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차이나쇼크 2.0' 시작…삼성, 전시장 대신 호텔로 왜?

미니LED·AI·스마트홈까지 '질적 도약'…韓 대체 노림수
中, 보안·신뢰 약점…韓, 기술·신뢰 기반 AI '길목 기술' 선점해야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6' 개막 일인 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TCL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6.1.7/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라스베이거스=뉴스1) 박기범 기자 손재권 더밀크 대표

"중국이 생산을 넘어 품질 경쟁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CES 2026은 차이나쇼크 2.0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6'이 열린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중앙홀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TCL 전시관이었다. 지난해까지 삼성전자(005930)가 자리했던 바로 그 자리다. 삼성이 호텔로 이동하자 중국이 그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원래 저 자리가 삼성 자리였어요. 삼성은 윈 호텔로 갔지만 지난 15년간 같은 자리에 있던 삼성이 없으니 큰 변화가 온 것을 실감했습니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의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전시 공간의 변화가 아니다. 글로벌 TV 시장을 넘어 전자 IT 시장의 구조적 전환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TCL, 삼성전자 자리 차지…숫자로 증명한 '추격 완료'

TCL의 약진은 수치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24년 4분기 글로벌 TV 출하량 기준 삼성이 16%로 1위를 유지했지만 TCL이 14%로 바짝 뒤쫓고 있다. 하이센스가 12%, LG전자(066570)가 10%로 그 뒤를 이었다. TCL은 2022년 LG를 제치고 글로벌 2위에 올랐고, 그 격차를 계속 벌리고 있다.

CES 2026 현장에서 확인한 TCL의 기술력은 '저가 중국산'이라는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TCL은 자체 개발한 SQD-미니LED 디스플레이와 증강현실 글라스 레이네오 시리즈를 공개했다. 전시된 프리미엄 TV는 국내 제품과 화질 면에서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TCL은 '에이미랜드(AiME LAND')라는 별도 공간을 구성해 AI 로봇 에이미와 AI 연동 스마트홈 플랫폼을 선보였다. 단순 TV 제조사가 아니라 AI·센서·스마트홈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중국 브랜드 하이센스 역시 세계 최초 4색 마이크로 LED TV를 내세워 기술력을 뽐냈다. 하이센스 부스에도 수많은 사람이 몰리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들 브랜드는 이번 전시에서 '브랜드 인지도' 구축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TCL 부스 곳곳에 올림픽 마크가 붙어있었다. TCL은 올림픽 공식 후원사이자 NFL(미국프로풋볼) 공식 파트너다. 삼성이 올림픽 후원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하이센스는 월드컵을 후원한다. 올림픽, 월드컵, NFL 등 글로벌 주요 스포츠 이벤트에서 중국 브랜드를 확인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6' 개막 일인 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내 TCL 부스 한쪽 벽면. TCL이 올림픽과 NFL 파트너사임을 소개하고 있다. 2026.1.7/뉴스1 ⓒ News1 박기범 기자
휴머노이드 로봇, 중국이 절반을 넘었다

TV만이 아니다. 이번 CES의 핵심 키워드인 '피지컬 AI' 영역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CES 공식 집계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로봇 전시 업체 38개 중 21개(55%)가 중국 기업이다. 모건스탠리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중국은 휴머노이드 관련 특허 7705건을 출원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1561건에 그쳤다.

특허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대량 생산 역량까지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상하이 기반 AgiBot은 2025년 12월까지 5000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에 성공했다. 테슬라 옵티머스가 수백 대 수준인 것과 대비된다. AgiBot은 베이징에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 오프라인 매장까지 열었다.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6' 내 소니혼다모빌리티 부스 2026.1.7/뉴스1 ⓒ News1 박기범 기자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6' 개막 일인 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소니혼다모빌리티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아펠라'를 살펴보고 있다. 2026.1.7/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소니 사라진 자리에 '소니 혼다 모빌리티'가 섰다

LVCC 서관에서 'SONY' 로고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자리를 채운 이름은 소니혼다모빌리티(Sony Honda Mobility)였다.

"저 자리가 원래 소니였습니다. 1977년부터 약 48년간 CES를 지켜온 상징 같은 공간이죠. 그런데 이제는 혼다와 함께 '모빌리티 회사'로 나옵니다." 손 대표의 설명이다.

소니는 1977년 시카고 CES에 처음 참가한 이후 거의 50년간 CES의 상징적 존재였다. 1982년에는 세계 최초 CD 플레이어를 공개했고, 1990년에는 모리타 아키오 회장이 일본인 최초로 CES 기조연설에 나섰다. 그런 소니가 이제 TV·오디오·카메라 대신 전기차를 전면에 내세웠다.

