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승 유한킴벌리 대표 "혁신, 고객 불만에서…제품개발=인디언 기우제"
취임 100일 "지구환경 기여 않는 제품, 지속 가능성 없어"
1500명 직원과 1:1 대화 진행중…대표이사 아닌 대표사원
- 대담=서명훈 부장 정리=,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대담=서명훈 부장 정리= = 10년 전, 유한킴벌리 고객센터에 한 통의 불만사항이 접수됐다. '하기스 매직팬티' 기저귀의 벨크로, 일명 '찍찍이'가 아기 피부를 아프게 찌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유아·아동용품사업 부문장을 맡고 있던 진재승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이 고객의 집을 직접 찾았다. 그리고 1시간 동안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마주 앉아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1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절대 잊히지를 않아요. 완벽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계속 고민 중입니다. 그때 (문제점이) 100이었다고 한다면 10~20 수준으로 꾸준히 개선되고 있어요."
취임 100일을 맞은 진 대표를 지난 9일 서울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1989년 입사해 32년간 오로지 '유한킴벌리맨'으로 살아왔다. 대부분을 제품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유한킴벌리가 내놓은 혁신적인 제품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제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불만 듣기'다. 고객의 불만이 바로 혁신적인 제품의 출발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고객들이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바로 혁신이라는 게 진 사장의 철학이다.
◇개발은 '유레카' 아닌 '인디언 기우제' 자세로…"안 된다는 순간 '스톱'"
진 사장은 '하기스' 기저귀, '라네이처' 생리대 등 걸출한 히트 제품을 개발한 '개발통'이다. 개인용품제품개발실장, 유아·아동용품사업 및 온라인사업 부문장, 여성·시니어사업 부문장 등을 두루 거쳤다. 팬티 기저귀와 통기성이 좋은 썸머 기저귀 등이 모두 그의 작품들이다.
이처럼 혁신적인 제품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세상을 뒤바꿔 놓은 제품들은 우연히 발명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재미있는 에피소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신제품 개발 과정을 한마디로 '인디언 기우제'라고 정의했다. 그는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만족할 제품이 나올 때까지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패를 맛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진 사장의 방식이다.
잠을 설치는 밤도 숱하게 보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곧장 그럴싸한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될 때까지 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진 사장은 "새벽 2~3시까지 현장 엔지니어들과 고민하면서 만든 결과물을 테스트해, 확실히 개선됐다고 하면 비로소 잠이 왔다"며 "대단한 비결은 없는 것 같다. 이건 정말 안 된다고 하는 순간 '스톱'되는 것"이라고 웃었다.
'기저귀 찍찍이'에 대한 고민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기저귀 연구·개발자들과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한다"며 "유리에 잘 붙고 부드러운 게코 훅(gecko hook)이라는 것(벽걸이 흡판)이 있다. 게코 도마뱀 발바닥 표면 (응용) 기술까지 생각하면서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진 사장은 "일반 생필품은 가격이 싼 것을 구입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쓰기 편하고 몸에 잘 맞는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며 "기술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고민하는) 측면이 생필품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신념이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가 '입는 오버나이트' 생리대다. '수면 중 뒤척여도 월경혈이 샐 걱정이 없게 편하게 입을 제품이 필요하다'는 소비자 의견을 참고해 속옷처럼 입는 생리대가 만들어졌다. 이전까지 시장에서 제품 길이를 40㎝ 넘게까지 늘리는 데만 치중했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4년 입는 오버나이트 생리대가 출시된 이후 최근 3년간 연평균 40% 이상 성장하며 관련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에 따라 입는 오버나이트 시장은 전체 생리대 시장의 약 10%(2020년 기준, 업계추정)를 차지할 정도로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다.
진 사장은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필요하다고) 생각을 안 했다가 (고객의) 불편함을 꾸준히 파악하다 보니 이런 제품이 좋겠다 해서 선보였다"며 "불편함을 편안함으로 전환하는 데 비즈니스의 길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는 딸이 입는 생리대를 '아빠 회사가 개발하고 만든 거야?' 묻더군요. 사회적으로도 좋은 제품이라고 인정을 받을 때 보람을 느껴요. 즐거움이고 재미죠."
