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구조조정 '급물살'…실타래 셈법·감축량 배분 '복병'(종합)

대산 NCC통폐합 '1호 자율 구조조정'…발등에 불 떨어진 여수·울산
정부 "무임승차 지원 없다" 강경…감축량 놓고 '눈치게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6일 오전 전남 여수시 여수산업단지에 소재한 LG화학 산업현장을 방문해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함께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1.26/뉴스1

(서울=뉴스1) 최동현 김승준 기자 =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제1호 석유화학 구조조정안을 마련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구조개편 작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특히 정부가 민간의 자율재편계획 수립 시한을 연말로 재차 못 박으면서 울산과 여수 석유화학산업단지도 구조조정안 마련에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산단별로 득실셈법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기업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탓에 그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전을 거듭했는데, 시한이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극심한 막판 진통이 예상된다. 구조개편의 핵심인 나프타분해시설(NCC)의 감축 할당량이 아직 깜깜이인 점도 복병이다.

1호 구조조정 '대산NCC 통폐합'…정부 "두 달 내 승인·인센티브 지원"

산업통상부는 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로부터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과 관련한 사업 재편 계획 승인 신청을 접수했다고 26일 밝혔다. 지난 8월 석화업계 구조재편 논의가 시작된 이후 업계의 첫 재편안이 나온 것이다.

재편안의 핵심은 통폐합이다. 롯데케미칼은 대산공장을 물적으로 나눠 HD현대케미칼(HD현대오일뱅크·롯데케미칼 합작사)과 합병한다. 이를 통해 NCC 설비와 범용 석유화학 제품 설비 일부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에틸렌 등 NCC의 생산능력(CAPA)을 줄이는 것이 골자다.

현재 양사의 NCC 생산량은 대산공장이 110만 톤, HD현대케미칼이 85만 톤 수준이다. 롯데케미칼(대산공장)의 생산시설 가동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NCC 생산량을 감축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범용 제품인 에틸렌 생산량을 줄이는 대신, 고부가제품(스페셜티) 비중을 늘리는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낸다.

산업부 산하 사업재편계획심의위원회는 기업활력법에 따라 양사가 제출한 계획안을 심사해 세제지원 및 상법 특례 등 인센티브를 지원할 방침이다. 또 세제·연국개발(R&D)·원가절감 및 규제 완화 등 '맞춤형 패키지 지원책'도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사업재편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고부가·스페셜티 중심의 사업구조 전환도 중요한 만큼 '석유화학산업 고부가화 R&D 로드맵'을 통해 사업재편 참여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사업 재편 신청은 법령에 따라 2개월 내에 심의·승인을 할 예정"이라며 "승인 시점에 사업 재편 합리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세제·금융 및 규제 특례, 원가 절감 등 지원 방안이 공개될 것"이라고 했다.

공정위도 신속한 기업결합 심사를 위해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석유화학 대기업들의 사업재편은 석유화학산업의 전체 가치사슬과 인접시장, 중소기업 등 거래 상대방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공정위는 중소기업·소비자 피해 예방 필요성, 국민경제적 측면의 효율성 증대 효과 등을 세심하게 검증·심사해 경쟁당국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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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수 "기한 내 신청" 한다지만…복병 산적에 난항 예고

재계는 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의 구조조정을 신호탄으로 국내 석유화학 통폐합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본다. 정부는 무임승차 기업에는 페널티를, 자율재편 수립 계획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당근과 채찍' 방침을 공식화했다. 뚜렷한 진전 없이 물밑 협의만 거듭하는 여수·울산 석유화학단지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김정관 장관은 이날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사업재편계획서 제출기한은 12월 말이며, 이 기한을 연장할 계획은 없다"면서 "이 시한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은 정부 지원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대산이 사업재편의 포문(gate)을 열었다면, 여수는 사업재편의 운명(fate)을 좌우할 것"이라며 여수 NCC의 신속한 동참을 압박하기도 했다.

여수(LG화학·GS칼텍스)와 울산(에쓰오일·SK지오센트릭·대한유화) NCC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와 보폭을 맞추겠다"며 기한 내 사업 재편 계획 승인을 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정반대다. 범용 제품이 현재 중국발(發)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더라도, NCC 생산량을 줄이면 규모의 경제를 해치고 시장 점유율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여기에 기업마다 형편과 셈법이 달라 수개월째 협의가 공전 중이다.

실제 여수에서는 LG화학이 여수 NCC를 GS칼텍스에 매각하고 합작사를 설립해 통합 운영하자고 제안했지만, 논의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울산도 SK지오센트릭이 NCC 설비를 대한유화에 넘기고, SK에너지가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납사를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진전은 없는 상태다.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도 울산의 변수다. 내년 상반기 준공 예정인 샤힌 프로젝트는 연간 에틸렌 180만 톤 생산 능력을 갖춰 국내 전체 NCC 생산능력(1470만 톤)의 12%를 차지할 전망이다. 에쓰오일 측은 샤힌 프로젝트가 정부 구조개편 방향에 역행하지 않으며 원가 경쟁력을 갖춘 설비라는 입장이다.

구조조정의 핵심인 'NCC 감축량' 할당 문제도 숙제다. 정부는 국내 에틸렌 생산량의 18~25% 수준인 270만~370만톤 감축을 요구한 바 있는데,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사업 재편 계획에 담은 NCC 감축량은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에선 110만 톤 생산능력을 갖춘 대산공장 가동을 중단할 것이란 시각이 많은데, 이 경우 울산과 여수가 최대 260만 톤을 나눠 감축해야 한다.

업계는 정부가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연말까지 석화산단 3곳의 구조조정안을 모두 수렴한 뒤 지역별 감축 규모를 확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마다 셈법이 크게 달라 (신청 기한인) 연말까지 진통이 불가피하다"며 "NCC 감축량 분배도 여전히 갈등의 씨앗"이라고 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