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비 게시 의무화…수의계 반발 "지원 없이 규제만"

대한수의사회 "탁상행정…홈피 추가 게시 문제"

한 동물병원에 진료비 및 부가세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최서윤 동물문화전문기자 = 정부가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한 규제는 강화하면서 실질적인 지원은 전무하다는 수의계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3일 대한수의사회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발표한 수의사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고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번 수의사법 시행규칙 개정의 핵심은 동물병원의 진료비 게시 방식 변경이다. 기존에는 동물병원 내부에 책자나 벽보 등을 비치하거나, 병원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두 가지 방법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라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동물병원은 내부 게시 외에도 홈페이지에 진료비를 반드시 추가로 게시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개정이 '디지털 취약계층의 알권리 증진'을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수의사회는 취지와 동떨어진 실효성 없는 규제라고 비판했다.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계층을 고려한다면서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를 의무화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인터넷 취약계층의 정보 접근을 개선하겠다면서 온라인 게시를 의무화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동물병원 대부분은 이미 내부 인쇄물 게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제13차 소비자정책위원회에서는 오히려 정부 측에 "디지털 취약계층은 홈페이지보다 병원 내부 게시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진료비는 내부 게시를 원칙으로 하고 홈페이지 게시는 선택할 것을 권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이와 반대로 내부와 홈페이지 모두에 진료비 게시를 의무화했다고 대한수의사회 관계자가 전했다.

수의사회는 또한 이러한 조치가 단순한 형식적 규제에 그칠 뿐, 실제로 필요한 정보 접근성 개선이나 현장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수의사회는 "규제를 강화하기 전, 디지털 취약계층이 진료비 정보를 얻기 어려운 동물병원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라며 "근거 없는 일률적 규제 도입은 현장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동물병원의 경우 사람 의료와 달리 정부의 재정적·제도적 지원 체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규제만 지속해서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진료비 게시 제도는 2023년 수의사 2인 이상 병원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됐다. 2024년부터는 수의사 1인 이상 모든 동물병원으로 확대 적용됐다. 진료 항목도 기존 11개에서 20개로 늘어나며 규제 범위가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수의사회는 "정부는 동물의료 현장의 현실과 어려움에 대한 충분한 파악 없이 규제부터 도입하고 있다"며 "탁상행정으로 지원은 없이 규제만 강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진료비 게시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세심한 배려와 실질적인 지원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며 "동물의료 체계를 위한 기초 인프라 구축과 제도적 기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일방적인 규제 강화로는 결코 제도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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