지금 진 사장의 시선은 마스크로 향해 있다. 마스크가 생필품이 됐지만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 사장은 "여름에는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다. 프로토타입을 하나 쓰고 미용실에 갔을 때 '마스크가 왜 이렇게 고급스럽게 생겼어요?'라는 말을 들었다"며 "아기들이 호흡하기도 편해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가 가장 공을 들였던 기저귀는 지금도 진화중이다. 1983년 처음 세상에 나온 '하기스' 기저귀는 이후 고객 요구를 조금씩 수렴하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2005년에는 기거나 걷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위한 '하기스 팬티 기저귀'가 출시됐다. 아기를 억지로 눕히지 않고도 입히고 벗길 수 있어, 육아에 드는 시간과 부담을 줄였다고 크게 호평을 받았다.
2015년에는 통기성이 좋은 '하기스 썸머 기저귀'를 출시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여름철 육아의 주요 키워드로 발진과 땀띠가 언급되는 것을 찾아냈고, 고객 조사에서도 응답자 다수가 가볍고 얇으며 통기성이 뛰어난 여름 기저귀를 원한다는 데서 착안했다.
또한 '하기스 맥스 드라이'는 100일을 전후해 통잠을 자기 시작하는 아기들이 기저귀를 가느라 밤잠을 설치지 않도록 흡수력을 높여 출시했다.
◇'유한킴벌리맨' 대표사원 첫 프로젝트는 '1500명과 대화하기'
진 사장은 소비자 수요에 맞는 새로운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구성원 하나하나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고민도 하고 있다. 진 사장은 "전부터 대부분 기업이 성장의 한계를 많이 느낀다는 것을 생각하고 고민해 왔다"며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능력, 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시작한 것이 임직원 1500여명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석 달간 약 10%의 인원과 면담을 마쳤다. '공장의 밥이 맛이 없다'는 일상 속 불편함부터, '회사가 성장하려면 신규 사업과 투자를 해야 한다'는 진중한 건의까지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진 사장은 "재직 경력이 30년 넘는, 공장에 계신 분이 '우리 회사 제품 품질이 점점 (타사와) 차이가 없어지는데 품질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더 좋은 생각은 현장에서 나온다. 제 마음이나 생각을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는 소회를 전했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대표이사가 아닌 '대표사원'이라는 다소 낯선 직함이 찍혀 있었다. 진 사장은 "대표가 되기 위해 목표를 두었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대표 역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된 것이기 때문"이라며 "직원 누구나 입사 후 CEO를 꿈꾸고 CEO처럼 생각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대표사원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사회·환경적 가치와 품질 합쳐져야 제품도 인정받을 것"
"친환경 제품을 대대적으로 개발해 출시하려던 단계에서 '환경적인 것(이점)은 이해하겠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무엇이 좋냐는 질문을 (소비자가) 던진 적이 있어요.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 제품의 본원적 가치가 같이 합쳐질 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 제품이 되지 않을까요."
진 사장은 취임 후 새 비전으로 '우리는 생활·건강·지구환경을 위해 행동합니다'를 제시했다. 진 사장은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기 위한 이노베이션에 집중할 것"이라며 "그 집중의 방향성은 지구와 환경까지 좋게 하는 쪽으로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전에 제품 개발을 할 때는 성능이 좋은지, 가격 경쟁력이 있는지 등 품질 위주로 (집중)했다"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지구 환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다. 반드시 점검해 출시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1984년 시작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여성 리더십 강화를 위한 여성 리더 지원 △소외계층 청소년에게 연간 100만패드의 생리대를 기부하는 '힘내라 딸들아' 캠페인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진 사장은 "(소비자들이 캠페인의) 진정성을 느끼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선임 대표들이 잘 해온 것을 계속하고, 거기에 MZ세대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덧붙여 꾸준히 하다 보면 진정성을 인정받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mau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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