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조선업계 노조와 10년 전 암흑기

  신현우 산업1부 팀장
신현우 산업1부 팀장

(서울=뉴스1) 신현우 기자 = "시간은 흐르지 않고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의 고독'의 한문장이다. 조선업의 시간도 직선으로 흐르기보다 원을 그린다. 호황기는 공급과잉을 낳고, 공급 과잉은 불황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줄어든 공급은 다시 호황의 출발점이 된다.

국내 조선업계는 2003~2008년 초호황기를 맞았다. 중국의 고성장으로 원자재 해상 물동량이 급증했고, 선사들이 대형화·선대 확충 경쟁에 나선 영향이다. 당시 노조는 호황 이익의 임금·성과급 환원을 요구했다.

그러다 2009년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금융위기가 닥쳤고 선박 공급이 넘쳤다. 저유가에 따른 발주 위축까지 겹치며 불황은 길어졌다. 특히 2016년 선박 수주는 급감했다. 그해 1월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 0척'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에서 8347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한때 세계 조선사 4위였던 STX조선은 법정관리로 향했다. 한 장의 계약서도 쓰지 못해 독(dock)이 텅 빈 곳마저 등장했다. 시간이 흘러 2021년 조선업계에 다시 봄이 찾아왔다. 불황이 남긴 후유증으로 수익성은 2023~2024년이 돼서야 회복했다.

조선업계는 다시금 초호황기를 지나고 있다. 3년 치 일감이 쌓인 만큼 풀가동 체제를 유지해야 납기를 맞출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 대형 조선 3사의 조선 부문 평균 가동률은 100% 이상이다. 평균 가동률이 100%를 웃돈다는 건 정규 조업 시간만으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휴일 근무나 야간 조업 등 추가 근무를 동원해 설비를 돌렸다는 의미다. 사실상 초과 가동 상태에서 선박을 건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생산성은 후퇴할 모양새다. N% 성과급 기류가 조선업계로까지 확대된 영향이다. 현재 HD현대중공업 노조는 파업 절차에 돌입했다. 그동안 노사는 영업이익 30% 성과급 재원 활용 등을 안건으로 협상했으나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앞으로 중앙노동위원회 노동쟁의 조정 중지 결정과 함께 조합원 과반 찬성 시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한화오션 노조는 성과급 산정 기준 전면 수정을 주장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역시 실적 개선에 따른 성과급 확대가 주요 의제로 거론된다. 대부분의 노사 협상은 교착 상태다. 문제는 노조 파업 시 납기 지연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현재 납기 일정은 고용, 환경 등 다양한 리스크가 일정 부분 고려됐다. 통상의 범주 안이다. 그러나 N% 성과급은 기존에 없던 또 다른 차원의 리스크다.

파업에 따른 일정 지연은 잔업으로 메울 가능성이 크다. 특근이 반복될 경우 수익성은 더 떨어진다. 최악의 경우 파업으로 납기를 못 맞추면 선주사에 배상금도 물어야 한다. 단순히 금전적 손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업계에서 납기는 신뢰성 지표다. 납기 지연은 신뢰성 상실로 이어져 국내 조선업계의 불황을 앞당기는 씨앗이 될 수 있다.

납기 지연이 발생할 수 있는 무리한 파업이 지양돼야 할 이유다. 노동에 따른 대가 요구는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회사 존속도 그만한 가치를 지닌다. 과거에도 그랬듯 회사의 이익 감소는 노동자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조선업계에서 수주 절벽은 실적 호황 때 시작된다. 초호황기를 맞은 조선업계가 10년 전 암흑기를 다시 한번 떠올려 봐야 할 것이다.

hwsh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