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교섭요구 '쓰나미' 현실로…재계 "응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다"
[노란봉투법 시행]의제도 모르고 협상 테이블로…'끼워넣기' 우려
M&A·구조개편·본사 이전도 파업 대상…교섭 요구 사실 공고 '아리송'
- 박기호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가 쏟아질 텐데 교섭 대상인지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이후에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공고를 해 놓고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올 테고 반대로 공고를 하지 않으면 협상 의지가 없다며 천막농성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대기업 노무 담당자의 하소연이다. 오는 10일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경제계가 '상상 이상의 혼란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는 이유다.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사용자성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원청을 상대로 부문별 하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교섭 요구 직후 바로 농성에 돌입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또한 의제도 모른 채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기업들이 '노조의 교섭 요구 시 의제를 명기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노조가 사용자성이 분명하지 않은 의제를 핵심 요구를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반대로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의제로 협상을 시작한 다음 다른 의제를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8일 경제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하청노조는 오는 10일 사용자(원청기업)에게 일제히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다. 하청노조 조합원 규모는 약 13만 7000명으로 건설업계 일용직과 특수고용직이 대거 포함돼 있다.
앞서 금속노조는 이미 지난 1월 원청기업에 교섭을 요구했고 10일에 다시 교섭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기로 했다. 현대차·기아,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이 대상이다.
아울러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서비스연맹 △민주일반연맹 △건설산업연맹(3월 중) △사무금융노조 △정보경제연맹 등이 10·11일에 원청기업에 교섭을 요구하기로 했다. 사실상 주요 대기업은 물론 금융회사, 정부 부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이 협상 요청을 받는 셈이다.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라 재계의 우려가 큰 이유는 '모호성' 때문이다.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해서도 실질적 지배력 여부(사용자성)에 따라 원청에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도록 했지만 사용자성의 판단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다. 판례가 쌓일 때까지 해소가 힘든 부분이다.
또 정당한 노동쟁의 행위 범위가 확대된 반면 쟁의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제한된다. 노조를 대상으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노조 파업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산업 현장의 혼란은 이미 시작됐다. 한화오션 한 협력사 직원들은 노란봉투법 시행 이전인 지난달 25일부터 원청교섭을 촉구하며 한화오션 거제조선소 내 선각 삼거리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 측은 원청교섭 요구와 관련해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법령에 따라 진행할 사안으로, 관련 규정에 맞춰 성실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협력 업체는 생산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독립 법인"이라며 "생산 기여에 대한 성과급 지급 요구는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경제계는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산업 안전 의무를 이행하거나 관리·감독하는 과정 역시 '실질적 지배'로 해석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산업 현장의 중대재해 예방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현장의 안전 관리를 철저하게 할수록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정부 역시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 지침에서 '노동안전 교섭 의제에 대하여 계약외사용자가 작업공정·안전 절차·보호장비 등 전반적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지배·통제하는 경우 해당 근로조건에 대한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원청이 사내의 산업 안전에 대한 관리를 열심히 하면 사용자성이 인정되고 결국 다른 요구들은 많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특히 사용자성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산업 현장은 이들의 천막 농성과 시위가 빈번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자칫 사업장을 점검할 수 있다는 걱정이 역력하다. 게다가 쟁의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제한하기에 노조가 사업장 점거 등 극단적인 시위에 나설 수 있다는 불안감도 팽배하다.
실제로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선 하청노조지회와 웰리브 지회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과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면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웰리브 지회의 경우 쟁의권 확보를 위한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한화오션은 웰리브 소속 조합원에 대해선 사내에서 생산에 관여하지 않은 독립된 사업을 영위하는 법인이기에 성과급 지급 요구는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경제계가 걱정하는 장면이 한화오션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갈등이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웰리브 지회의 요구에 한화오션이 응하지 않으니 바로 천막을 친 것"이라며 "만약에 하청노조에서 교섭을 요구하는데 사용자들이 공고를 안 할 경우 웰리브 지회처럼 천막을 치거나 집회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매뉴얼에서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성을 인정한 근로조건 이외 다른 조건에 대해 교섭에서 의제로 할지 여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한 대목에 대해서도 경제계는 경계하고 있다.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의제에 대해서도 노조의 요구가 계속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법에 따라서 교섭하면 된다"며 "하지만 노조가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의제에 대해서도 계속 요구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안전 등의 안건으로 교섭 의제를 제시한 후 협상 테이블에선 다양한 의제를 안건으로 올릴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예를 들어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사안을 논의하자고 한 후에 노조의 핵심 요구를 끼워 넣는 식으로 협상을 끌고 갈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제계는 정부가 노란봉투법 시행령과 해석 지침을 마련할 때 '노조의 교섭 요구 시 의제를 명기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부분은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하느냐는 데에 있다. 최근 민주노총이 '하청노조가 원청에 법 시행 당일인 10일 일제히 교섭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밝히자 경제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장에선 '사용자성 여부'에 대한 검토도 안 됐기에 일괄적으로 요구가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10일부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전했다.
노동쟁의 대상이 확대된 것과 관련해선 인수합병(M&A)부터 인력 재배치 등 기업의 중요 의사 결정 역시 노조의 입김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도 상당하다. 최근 구조개편 작업이 한창인 석유화학 '사업재편', HMM의 부산 이전 역시 노조가 파업할 수 있게 됐다. 기업의 M&A 역시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 갈등이 상당한 SK스토아 노조의 라포랩스 인수 반발과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석화 산업 구조개편의 경우 합병에 따른 근로조건 변화가 올 경우 노조에서 파업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조법 개정으로 구조 개편이 늦어져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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