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낭 터진 줄 알았는데…고양이 십이지장 천공 세계 첫 보고

SD동물의료센터, 희귀 복막염 세계 첫 규명

십이지장으로 담즙이 흘러가는 경로(SD동물의료센터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담즙이 새어 나와 복막염이 생긴 고양이. 대부분 먼저 담낭이 터졌을 가능성을 떠올린다. 하지만 국내 의료진이 진단한 이 고양이의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담즙이 지나가는 길목인 십이지장에 작은 구멍이 생겨 담즙이 복강으로 새어 나간 것이다.

SD동물의료센터(에스디동물의료센터)는 이 같은 고양이 증례를 진단하고 수술적으로 치료한 내용이 국제 학술지 'Veterinary Radiology & Ultrasound(수의영상의학 및 초음파)'에 게재됐다고 22일 밝혔다. 고양이에서 십이지장 천공으로 인해 담즙성 복막염이 발생한 사례가 학술지에 보고된 것은 세계 최초다.

SD동물의료센터에 따르면 환자(환묘)는 혈구토와 기력 저하 증상을 보여 동물병원을 찾았다. 옆으로 누워만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검사 결과 저체온과 저혈압, 빈혈, 복수 등이 확인됐다. 의료진은 쇼크 직전의 중증 응급환자로 판단했다.

검사 과정에서 의료진은 복수에서 담즙 성분을 발견했다. 담즙은 간에서 만들어져 담낭에 저장된 뒤 음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장으로 분비되는 액체다.

보통 복강에서 담즙이 발견되면 담낭이나 담관이 터졌을 가능성을 먼저 의심한다. 하지만 이번 환묘는 달랐다.

방사선 검사에서 복강 안에 예상보다 많은 공기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담낭이 터지면 담즙은 새어 나올 수 있지만 공기까지 함께 나오지는 않는다. 반면 장에 구멍이 생기면 장 안의 공기가 복강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해당 환자의 복부 방사선. 복강 안에 공기가 발견된 모습(SD동물의료센터 제공) ⓒ 뉴스1

영상검사는 장 천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복수 검사는 담낭 문제를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의료진은 원인을 찾기 위해 추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담낭은 비교적 정상적인 상태였지만 십이지장에 작은 구멍이 생겨 있었다. 십이지장은 위와 소장을 연결하는 장기로 담즙이 장 안으로 분비되는 통로가 위치한 곳이다.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은 담낭에 저장됐다가 담관을 통해 십이지장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이 고양이는 담즙이 장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십이지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복강으로 새어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복강에는 담즙이 고였고 장 안의 공기 역시 함께 빠져나왔다. 다만 천공 위치가 위와 가까운 부위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장 천공처럼 많은 세균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CT 검사로 발견된 십이지장 천공(SD동물의료센터 제공) ⓒ 뉴스1

의료진은 개복 수술을 통해 CT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수술 중 십이지장에서 두 개의 작은 구멍이 발견됐다. 반대로 담낭과 담관은 정상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손상된 부위를 제거한 뒤 천공 부위를 봉합하고 담즙이 정상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일시적인 스텐트를 삽입했다.

환묘는 수술 후 안정적으로 회복했다.

SD동물의료센터 관계자는 "이번 증례는 희소 질환 자체보다도 서로 다른 검사 결과를 종합해 정확한 원인을 찾아낸 진단 과정에 의미가 있다"며 "복수 검사만으로는 담낭 파열로 판단할 수 있었지만 CT 검사를 통해 실제 원인이 십이지장 천공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양이에서 십이지장 천공에 의해 담즙성 복막염이 발생한 사례를 국제 학술지에 보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으로도 정확한 진단과 근거 중심 진료를 통해 반려동물 의료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SD동물의료센터 장주필 영상의학센터장과 김규창 외과원장, 이민수 영상의학원장을 비롯해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영상의학과 연구진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해피펫]

badook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