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실적 부담 감수"…퍼시스, 사무가구 '구독' 승부수

43년 만에 판매기업서 '오피스 운영 서비스'로…AI 시대 겨냥 사업모델 전환
제조사가 직접 렌털·관리·회수…50인 오피스 월 120만~130만원

박정희 퍼시스 대표가 29일 서울 영등포구 퍼시스 비즈니스 허브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퍼시스 오피스 구독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2026.7.29/뉴스1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퍼시스가 단기적인 영업이익과 현금흐름 부담을 감수하고 사무가구 구독 사업에 승부수를 띄운다.

가구를 한 번 판매하고 거래를 마치는 구조에서 벗어나 렌털과 유지관리, 공간 재배치, 회수까지 맡아 계약기간 전체에서 수익을 내는 사업모델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AI 도입과 잦은 조직 개편으로 업무환경 변화 주기가 짧아지면서 기업의 사무가구 수요도 '소유'보다 '운영'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29일 퍼시스는 서울 영등포구 퍼시스 비즈니스 허브 여의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퍼시스 오피스 구독 서비스'를 공개했다. 43년간 사무환경을 구축하며 쌓아온 제품·공간 설계 역량을 기반으로 가구 판매 이후의 운영 영역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기업은 필요한 사무가구를 3년·4년·5년 단위로 구독하고 계약기간에 정기 점검과 유지보수, 의자 클리닝, 레이아웃 변경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계약이 끝나면 가구를 인수하거나 반납할 수 있으며 계약 현황과 가구 자산, 사무실 도면, 서비스 처리 이력은 디지털 플랫폼 '오피스 서비스 허브'에서 관리한다.

가구를 구매한 뒤 조직 개편 때마다 재배치 업체를 별도로 찾고, 고장이 나면 수리업체를 부르고, 내용연수가 끝나면 폐기까지 직접 처리해야 했던 총무·자산관리 업무를 하나의 계약으로 묶은 셈이다. 가구 공급에 그치지 않고 입주 이후 발생하는 관리 수요를 장기 고객 관계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기존 판매 방식과 차이가 있다.

박정희 퍼시스 대표는 "퍼시스는 가구를 판매하는 기업을 넘어 고객이 최고의 근무환경을 유지하도록 돕는 오피스 운영 서비스 기업이 될 것"이라며 "고객은 본업에 집중하고 오피스의 보이지 않는 복잡성은 퍼시스가 덜어드리겠다"고 말했다.

AI 도입은 하루, 사무실 변경은 수개월…빨라진 조직 변화 겨냥

구독 사업 전환의 배경에는 기업 조직이 바뀌는 속도와 실제 사무환경을 변경하는 속도 사이의 격차가 있다. AI 도입이나 사업부 개편, 프로젝트 조직 신설은 빠르게 결정되지만 책상과 의자, 회의공간을 이에 맞춰 다시 구성하려면 예산 편성부터 업체 선정, 기존 가구 처분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한 번에 큰 비용을 들여 가구를 구매하면 조직 규모가 줄거나 공간 용도가 바뀌었을 때 남는 자산도 발생한다. 반대로 노후 가구를 교체해야 해도 예산 부담 때문에 부서별로 순차 교체하면서 같은 사무실 안에 서로 다른 규격의 가구가 혼재하는 문제도 생긴다.

함철우 퍼시스 부사장은 "AI 도입과 조직 개편은 하루 만에 일어나지만 오피스를 바꾸는 데는 몇 주, 몇 달이 걸린다"며 "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소유가 아니라 운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가구를 만드는 것만으로 고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제품을 공급한 이후에도 변화하는 조직과 공간에 맞춰 오피스를 관리하는 파트너가 되겠다는 것이 이번 사업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구독 전환은 퍼시스의 단기 재무 부담을 키울 수 있다. 가구 제작과 설치 비용은 먼저 투입되지만 대금은 3~5년의 계약기간에 나눠 회수하기 때문이다. 일시 판매와 비교하면 초기 현금 유입이 줄고, 렌털 자산의 유지관리와 회수·보관에 필요한 비용도 계속 발생한다.