소니혼다모빌리티는 전기차 '아필라'(AFEELA) 1을 핵심 전시품으로 공개했다.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차량으로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다. 올해 말 캘리포니아에서 첫 인도를 시작해 2027년 상반기 일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아필라의 핵심 전략은 플레이스테이션(PS) 생태계와의 연동이다. 차량 내에서 PS 리모트 플레이가 가능하고, 뒷좌석에는 게임용 모니터와 콘솔이 배치됐다. 40개의 센서(카메라, 라이다, 레이더, 초음파)와 800 TOPS 연산 능력의 ECU를 탑재해 고도화된 자율주행을 지원한다.

손 대표는 이번 전시를 일본 대표 기업 소니의 변화로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소니가 돈 못 번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오해"라며 "소니는 엔터테인먼트·이미징·센서 분야에서 수익이 엄청나다. 그런 상황에서 더 공격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의 변화 움직임은 다른 곳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파나소닉 역시 이번 전시에서 TV·배터리 중심의 전통 제조 이미지를 벗고 에너지관리·AI·플랫폼 중심으로 전시를 재구성했다.

삼성은 왜 호텔로 갔나…'B2B 강화 신호'

올해 CES에서 가장 이례적인 변화는 삼성전자가 LVCC 대신 윈 호텔에 단독 전시장을 마련한 것이다. 입구부터 사전 예약과 신분 인증이 이뤄졌고, 사진 촬영도 제한적이었다.

손 대표는 이를 두 가지로 해석했다. 첫째, B2B 집중이다. "CES 본 전시장은 대중 전시 성격이 강합니다. B2B 파트너들과 조용히, 깊게 미팅하기 어려워요. 삼성이 호텔로 나간 건 B2B에 집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기술 보안이다. "중국 기업들이 CES에서 신제품을 보고 빠르게 따라옵니다. 보안 문제 때문에 더 이상 LVCC에서 공개하기 어려운 기술들이 늘어났어요."

이런 전략은 2025년 엔비디아가 먼저 시도한 것이다. LG전자, 현대모비스 등 국내 기업도 전시관 내 별도 비즈니스 공간을 마련해 일반 참관객 출입을 제한했다. 향후 이런 B2B 중심 전시 전략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이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에서 열린 CES 2026 '더 퍼스트룩'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6.1.5/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차이나쇼크 2.0의 본질…'한국 대체' 노림수

손 대표는 이번 CES를 '차이나쇼크 2.0의 시작'으로 규정했다.

"중국이 제조업 분야에서 다른 국가에 충격을 준 것을 '차이나쇼크 1.0'이라고 한다면, 2.0은 질적 변화입니다. 중국이 노리는 것은 '한국 대체'입니다. 단순히 싸게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강한 영역을 직접 겨냥하는 흐름이 뚜렷합니다.“

차이나쇼크 1.0이 '양'의 공세였다면 2.0은 '질'의 공세다. 가격은 한국 제품의 2/3 수준이면서 품질은 거의 동등하다. 여기에 올림픽·NFL 후원 같은 공격적 마케팅까지 더해지고 있다.

다만 중국의 약점도 명확하다고 손 대표는 진단했다. 다양한 정보를 포함하는 AI시대에서, 글로벌 소비자가 중국 제품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중국은 보안·신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글로벌 확장을 끝까지 가져가기 어렵다"며 "삼성전자가 보안·반도체·AI 통합 기술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韓 기업에 남은 선택지…K-브랜드, 기술·신뢰의 힘 키워야

손 대표는 한국 기업이 맞서야 할 곳은 중국의 가격 경쟁이 아니라 기술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AI 시대에는 '골목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정 핵심 기술을 선점하면 산업 전반에서 영향력이 커집니다. 한국 기업이 기술 기반 경쟁력을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중국과의 격차도 만들어질 겁니다."

한국이 집중해야 할 '골목'은 피지컬 AI다. 거대언어모델(LLM) 스케일 경쟁에서 미국·중국을 이기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조업을 결합하는 영역에서는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로봇·자동차·가전에 AI를 결합하는 피지컬 AI 영역이 바로 그 골목이다.

"한국 기업도 이제 'K-브랜드'의 힘을 기술로 증명해야 합니다. 생산이 아니라 품질, 가격이 아니라 신뢰. 그 싸움에서 승부가 갈립니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pkb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