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 파국은 막았지만 '상처투성이'…내부갈등 봉합 숙제
DS·DX 사업부간 갈등 최고조…'한 지붕 두 회사'로 갈라져
메모리 품귀 상황서 공급 차질 공포…고객사 신뢰 회복 급선무
- 양새롬 기자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삼성전자(005930) 노사가 총파업을 1시간여 앞둔 20일 밤 극적으로 성과급 개편 잠정 합의에 도달하며 총파업 위기를 넘겼지만, 후유증은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협상 과정에서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과 모바일·가전을 맡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번졌고 사실상 '한 지붕 두 회사'로 쪼개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동안 DS와 DX가 협업을 통해 만들어 온 시너지 효과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것이란 '쓴소리'가 적지 않다.
고객사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급선무다. 총파업 위기까지 내몰리는 상황을 지켜본 고객사들은 삼성전자의 '대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당장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메모리 공급이 빠듯한 상황이지만 시장 상황이 조금만 안정된다면 글로벌 빅테크들은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중재와 사회적 압박 속에 가까스로 봉합됐지만, 내부 균열과 노사 신뢰 회복이라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이번 갈등 과정에서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삼성전자 내부 조직 균열이다. 특히 DS 부문과 DX 부문 간 이해관계 충돌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면서 사실상 두 회사로 쪼개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DX 소속 일부 조합원들은 교섭권을 가진 DS 중심 최대 노조가 사실상 반도체 사업부 중심으로 협상을 이끌고 있다며 반발했다. 최근 한 달 사이 초기업노조 소속 DX 부문 조합원 약 5000명이 탈퇴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DX 조합원들은 노조 집행부의 교섭 방향에 문제를 제기하며 교섭 중단 가처분 신청 절차에도 돌입했다. DX 부문 조합원들로 구성된 '삼성전자 직원 권리 회복 법률대응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 직원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구안을 선정해 달라"며 노조 집행부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이 부진할 때 모바일과 가전 사업에서 호실적을 거둬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실적 구조를 유지해 왔다. 사업부 간 상호 보완 구조를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와 위기 대응 능력을 확보해 온 셈이다.
하지만 이번 성과급 갈등 과정에서는 사업부별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내부 결속력이 흔들리는 모습이 노출됐다. DX 부문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했지만, DS 부문은 반도체 업황 부진 영향으로 성과급 변동 폭이 컸던 만큼 보상 체계를 둘러싼 시각차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에 삼성전자의 기존 '원 삼성'(One Samsung) 체제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업부 간 시너지를 통해 위기를 돌파해 왔던 삼성전자 특유의 구조가 이번 갈등을 계기로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사갈등보다 더 어려운 게 노노갈등"이라며 "노사 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소할 수 있지만 노노갈등은 신뢰 문제가 얽혀 있어 훨씬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정부 개입을 통해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았지만, 삼성전자 미래까지 고려한 근본적 해법이 되려면 사업부 간 이해관계 조정과 보상 체계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입게 된 무형의 손실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 업계가 더 민감하게 보는 부분은 생산 차질에 따른 직접 피해보다 '신뢰 상실'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 계약은 단순 가격 경쟁보다 안정적인 납기와 생산 지속 가능성이 핵심 평가 요소로 꼽힌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은 공급 안정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만큼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질 경우 대체 공급처 검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미래노동개혁포럼과 자유기업원이 공동 개최한 포럼에서도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가 "신뢰와 시장 구조 변화는 비가역적 비용으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노사 갈등 장기화 자체가 고객사 관계와 브랜드 신뢰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협력사와 지역 경제까지 긴장했던 점도 적잖은 부담으로 남았다.
결국 삼성전자가 지속 가능한 성과급 체계와 내부 소통 구조를 마련할 수 있을지가 향후 노사 안정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또한 이번 합의가 사실상 정부와 중앙노동위원회의 막판 중재 속에 성사됐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삼성전자 노사가 자율 교섭만으로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향후 임단협 때마다 유사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전자가 '무노조 경영 이후'에 걸맞은 노사 협의 구조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삼성전자 노사는 이번 과정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무노조 경영에서 유노조 경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미숙함과 과도한 대응으로 불필요한 진통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도 20일 밤 입장문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겸허한 자세로 보다 성숙하고 건설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flyhighr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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