퍼시스는 이 같은 현금흐름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기업 고객의 구매 방식이 바뀌기 전에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조와 연구개발, 생산, 설치, 전국 유통망을 직접 갖춘 업계 선도기업이어서 장기 계약에 필요한 자금과 서비스 인프라를 함께 운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함 부사장은 "단기적으로 운영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1위 기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시장과 고객이 바뀌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투자"라고 강조했다.

구독 사업의 구체적인 매출 목표와 판매 대비 비중, 손익분기 시점은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기업이 사무가구를 자산으로 보유하기보다 필요한 기간 동안 서비스로 이용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일시 구매와 구독을 병행해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퍼시스가 29일 서울 영등포구 퍼시스 비즈니스 허브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퍼시스 오피스 구독 서비스' 이용요금 체계를 공개했다. 2026.7.29/뉴스1 정윤영 기자
구매보다 20~30% 비싸지만 관리 포함…LG전자서 사전 검증

구독 총액은 가구를 한 번에 구매할 때보다 약 20~30% 높게 책정됐다. 1000만 원 상당의 가구를 구독하면 계약기간 동안 내는 이용료는 약 1200만~1300만 원이다. 가격 차이에는 정기 관리와 의자 클리닝, 수리, 레이아웃 변경, 디지털 플랫폼 이용, 계약 종료 후 회수 비용이 포함된다.

초기 구매비를 한 번에 집행하지 않고 월 단위 운영비로 분산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기업의 재무·예산 집행 수요를 공략한다는 것도 구독 방식의 특징이다.

오문용 퍼시스 사업전략팀장은 "50인 규모의 사무실을 기준으로 5년간 구독하면 월 이용료는 약 120만~130만 원 수준"이라며 "같은 규모의 가구를 일시 구매할 경우에는 약 5000만~6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 규모에 따른 기업 할인도 적용한다. 누적 이용금액이 8000만 원 이상인 '온보딩' 고객은 계약기간에 따라 구독 소비자가에서 30.0~31.5%를 할인받는다. 2억 원 이상인 '액티브' 고객은 32.5~34.0%, 3억원 이상인 '파트너' 고객은 35.0~36.5%의 정찰 할인율을 적용받는다. 5억 원 이상 대형 프로젝트에는 별도 할인율을 책정한다.

오문용 퍼시스 사업전략팀장은 "제조사가 직접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라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며 "제품 공급부터 설치, 유지관리, 계약 종료 후 회수까지 오피스 운영에 필요한 과정을 하나의 체계에서 제공한다"고 말했다.

퍼시스는 상용화에 앞서 올해 상반기에는 LG전자 등을 대상으로 테스트베드를 운영했다. 당초 초기 투자비에 민감한 스타트업을 주요 고객으로 예상했지만, 시범 운영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도 공용공간 관리와 대규모 가구 교체, 계열사 간 비용 배분 등에 구독 방식을 활용하려는 수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고객 범위를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전체 법인으로 확대했다고 퍼시스 측은 설명했다.

전국 230개 유통 파트너도 기존 영업망에서 구독 계약과 고객 관리를 담당한다. 본사가 유통 파트너의 고객을 직접 가져오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판매망에 구독 상품을 추가하는 구조로 설계해 대리점과의 충돌을 줄였다.

퍼시스는 계약 종료 후 회수한 가구는 세척과 수리, 품질 검사를 거쳐 다시 사용하거나 중고 시장에서 유통할 계획이다. 재사용이 어려운 제품은 소재별 재활용으로 연결하고 회수 제품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도 확보했다.

함 부사장은 "가구를 납품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도입부터 사용, 회수와 순환까지 제품의 전 생애주기를 관리해야 한다"며 "국내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자원순환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만큼 구독 서비스를 순환경제 모델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