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 K기업]①'오락가락' 트럼프…韓 기업 불확실성에 '신음'

한미 구두 합의에 온탕·냉탕 오가…자체 대책 고심하지만 '한계'
고관세 여파로 기업 경기 전망 '암울'…반도체 등 품목 관세 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미국의 관세 정책 때문에 당장의 실적 예상부터 사업 계획까지 모든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한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걱정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변덕'에 신음하고 있다. 자고나면 바뀌는 관세 정책에 기업들은 경영계획을 세우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우리 기업들은 협상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자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 미국의 관세 여파가 올해 3분기 실적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쳤을지 두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전없는 한미 관세 협상…기업들, 장기화 우려

3일 정치권과 외신에 따르면 한미 간 관세 협상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양국은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펀드 출자와 집행 방식을 두고 이견을 거듭하고 있다. 게다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협상에서 대미 투자 금액을 기존의 구두 합의액인 3500억 달러에서 더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펀드에 대해 '선불'이라고 언급했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진의를) 확신하지 못하겠다"고도 했다. 양국의 관세 협상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양국이 구두로 관세 협상을 타결했을 때만 해도 우리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당시 양국의 극적인 협상 타결로 최대 리스크가 해소된 것으로 봤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협상이 다시 미궁으로 빠진 것은 물론 장기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미 양국은 10월 말부터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협상 타결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수입 전자기기에 장착된 반도체 개수에 따라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우려는 더욱 확산 중이다.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도중 이재명 대통령이 미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의 '결단에 책상'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5.9.1/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3분기 실적 통해 '트럼프 관세' 여파 확인될 듯…반도체 품목 관세 '최대 악재'

미국의 고관세 여파로 우리 기업들의 경기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제조기업 2275개 사를 대상으로 2025년 4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전 분기(81) 대비 7포인트(p) 하락한 74를 기록했다. 전년도 같은 분기보다 11p 하락했다. BSI가 100 이하면 해당 분기의 경기를 이전 분기보다 부정적으로 본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대한상의는 "미국의 관세 부담이 본격화하면서 대미 수출 기업은 물론 중소 협력업체 경영 여건까지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당장 3분기 실적 역시 미국 관세 여파가 불가피하다. 미국 정부의 품목 관세 영향을 직접 받는 자동차의 경우 지난 4월부터 25% 품목 관세가 적용 중이다. 현대차·기아는 올 3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5조 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1년 전보다 20% 이상 감소한 수치이며 2022년 3분기 이후 3년 만에 가장 저조한 실적이 예상된다.

이미 미국에서 50%라는 고율의 관세를 맞고 있는 철강업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유럽연합(EU) 역시 철강 수입 관세를 50%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EU는 한국 철강업계의 최대 수출 시장인데 미국의 고율 관세 여파가 EU로 확산한 셈이다.

국내 의약·바이오 업계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모든 해외 브랜드 의약품에 대해 10월 1일부터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일단 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제약사와 협상을 하겠다는 의도로 읽히는데 업계의 불확실성은 더욱더 커지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는 의약품 다음의 품목 관세 부과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의 관세 여파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수출 다변화 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실제, 관세 여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9월 수출액은 역대 월별 최대치인 659억 5000만 달러(8.3% 증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근본적으로 미국의 관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마다 가격 정책, 수출 시장 다변화 등을 통해서 미국의 관세 문제에 대비하고 있지만 관세 문제 합의가 최선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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