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버리는 감귤박…'친환경 종이' 재활용 길 막힌 사정
제주 中企 일해 "감귤박 처리비만 연간 4억~5억원 부담"
월자제지, 감귤박 재활용 제지기술 개발…규제에 '발목'
- 이민주 기자
(서울=뉴스1) 이민주 기자 = "감귤 소비가 줄어 사정이 어려운데 찌꺼기인 감귤박까지 돈을 내고 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친환경 종이를 만들겠다는 중소기업이 있더군요"
제주 중소기업이 '골칫덩이' 감귤박을 친환경 종이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규제에 발목이 잡혀 사업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에서 감귤박을 '순환자원'으로 인정하지 않아 사료나 비료로밖에 재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귤 주스 한 잔을 만드는 데는 약 10개의 감귤이 필요하다. 그중 주스가 되는 부분은 6개 분량에 불과하고 나머지 4개는 찌꺼기 '감귤박'으로 버려진다.
이렇게 제주도에서 버려지는 감귤박은 연간 5만톤에서 6만톤에 달한다. 제주 식품기업 '일해'는 매년 8000톤 이상의 감귤박을 처리하려고 축산농가에 돈을 내고 있다.
◇제주 中企 일해 "감귤박 처리비만 억대 부담" 호소
일해는 감귤박 처리비로만 연간 4억원에서 5억원을 쓴다. 이 기업은 매년 감귤 2만톤을 매입해 착즙 등 방식으로 재가공한다. 관련 매출은 연간 60억원 수준이다. 감귤박 처리비만 매출의 10%에 해당된다.
이달 14일 중기 옴부즈만의 중소기업 간담회에 참여한 김영훈 일해 대표는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더 많은 감귤을 사들여 농가 수익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김 대표는 "감귤을 가공하면 40%가 감귤박으로 나온다. 현재 이를 축산농가의 사료 원료인 단미사료로 처리하고 있으나 연간 8000톤에 달하는 감귤박 처리에 드는 비용이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 된다"고 호소했다.
축산농가에 돈을 주고 감귤박을 처리하고 있지만 최근 우유소비 감소로 관련 농가도 줄고 있어 지속 가능 여부가 불투명하다. 소비 침체로 감귤 착즙액 판매가 줄면서 회사 매출(6월 결산)은 지난해 130억원대에서 올해 110억원대로 줄었다.
◇월자제지, 감귤박 재활용 기술 개발·특허…규제에 '발목'
제주 중소기업 월자제지에서 감귤박을 펄프로 활용해 일반 종이보다 더 단단한 친환경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며 관련 기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국 폐기물 규제에 사업화가 막혔다. 간담회에 참여해 규제개선을 호소한 중소기업들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가 신산업 육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이창용 월자제지 대표는 "감귤박을 활용하면 종이 강도가 증가하고 천연염료 기능도 한다"며 "2010년에 정부 지원을 받아 감귤박을 활용한 골판지 생산 기술을 개발해 양산체제를 갖추고 판매처도 확보됐지만 규제 때문에 생산을 못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감귤박 친환경 제지는 박스 폐지 원료 70%에 감귤박 원료 30%를 넣어 만든다. 박스 폐지 원료를 넣어 만든 제지보다 지력(강도)이 우수하다. 무상으로 감귤박을 제공받기 때문에 추가 비용(원재료비)도 들지 않는다. 납품단가는 기존 용지보다 30% 비싸 수익성이 높다.
새 기술을 이용하면 일해는 감귤박 처리난을 해소하고 월자제지는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 대표는 "최근 ESG 경영 트렌드에 맞춰 친환경 종이를 찾는 회사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시장에서도 스티로폼 등을 퇴출하고 감귤박 등 친환경 종이, 포장재를 대체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했다.
◇"허가·평가만 최소 8개월" 기술 있는데 발만 '동동'
사업화를 가로막는 규제는 현실과 동 떨어진 관련법에서 비롯된다. 감귤박은 현행법상(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그 밖의 식물성잔재물'에 속해 버섯재배용 배지 사용, 목재 성형 제품 제조, 비료 생산, 사료 생산 등 중간 가공폐기물을 만드는 유형으로만 쓸 수 있다.
이 폐기물 규제를 피하려면 '순환자원'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쉽지 않다. 순환자원 인정을 받으려면 먼저 폐기물배출자 신고를 해야하고 공정·설비검사, 유해물질함유량분석,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거쳐 배출 및 처리 관련 인허가 등을 받아야 한다.
현재 일해는 순환자원 인정 신청을 위해 감귤박에 대한 '재활용 환경성 평가'라는 별도 절차를 거치고 있다. 이 절차는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해 평가에만 최소 8개월이 걸린다.
환경부에 유해성이 없는 감귤박을 폐기물 규제에서 제외해 폐기물배출자 신고를 면제하고, 순환자원 인증절차 간소화해달라고 요구해 '일부수용' 입장을 받았으나,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될 때까지 최소 2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김영훈 일해 대표는 "정부에서는 '재활용 환경성 평가'를 절차대로 받으라고 하는데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후 순환자원 인정 신청이 쉽지 않다"며 "감귤박이 감귤을 수확, 착즙하는 12월에서 2월까지만 나오는데 당장 이번 겨울과 내년까지 2년이나 재활용 길이 막힌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폐기물관리법의 당위성에는 동의하지만 과한 규제와 까다로운 절차 탓에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까지 불필요하게 버려지고 있다"며 "제주도의 새로운 자원인 감귤박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때"라고 주문했다.
한편 환경부 측은 이같은 문제와 관련해 "감귤박 및 기타 식물성 잔재물은 종이 및 친환경 포장재 제품의 원료로 사용을 위한 일반화된 재활용 기준이 부재해 환경과 인체 위해성, 제품 품질 등에 대한 검증을 통해 재활용 기준 마련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순환자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고, 유기성 폐기물의 사용 용도 확대를 위해 사료, 비료 등의 기준 폐지 등 순환자원 인정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자원순환기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답했다.
minj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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