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얼굴 여우에 물릴 뻔"…동물체험 프로그램 '위험천만'

어웨어, 동물원 체험 프로그램 실태조사 발표

어린이 관람객이 여우가 몸을 숨긴 은신처 구멍에 얼굴을 넣으려고 접근하는 과정에서 여우가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 관찰됐다(어웨어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물림 사고 직전, 한 아이의 얼굴 앞에서 붉은여우가 이빨을 드러냈다. 체험 동물원 우리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여우는 아이들이 쫓아오자 은신처 구멍으로 고개를 들이민 아이를 향해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아이가 물릴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박진화·한상화 어웨어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야생동물은 예측 불가능한 반응을 보일 수 있어, 무분별한 접촉은 매우 위험하다"며 지난달 동물원 체험 교육 프로그램 실태조사 당시 촬영한 사진을 설명했다.

어웨어는 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동물원 체험 프로그램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6월 9일부터 23일까지 동물원 6개소의 운영 실태를 현장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육식동물인 붉은여우를 비롯한 다양한 야생동물에 대해 관람객이 손으로 먹이를 주거나 직접 만질 수 있도록 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로 인한 동물 학대·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이었다.

법적 규제도 무력했다. 2022년 전면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은 보유 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만지게 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교육 목적'이라는 명분 아래 사전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으면 예외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해 11월, 환경부가 배포한 '동물원 전시동물 교육·체험 프로그램 매뉴얼' 역시 무분별한 먹이 주기와 만지기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체험 프로그램은 대부분 장소와 시간에 제한 없는 먹이 주기, 상시적인 만지기로 운영되고 있었다. 교육보다 사람들의 재미와 전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국내 한 동물원의 수달 먹이주기 체험에서 수달이 앞발을 내밀어 먹이를 구걸하는 모습(어웨어 제공) ⓒ 뉴스1
붉은여우에게 손으로 먹이주기를 시도하는 관람객(어웨어 제공)ⓒ 뉴스1

한 동물원에서는 수달이 먹이체험용 구멍 앞에서 관람객을 향해 먹이를 구걸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또 다른 동물원에선 훈련된 붉은여우가 사육사의 지시에 따라 '앉아', '손' 등의 동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주인을 인지하고 명령에 따를 수 있다', '배변훈련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따라붙으며 붉은여우는 마치 애완동물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피부병이 의심되는 붉은여우도 전시에 동원됐다. 사육사는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피부 병변이 있는 개체는 면역력이 낮을 수 있어 치료가 필요한 상황일 수 있다"며 "다수가 접촉하는 상황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해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부병 증상을 보이는 붉은여우. 병변이 발생한 부분을 반복적으로 핥는 모습이 관찰됐다(어웨어 제공). ⓒ 뉴스1

조사 대상 6개소 중 절반은 '교육 및 체험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계획과 다른 방식으로 체험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 동물원은 계획서에 없는 사막여우 직접 접촉 체험을 상시 운영 중이었다. 또 다른 곳은 새끼 반달가슴곰에 반려견용 목줄을 채운 뒤 잔디밭에서 관람객과의 체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육 환경 역시 매뉴얼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붉은여우, 코아티, 라쿤 등은 야외 방사장이 필수지만, 4개소에서 실내 전시에 활용되고 있었다. 은신처나 그늘이 없는 사육장도 적지 않았다.

몸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와 직사광선을 회피할 수 있는 그늘이 제공되지 않은 사막여우 사육장(어웨어 제공) ⓒ 뉴스1
목줄이 채워져 체험에 동원된 새끼 반달가슴곰(어웨어 제공) ⓒ 뉴스1

더 심각한 문제는 야생동물의 판매 정황이다. 6개소 중 2개소는 공식 블로그 등을 통해 붉은여우, 슈가글라이더, 페럿, 고슴도치 등의 판매를 홍보하고 있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야생동물 거래는 생물다양성 보전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라며 "보전을 목적으로 해야 할 동물원이 오히려 거래를 조장하는 행위는 법의 취지에도 명백히 반한다"고 비판했다.

위생관리도 부실했다. 매뉴얼은 체험 전후 손 씻기를 기본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내 밀접 접촉이 이뤄지는 5개소 중 4곳에서는 세면대가 있음에도 손 씻기 안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 관람객이 손을 씻지 않고 체험을 마쳤다.

어웨어는 이처럼 심각한 문제들이 환경부 매뉴얼의 방향성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매뉴얼은 "직접적인 접촉은 감염 위험을 현저히 감소시킨다"고 밝히면서도, 동시에 "직접적인 접촉을 제한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부정적이다"고 명시해 모순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다양한 종에 대한 만지기 체험 지도안을 제공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어 정부가 오히려 동물 접촉 체험을 장려하고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이형주 대표는 "무분별한 체험 프로그램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 개정 이후 동물원의 체험 운영 방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정부의 제도적 개입과 명확한 기준 수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어웨어는 개선방안으로 △동물원 체험 프로그램 실태조사 및 관리 감독 강화 △현행 매뉴얼의 전면 수정 △동물원·수족관 내 동물 판매 금지 △동물원의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을 법률에 명시할 것을 제안했다. [해피펫]

badook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