를 통합 관리해 이를 활용한다.

정부 출연 연구과제 모니터링 강화…기술임치로 대응 역량 키운다

중기부는 대기업과 비교해 기술보호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이들의 역량 강화에도 나선다.

먼저 R&D 수행 기업 중 정부 출연 10억 원 이상 연구과제에 대해 모니터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기술 유출을 방지한다.

또한 핵심 기술자료를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보관하는 기술임치를 지난해 1만 7000건 규모에서 2030년 3만 건 규모까지 확대해 기술 분쟁 시 증거 활용을 확대한다.

아울러 기술분쟁의 효율화를 위해 조정예정가액 5000만 원 이하의 소액 사건의 경우에는 신설하는 '1인 조정부'를 통해 신속히 해결한다.

특허청과 경찰청은 기술경찰 조직을 확대하고 중기부 및 특허청으로 접수된 행정조사 사건은 추가 범법 행위가 의심될 경우 수사기관에 이관해 즉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한다.

중기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정책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과 '중소기업 기술분쟁 신문고'도 운영할 예정이다.

한편 기술탈취로 인한 중소기업의 평균 손실액은 18억 원으로 추정되며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법원의 인용금액은 평균 청구액 8억 원의 17.5%에 불과한 평균 1억 4000만 원으로 나타났다.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