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전 받으려면 영업기밀 증명해야"…정유업계 최고가격제 딜레마
27일 0시부터 '2차 최고가격제' 돌입…정유사, 적자 판매도 감내
손실액 검증 과정서 원가 구조·정제마진 등 핵심 기밀 노출 우려
- 원태성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국내 정유업계가 정부의 석유 최고 가격제 시행과 수급 안정 조치에 적극 협조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막대한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사내 기밀 노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공급가를 낮춰야 하나 손실 보전 기준이 여전히 모호한 데다 보전을 받기 위해선 기업의 핵심 자산인 영업기밀을 상세히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정이 추경을 통해 지원책을 마련 중이지만 정유사들은 경영 데이터 노출과 재무적 타격 심화를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27일 0시부터 2차 석유 최고 가격제를 시행하고 유류세 인하 폭도 확대했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1800원대에 안착시키기 위한 조치다.
휘발유는 1934원, 경유는 1923원 등으로 상한선이 그어졌다. 이는 1차 때보다 유종별로 리터당 210원씩 오른 수치지만 국제 유가 상승 폭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다. 정부는 여기에 휘발유(15%)와 경유(25%)의 유류세 인하 폭을 기존 대비 두 배 이상 확대하며 물가 잡기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업계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커졌다. 국제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급등하며 원가 부담은 치솟는데 정부가 공급가를 묶어버리면 정유사는 상승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적자 판매'를 감내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나프타(납사) 수출 제한과 더불어 정유사의 수출 물량을 전년 대비 100% 이내로 통제하고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공급가 제한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수익성 높은 수출을 통해 메워야 하는데 정부가 국내 공급량 90% 유지를 의무화하고 수출길까지 막아버려 사실상 퇴로가 차단된 상태"라며 수익성 악화를 우려했다.
당정이 25조 원 규모의 추경에 정유사 손실 보전 사업을 포함했지만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손실 보전 근거가 되는 관련 법령이 '보전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에 불과하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보전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환급 방식(현금 환급 또는 세제 감면 등)이나 소급 범위가 확정되지 않아 실제 지원이 기업의 실질적 피해액에 미칠지는 불투명하다는 평가다.
손실 보전을 받기 위한 절차도 업계에는 부담이다. 정부가 보전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각 사가 입은 구체적인 손실액을 검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개별 기업의 원가 구조, 공급가 책정 방식, 정제마진 등 핵심 영업기밀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전략은 각 사의 마케팅 기술이자 경쟁력인데, 이를 정부에 통째로 드러내야 한다는 점이 큰 부담"이라며 "자칫 데이터 공유 과정에서 담합 의혹 프레임에 갇힐까 봐 협회 차원의 대응도 조심스럽다"고 우려했다.
규제 해제 가이드라인이 모호한 점도 '무기한 감내'에 대한 공포를 키우고 있다. 정부는 리터당 1800원대 도달 시 해제를 시사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중동 리스크가 여전해 국제 제품 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1800원대에 일시적으로 진입하더라도 대외 변수가 해결되지 않으면 통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보전금 지급 시점 또한 빨라야 2분기 이후로 예상돼 정유사들은 당분간 밑지고 파는 구조를 버텨내야만 한다.
업계에서는 '전쟁 특수'로 정유사가 돈을 번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호소한다. 최근 유가 급등으로 발생한 재고평가이익은 장부상 수치일 뿐, 실제 원유를 새로 구매하는 비용과 운임, 보험료 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통에 재고평가이익으로 돈을 번다는 오해가 있지만 이는 장부상 수치일 뿐 실제 원유 구매 비용과 운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며 "실질적이고 투명한 보전책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국가 에너지 인프라를 지탱하는 정유업계의 재무적 타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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