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현대차 "구내식당도 교섭하라"…노란봉투법 우려 현실로

노동위, 하청노동자 사용자성 인정…외주 업무 교섭 책임 확대
노동부 지침·노동위 판정 서로 엇갈려…기업 "불확실성 커졌다"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대형 크레인과 건조 중인 선박이 보이고 있다. 2025.10.30 ⓒ 뉴스1 윤일지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구내식당 직원까지 대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산업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이대로면 사실상 거의 모든 하청노동자와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노동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고용노동부의 노조법 해석지침과 배치돼 산업현장의 법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직접 생산공정뿐 아니라 구내식당 등 비핵심 외주 업무까지 단체교섭 책임 범위를 넓히는 판단이 나오면서 기업들이 구축해 온 도급 체계 전반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다.

원청 승인 없이는 시설 개선 불가능…사용자성 광범위하게 인정

16일 노동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전날 중앙노동위원회는 한화오션을,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각각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중노위는 한화오션이 사내식당 등을 운영하는 웰리브 소속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산업안전 문제 등에 대해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울산지노위 역시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조 관련 사건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노동위는 원청 사업장 내의 '시설 승인권'을 실질적 지배력의 주요 근거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내식당이나 세탁실의 경우 원청과 같은 시설을 사용하다 보니 조리실 시설 개선이나 세탁 설비 확충, 통근버스 이용 등 조그만 변화를 주려 해도 원청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김수현 공인노무사는 "구내식당이나 세탁시설의 경우 시설의 개선이나 설비 변경 과정에서 원청 승인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중노위는 이러한 점을 실질적 지배력의 근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용자성 '구조적 통제력' 전제돼야…노동부 지침과도 어긋나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사용자성 판단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뉴스1과 통화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려면 하청노동자의 업무 수행 과정에 대한 구조적 통제력이 전제돼야 한다"며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대형 급식업체들은 영양사와 조리사, 안전관리 인력 등을 갖춘 독립적인 사업체계를 운영하고 있어 일반적인 도급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안전조치 의무는 도급인에게 부여된 법적 의무일 뿐 노조법상 사용자성 판단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안전조치 의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 지위까지 인정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역시 전날 입장문을 통해 "고용노동부는 개정 노조법 해석지침에서 공장 구내식당 등은 도급 위임 계약상의 일반적 지시권이 인정돼 원청의 하청기업 소속 조합원에 대한 구조적 통제에 해당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로 예시하고 있다"며 "직접적인 생산 원·하청 관계가 아닌 지원 업무까지 교섭 상대방을 확대할 경우 산업 전반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노동부 해석지침과 중노위 판단이 엇갈린 점을 산업계의 가장 큰 부담으로 꼽는다. 아직 관련 대법원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 노동부와 중노위가 서로 다른 방향의 판단을 내놓으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기준을 따라야 할지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박 원장은 "향후 법원이 노동부 해석과 중노위 판단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며 "기업들은 결국 행정소송 등을 통해 최종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청노조 안전 문제 벗어난 임금·성과급까지 교섭 요구 '우려'

산업계가 더 우려하는 부분은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가 산업안전 문제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 협상 과정에서 임금, 성과급, 복리후생 등 다양한 근로조건 관련 요구가 제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생산공정 외에도 경비, 보안, 시설관리 등 원청 사업장 내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외주 업무에 유사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결정이 개별 사업장을 넘어 국내 원·하청 운영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동안 제조업체들은 구내식당 운영, 청소, 경비 등 비핵심 업무를 전문 협력업체에 맡겨 왔으며 해당 업체들이 소속 근로자의 임금과 근로조건, 노사관계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원청의 사용자성이 폭넓게 인정될 경우 외주화된 업무에 대해서도 원청이 직접 교섭 책임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존 도급 체계의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신중한 분위기다. 한화오션은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결과는 통보받았지만 아직 결정문은 송달받지 못했다"며 "결정서를 받은 이후 면밀한 법적 검토를 거쳐 회사 입장을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역시 "결정서를 송달받은 이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법 절차와 규정을 고려해 신중하게 대응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판정 이유가 공개되지 않은 만큼 기업들은 우선 결정문 내용을 확인한 뒤 대응 방향을 검토하는 분위기"라며 "관련 소송이 이어질 경우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가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pkb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