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비철금속 세계 1위 이끈 정도경영

도전정신으로 압도적 기술력 우위 "개혁보다 변화"
자원 재활용·친환경 사업 선도…"매일매일 발전해야"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고려아연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6일 별세한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010130) 명예회장은 제련산업 불모지이던 대한민국에서 고려아연을 세계 최고 비철금속 기업으로 키워낸 주역이다.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에서 봉산에서 고 최기호 고려아연 초대회장의 6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1960년 경기고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학사와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최 명예회장은 1973년 10월 귀국해 영풍광업에서 재무·회계업무를 도맡았다. 이후 정부에서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을 발표했고, 아연, 연 광산 사업을 하던 영풍광업이 제련업종을 담당하는 회사로 선정됐다.

제련소 건설부터 기술 개발까지…빛난 도전정신

최 명예회장은 제련 사업을 운영하라는 제안을 받고 정부, 금융회사 등과 협의한 후 1974년 8월 1일 단독회사를 설립해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경영을 시작했다.

최 명예회장은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1300만 달러를 빌리고 400만 달러를 자본금으로 투자받았는데, 이는 당시 IFC가 투자한 민간기업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제련소 건설을 해외 건설사에 일괄수주(턴키) 방식으로 맡기는 대신 직접 구매부터 건설까지 도맡는 방법을 택했고, 이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기술까지 익히는 기회가 됐다.

IFC는 사업자금으로 7000만 달러를 예상했지만 4500만 달러로 공사를 완성했다. 돈을 아끼느라 큰 건설회사와 계약하지 않고 수십 개의 단종면허 토목공사업체와 건건이 계약한 결과였다.

최 명예회장은 이어 대단위 제련소를 건설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준비했다. 온산 비철단지 내 제련소를 설립할 때부터 기술 수준과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의 제련소를 건설한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기본계획과 프로세스 특허를 외국에서 도입했다. 투자 시 비용절감이나 효율성을 따지기보다 최신 기술과 미래 연관 사업과의 상호 보완 관계에 중점을 뒀다.

1978년 4월 공장설립 후 최 명예회장은 2년간 경영관리체계를 정비해 온산제련소의 정상가동을 위해 노력했고,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 재임 시 고려아연 기술연구소 설립과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생산시설 확장에 힘을 쏟았다.

이 기간 아연/연/동제련 통합공정,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DRS공법의 연제련공장 착공과 아연괴 런던금속거래소(LME) 등록으로 경쟁력을 강화했다. 또 1990년 기업공개를 추진해 투명경영 실현과 국민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고, 1983년 영풍정밀, 1984년 서린상사, 1987년 코리아니켈 등 계열사를 설립했다.

기본에 충실한 정도경영…"개혁보다 변화, 매일매일 발전"

최 명예회장은 1992년 3월 회장 취임 후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신조에 맞춰 아연공장 및 연 제련 공장을 증설해 나갔고, 호주에 아연제련소 SMC를 설립하며 글로벌 사업 기반을 확대했다.

최 명예회장은 신중하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한 투자와 모험, 끈질긴 노력으로 반드시 결과를 끌어내는 승부사 기질을 가진 경영인이었다. 적극적인 투자와 모험정신, 선도적인 연구·개발(R&D)은 고려아연의 DNA로 자리 잡았다.

고는 제련산업을 친환경사업으로 만들어가는 노력도 꾸준히 실천했다. 아연 잔재를 환경친화적인 청정슬래그 형태로 만들어 시멘트 원료로 판매하는 등 아연잔재 재처리 기술을 상용화했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원 재활용 전담 부서를 신설해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산업용 자동차용 폐배터리, 아연재 등을 수거해 원료로 사용하고 유가금속을 다시 회수함으로써 폐기물의 무분별한 처리를 막았다. 고려아연이 연간 100만 톤이 넘는 각종 광석 및 재생물질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회수하는 금, 은, 인듐, 안티모니 등의 희소금속들은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며 회사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창업 초기와 비교해 고려아연의 아연 생산 능력은 연 5만 톤에서 65만 톤, 매출액은 114억 원에서 12조 원 수준까지 늘었다.

최 명예회장은 평소 기업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죽는 것이라고, 회사도 사람처럼 노화 방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2014년 고려아연 창립을 맞아 직원들에게 "나는 혁신이나 개혁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라며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 한꺼번에 큰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개혁보다는 변화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jup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