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여행은 지루해"… 선수처럼 뛰고 경쟁하는 '도파민 투어' 뜬다
여행객을 '선수'로 만드는 '취미의 리그화'
제주 9.81파크, 0.001초 승부에 'N차 방문 등
-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서울=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 여행의 풍경이 달라졌다. 좋은 경치를 보며 멍하니 쉬던 '힐링'(Healing) 대신, 땀 흘리며 기록을 깨고 순위를 다투는 '도파민 투어'가 뜬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여행객을 경쟁에 몰입하는 '선수'로 참여시키는 이른바 '취미의 리그(League)화'다.
11일 관광업계에 따르면 최근 여행 시장의 핵심 키워드로 스포츠와 휴가를 결합한 '스포츠케이션'(Sports+Vacation)이 급부상하고 있다.
주요 관광지들은 기록·순위·미션 등 게임적 요소를 접목해 여행객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재방문'과 '체류 시간 증대'로 연결하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소비자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여행지를 '경기장'처럼 이용하게 만드는 새로운 경험 마케팅이다.
가볍게 방문한 여행지가 치열한 순위 경쟁의 장(場)이 된다. 제주 애월의 '9.81파크 제주'는 관광지에 '경쟁' 심리를 입혀 성공한 대표적인 액티비티 목적지다.
중력가속도만으로 트랙을 달리는 그래비티 레이싱에 0.001초 단위의 기록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자, 이곳은 단순한 테마파크를 넘어 레이서들의 '성지'가 됐다.
관광 측면에서 주목할 점은 이 시스템이 만들어낸 놀라운 재방문율이다.
"조금만 더 잘하면 순위에 들 수 있는데"라는 아쉬움이 여행객을 다시 비행기에 태운다. 실제로 월간 이용객의 약 10%가 재방문 고객이며, 한 해에만 18번 제주를 찾아 총 221회의 레이싱을 즐긴 '헤비 유저'까지 등장했다.
'라이선스 제도'는 여행객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핵심 장치다. 기록에 따라 '마스터' 라이선스를 획득해야만 탈 수 있는 상급 코스를 두어 이용자가 스스로 실력을 키우고 재도전하게 만든다.
연말에 열리는 왕중왕전 'GROC 챔피언십'은 전국의 실력자들이 오직 우승을 위해 제주로 집결하게 만드는, 그 자체로 훌륭한 스포츠 관광 이벤트가 됐다.
관광 분야에서 '취미의 리그화'가 가장 활발한 곳은 단연 산(山)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BYN블랙야크가 운영하는 '명산 100' 챌린지와 각 지자체의 '둘레길 스탬프 투어'는 등산을 단순한 취미에서 '수집과 달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전국의 명산을 오르고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BAC) 앱을 통해 GPS와 사진으로 인증을 남기는 이 챌린지는 등산객들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뿌리는 역할을 한다.
여행객들은 '100좌 완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지방의 소도시까지 찾아가 숙박하고 밥을 먹는다.
지자체들도 이에 발맞춰 '완주 메달'이나 '인증서'를 발급하며 여행객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울릉도의 경우 트레킹 코스 완주 인증서를 도입한 후, 이를 받기 위해 험난한 코스를 마다하지 않는 2030 여행객이 급증했다.
취미에 목표가 생기자, 여행은 곧 '퀘스트 수행'이 되고 지역 관광은 활기를 띠게 된 셈이다.
전국적인 러닝 열풍은 여행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관광업계는 단순히 달리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 지역에서만 가능한 **'희소성 있는 코스'를 제공해 러너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른바 '런트립'(Run-Trip)의 진화다.
지난해 11월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서킷런'에는 7000명의 인파가 몰렸다. 평소 자동차 경주만 열리던 국제 규격 서킷을 두 발로 달릴 수 있다는 '이색 경험'이 전국의 러너들을 용인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기록 경쟁뿐만 아니라 전문 카레이서의 드리프트 체험 등 레저 요소를 결합해 스포츠 관광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제주 중문관광단지에서 열린 '포켓몬 런'은 강력한 IP(지식재산권)가 결합한 걷기 여행의 성공 사례다. 기록 경쟁 부문과 가족형 걷기 부문을 나눠 4000여 명의 참가자를 유치했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행사 기간 중문단지 방문객은 전년 대비 42.8%, 소비 지출액은 61.9%나 급증했다. '리그화'된 취미 활동이 관광객을 유입시키고, 낙수 효과를 통해 지역 경제까지 살리는 고부가가치 관광 콘텐츠임을 입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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