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빌미로 접근해 기술 탈취"…한국형 디스커버리 필요성 높아져
스타트업 기술 침해 신고 해마다 증가…최근 5년간 35건
제도 도입 시 증거 수집 가능…"사법부 전문성도 뒤따라와야"
- 이정후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협업을 명목으로 스타트업에 접근해 핵심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파악한 뒤 협상을 중단하는 '기술 탈취' 사례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들 기업은 "원래 준비 중인 사업이었다"는 식으로 탈취 의혹을 부인하지만 핵심 아이템을 빼앗긴 스타트업은 긴 법정 다툼에 시달리며 경영 악화에 직면한다.
이에 따라 기술 전문가가 현장을 직접 방문해 탈취 의심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무형의 지식재산(IP) 특성상 피해 입증이 어려운 스타트업 업계는 제도 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한다.
6일 윈트 행정사사무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중소벤처기업부에 접수된 스타트업 기술 침해 신고는 총 35건으로 나타났다.
2021년 5건에 불과했던 신고 건수는 2022년 6건, 2023년 10건, 2024년 12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올해는 6월까지 2건의 기술 침해 신고가 접수됐다.
업계에 따르면 가장 흔한 기술 탈취 유형은 협업을 빌미로 접근한 뒤 주요 기술과 아이디어를 확보하고 일방적으로 협상을 중단하는 방식이다.
핵심 기술이 무형의 자산인 만큼 피해를 즉시 인지하기 어렵고, 만약 기술 침해를 인지하더라도 상대 기업이 기밀을 이유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증거 확보조차 쉽지 않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자신들에게 투자도 하고 1년 넘게 협업까지 했던 기업이 통째로 기술을 빼앗아 갔다고 호소하는 스타트업도 있다"며 "이를 증명하려면 침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정보를 주지 않으니 불합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로 벤처기업협회 설문조사에서도 특허 침해 소송을 겪은 기업의 73%가 '증거 수집 곤란'을 1순위 애로사항으로 꼽은 바 있다.
이 같은 피해가 이어지자 중소벤처기업부와 관계 부처, 국회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당 제도는 기술 전문가가 기술 탈취가 의심되는 기업 현장을 직접 찾아가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국회에서는 지난 6월 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에 이 내용이 담겼다. 침해 및 손해액 입증을 위한 전문가 사실조사, 증거 보전 명령, 증언 녹취 제도 도입 등이 주요 내용이다.
업계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과 함께 사법부의 기술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 탈취 여부를 판단하는 판사가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면 판결까지 시간이 지연되거나 기술 침해 정도를 정확히 평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침해를 전담 법원 설치나 상시 기술 전문가 배치를 검토해야 한다"며 "현실적인 손해 배상을 위해서도 사법부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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