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창'의 힘을 아시나요…러닝 천만 시대 '발'만 연구한 공학자
[퍼스트클럽]이태용 휴먼퍼포먼스랩 대표
족부 생체역학 연구 '한 우물'…3D·AI로 기술 차별화
-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기자
(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기자 = 웰빙 열풍에 힘입어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하고 '걷기 열풍'도 지속되면서 부상 예방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달리기와 걷기가 자칫 족저근막염, 피로골절 등으로 이어질 경우 몸에 미치는 해악이 더 크기 때문이다.
러너들은 부상예방을 위한 전용 '러닝화' 구입에, 걷기 중독자들은 워킹화, 트레킹화에 관심을 쏟았다. 그런데 '발 전문가' 이태용 휴먼퍼포먼스랩 대표(이화여대 공과대학 휴먼기계바이오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신발 속에 깔린 깔창(인솔)입니다."
평생을 발 연구에 매진하면서 '인솔'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그는 학교 창업을 하면서 '맞춤형 인솔'을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인솔은 신발 속에 덧대는 깔창이다. 과거 신발 깔창은 오염 방지와 세탁 편의를 위해 까는 것에 불과했다면 최근엔 발의 형태를 보존하고 러닝이나 오랜 걷기의 피로를 덜어주는 '기능성 제품'으로 진화했다.
단순히 '깔창'이라 부르지 않고 인솔로 '대접'해 부르는 이유다.
이태용 대표는 "잘 움직여야 덜 다친다"며 부상 예방의 첫걸음은 인솔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교정 내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학협력관 안에 이태용 대표가 창업한 휴먼퍼포먼스랩이 위치해 있다.
사무실에 도착해 땀을 닦으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을 때 이 대표는 양말을 벗고 발을 보여달라고 했다.
발에 땀이 차 당혹스러웠지만 족부 권위자의 요청이니 주뼛주뼛 양말을 벗었다.
무슨 명의를 만난 것처럼 발을 직접 촉진(?)할 줄 알았는데, 스마트폰을 들고 발 사진을 몇장 찍는다.
맨발로 거울이 달린 상자 위에 서라고도 했다. 그리고 또 사진 몇장을 찍는다.
모니터 앞을 걸어보라고 해 걸었더니 무언가 센서가 기자의 전신을 스캔한다.
그게 전부였다. 몇 분이 지난 후 벽에 걸린 모니터 앞에 기자의 전신 골격이 떴다. 곳곳에 빨간색 표시가 있었다. 골격이 제대로 서 있지 않고 비틀린 안 좋은 자세라서 뜨는 빨간색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발을 찍은 사진 몇 장은 그 몇분 새 '3D 모델링'으로 돌아왔다.
기자의 발 아치(발 안쪽 오목한 부분)는 소위 '평발'은 아니었지만, 체중을 실어 서 있을 때 모델링을 보니 아치가 완전히 내려앉아 발바닥이 거의 땅에 밀착한 형태였다.
3D 모델링과 전신 스캐닝을 한 AI엔진은 이런 형태의 발이라면 족저근막염과 골반 전방경사, 무릎 관절 부하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는 최근 1년간 기자가 정형외과를 다니며 받은 진단과 일치했다.
이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의생명공학 박사 학위 취득을 시작으로 하버드대학교 박사후연구원,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교수, 국립싱가포르대학교 교수 등 세계 정상급 대학에서 족부 생체역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네이처(Nature)를 포함해 50여편의 SCI 논문을 발표한 그는 족부 생체역학 관련 분야에서 글로벌 권위자로 꼽힌다. 국제 학회를 중심으로 다수의 수상 실적도 보유하고 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오던 그가 교수 창업에 대해 꿈을 키워온 것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다트머스대학교 선배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다. 2000년대 당시 다트머스 대학의 선배 교수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살려 창업한 회사를 당시 200만 달러에 매각하고 전액을 학교에 기부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는 '다트머스의 훌륭한 학생들 덕분에 창업할 수 있었다. 회사는 한 번도 내 것인 적이 없었고 (매각 이익은) 학교로 돌려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며 "교수로 살면서 '내가 잘하는 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국립싱가포르대학교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이 대표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2021년 창업을 결심한다. 이 대표가 주목한 분야는 신발 밑창에 깔리는 '인솔', 이른바 깔창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인솔은 체육 활동으로 인한 부상을 가장 먼저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제품이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무릎에는 체중의 4~7배에 달하는 하중이, 발목 관절에는 8~11배의 압력이 전달되는데 개인의 발 구조에 맞춘 인솔은 이를 분산하기 때문에 부상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휴먼퍼포먼스랩은 AI와 3D 모델링을 적용한 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발에 꼭 맞는 맞춤형 인솔을 차별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용자가 전용 앱을 통해 자신의 발 사진을 찍기만 하면 휴먼퍼포먼스랩의 AI '리나'(RINA)는 이를 3D 데이터로 변환한다. 여기에 체중이 가해지지 않았을 때와 100% 가해졌을 때의 중간값인 '압력 50%'의 족부 형태를 도출해 모델링을 하고 이를 3D 프린터로 출력한다.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인솔을 제작한다.
이 대표는 "전문가들은 이를 '적당히 깎아야 한다'고 표현하는데 휴먼퍼포먼스랩은 2년 동안 AI 기술을 개발해 '적당히'라는 표현을 '정량화, 수치화'하는 데 성공했다"며 "인도의 신발 회사에 해당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연말에는 스페인으로 확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휴먼퍼포먼스랩의 맞춤형 제작 강점은 또 있다. 바로 3D 모델링을 이용하기 때문에 몇 번이고 반복해도 균일한 맞춤 수치를 도출한다는 점이다.
맞춤형 인솔을 제작하는 기존 업체들은 많지만 이들은 소위 '석고본'을 뜨는 것과 같은 형태로 발을 직접 누르고 밟아 인솔을 제작한다. 이 경우 손으로 누르는 압력이나 발에 실리는 체중의 분산 등 수많은 경우의 수에 따라 매번 조금씩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휴먼퍼포먼스랩의 AI 리나는 인솔 이용자의 체중과 발의 형태를 공학적으로 계산해 지나치게 큰 부하도, 너무 낮은 부하도 아닌 적정 부하를 외부 요인 간섭 없이 동일하게 측정할 수 있다.
아울러 전신 스캐닝과 걷기 테스트 등을 통해 인솔 이용자의 발 컨디션이나 걸음걸이, 체중과 골격 구조까지 분석한 후 맞춤형 인솔을 제작한다.
그러나 뛰어난 기술력에도 높은 가격 탓에 사업 확장은 다소 장벽이 있는 상황이다. 휴먼퍼포먼스랩의 맞춤형 인솔은 30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족부 질환으로 병원비를 수없이 날린 '환자'들이 아니고서야 선뜻 지갑을 열 수 있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이에 휴먼퍼포먼스랩은 그동안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격을 크게 낮춘 보급형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다. 3만 원대 제품을 시중에 판매해 기술성과 제품 인지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인솔이 기본으로 부착되는 신발 업체와도 협력을 논의 중이다. 가장 먼저 공략하는 제품군은 '군화'로 장거리를 걷거나 무거운 물체를 들어야 하는 직업에 편안함을 주겠다는 목표다.
이 대표는 "의료용과 스포츠용을 합산해 약 1조 원 규모인 국내 인솔 시장에서 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이정후 기자
◇이태용 휴먼퍼포먼스랩 대표
△위스콘신대학교 의생명공학 박사
△하버드대학교 박사후연구원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교수
△국립싱가포르대학교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공과대학 휴먼기계바이오공학과 교수
lee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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