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한 방울에 걸린 14년…자원 빈국 韓에 던진 바로사의 질문
[기자의눈]탐사부터 생산까지 장기간·고위험…민간 홀로 감당 어려워
민간 개발 주도, 정부 금융·외교·정보로 뒷받침해야
- 정윤미 기자
(다윈=뉴스1) 정윤미 기자 = SK이노베이션 E&S(SKI E&S)가 호주 바로사 가스전 개발에 뛰어든 뒤 이곳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만들어 국내에 들여오기까지 14년이 걸렸다.
"결코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 아니다"라는 현장 관계자의 말처럼, 천연가스 개발은 탐사와 평가, 인허가, 설비 건설을 거쳐 상업 생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를 만나 사업이 지연되거나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생산에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로사 프로젝트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스전 인근 티위(Tiwi) 지역 전통 원주민들이 해저 파이프라인이 문화유산과 바다에 미치는 영향과 협의 절차 등을 문제 삼아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협의 등을 거쳐 사업은 재개됐다.
최근 찾은 다윈 LNG 플랜트 입구의 대형 물탱크에는 티위 원주민들이 직접 그린 게와 물고기, 자라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업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지역사회와 공존해야 한다는 해외 자원개발의 또 다른 숙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해외 자원개발에는 돈만 필요한 게 아니다. 현지 기업과의 협력부터 각국 정부의 인허가, 지역사회와의 협의까지 수많은 관문을 넘어야 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과 환율이 급변하면 수년간 준비한 사업의 경제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불확실성을 10년 넘게 누가 감당하느냐다.
기업 하나가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며 막대한 자금을 묶어두기는 쉽지 않다. 탐사에 성공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인허가와 환경 문제, 지역사회와의 갈등을 넘어야 하고 설비를 완성하고도 시장 상황에 따라 사업성이 달라질 수 있다. 바로사가 보여준 것은 해외 자원개발의 성과만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의 크기이기도 하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 해외 자원개발은 에너지·자원 안보와 직결된 문제다. 그렇다고 정부가 다시 해외 광산과 가스전을 직접 사들이자는 얘기는 아니다. 과거 공기업 중심의 해외 자원개발이 부실 투자와 막대한 손실 논란을 남긴 경험도 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거의 실패가 정부가 해외 자원개발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자원 확보 경쟁국들이 기업에 모든 위험을 맡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국유 에너지기업과 정책금융기관 등을 활용해 해외 에너지·자원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장기 투자에 따른 위험을 국가 차원에서 분담한다. 자원 확보를 개별 기업의 단기적인 수익사업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역할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사업성을 판단하고 투자하는 주체는 기업이 맡되 정부는 기업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을 뒷받침해야 한다. 장기간 막대한 자금이 묶이는 사업에는 정책금융을 제공하고 상대국 정부와의 협상이 필요한 때에는 외교력을 동원할 수 있다. 기업이 새로운 자원개발 사업을 검토할 수 있도록 현지 자원과 정책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해외 자원개발은 어느 정부의 임기 안에 시작해 성과까지 확인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그렇기에 정책 역시 정권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실패한 사업에서는 실패의 원인을 찾고, 성공 가능성이 있는 사업에는 민간이 장기간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자원이 없는 나라라는 현실은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필요한 자원이 저절로 우리에게 오는 것도 아니다.
다윈에서 만난 LNG 한 방울에는 14년의 시간과 막대한 자본, 수많은 실패의 위험이 담겨 있었다. 민간이 그 위험을 감수해 앞으로 나갈 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끝까지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자원 빈국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14년을 기다릴 수 있는 정책'인지도 모른다.
younm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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