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설비 전환 지원…에너지 충격에 강한 산업구조 만들어야"

"IEA 에너지 위기 대응 4대 축 활용 필요"

한경협 표지석.(한경협제공)

(서울=뉴스1) 김진희 기자 = 지정학 리스크 발생 시마다 반복되는 에너지 위기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구조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6일 한국경제인협회가 김진수 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발표한 '해외 에너지 위기 대응정책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국들은 에너지 위기 대응을 위해 단기적인 가격 안정화 조치와 함께 에너지 효율성 제고, 에너지 전환, 산업구조 재편 등의 중장기 대책을 병행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회원국별 에너지 위기 대응 정책을 평가해 만든 비상 대응 4대 축(수요 억제·비축유 활용·생산 증대·연료 전환)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IEA는 4대 축 중 '수요 억제'를 가장 강조하고 있다. 각종 산업과 일상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석유의 특성상 조금의 수요 감축만으로도 큰 폭의 유가 인하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계별 수요 억제 정책은 △대중교통 이용 장려 등의 캠페인(1단계) △차량 속도제한 등의 행정조치(2단계) △차량 5부제(3단계) △주유량 제한 등의 강제조치(4단계)로 이뤄진다.

보고서는 호르무즈 사태와 같은 심각한 공급 차질 상황에서는 1~2단계 조치를 우선 시행하고 공급 차질이 장기화되는 경우 3단계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 글로벌 표준 대응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계적 수요 억제가 단기와 장기 유가 관리에 모두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중장기 수요 억제 방안으로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으로의 전환 촉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응한 주요국의 정책 사례도 제시했다. 유럽연합은 에너지 가격 급등 시 세금 인하 등 단기적인 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석유·가스 등의 화석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장기적인 산업구조 전환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유럽연합은 2022년 한시적 위기 대응책인 TCTF를 통해 배터리·태양광 등 전략산업을 지원한 데 이어 2025년 이를 청정산업 보조금 정책(CISAF)으로 발전시켰다. CISAF는 재생수소 등 저탄소 연료와 배터리·태양광·CCUS 등 클린테크에 대한 투자를 지원해 산업 탈탄소화와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중장기 정책이다.

일본은 에너지 위기 대응을 위해 보조금을 활용한 적극적인 가격 관리 정책을 시행한다. 휘발유·경유에 대한 세금을 폐지하고 구매에 대해서는 일정한 보조금을 지급한다. 석유 공급 차질이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막대한 액수의 보조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대만 또한 유가 상승 충격을 완화하는 정책을 시행하나 장기적인 석유 수요 감축 정책을 병행한다는 점에서 일본과 차이를 보인다. 대만은 국제유가 상승분의 60~75%를 국영기업(대만중유공사)이 부담해 유가를 관리한다.

에너지 고효율 가전 구매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시내버스의 전면 전동화를 통해 민간의 석유 수요 감축도 유도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총 642억 대만달러(약2조 7263억 원)를 투입해 시내버스 1만 1700대를 전기버스로 전환했다.

보고서는 에너지 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구조 전환 정책과제로 △탈탄소 설비 전환 세제지원 강화 △에너지 고효율 제품 구매 지원 △에너지 다소비 산업 경쟁력 강화의 3대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탈탄소 설비 전환과 관련된 세제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유럽연합은 청정산업 보조금 정책을 통해 그린수소, 합성연료 등 저탄소 연료생산을 위한 설비 전환비용의 45~100%를 보조금으로 지원한다. 기업의 설비 전환 비용을 지원해 국가 차원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를 참고해 E-나프타, Bio-나프타 생산설비 전환에 현행 신성장·원천기술 수준의 세액공제 적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나프타는 원유 정제로 얻는 전통적인 나프타가 아니라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결합해 전기화학적 촉매 공정으로 인공적으로 합성해 낸 나프타다. Bio-나프타는 폐식용유나 팜유 같은 식물성 기름, 동식물성 유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등을 원료로 추출 및 가공하여 만든 친환경 나프타다.

단기적인 석유 수요 억제와 함께 장기적으로 석유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정책도 요구된다. 보고서는 대만처럼 에너지 고효율 제품 구매를 지원해 석유 사용량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석유화학, 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도 요구된다. 영국은 러·우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등의 에너지 집약 산업을 대상으로 전력망 이용료 환급, 신재생 에너지 부담금 면제 등의 지원 정책을 도입했다.

권혁민 한경협 성장전략실장은 "에너지 수급 위기는 반복적인 양상을 보여온 만큼 유사한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국내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설비 전환 지원 등의 중장기적 대응을 통해 석유 의존적인 산업구조의 점진적 재편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inny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