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진일보' 한국 경제를 키운 92개의 '결정적 순간'
[신간] 더벨 '한국 경제를 만든 이 순간' 출간
주요기업 홍보임원 CCO가 엮은 한국 기업의 '비사'
- 오상헌 기자
(서울=뉴스1) 오상헌 기자 =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란 무엇일까. 불과 68년 전 한국 전쟁의 상흔을 딛고 한국이 세계 일곱번째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인구 5000만 이상)' 가입을 앞둔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43년 만에 어떻게 인텔을 제치고 1등 기업이 되었나. 현대차가 첫 독자모델 '포니'를 시작으로 세계 5위의 완성차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이후 주인 없이 7년의 세월을 견딘 하이닉스와 SK의 운명적 만남은 어떻게 성사되었을까.
국내 주요 기업이 빚어낸 한국 경제의 '빛나는 순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머니투데이 더벨이 엮은 '한국 경제를 만든 이 순간'. 삼성 포스코 두산 LG 롯데 한화 SK 현대차 동원 코오롱 현대백화점 경방 삼표 현대중공업 셀트리온 효성 한진 대우 휴맥스 금호 GS칼텍스 OCI 하림 이랜드 한솔 동국제강 동아제약 하나은행 삼천리 농심 다음 등 등 80여개 기업이 만든 100여개의 역사적 순간을 다뤘다.
기업과 사회를 연결하는 접점에서 현장을 경험한 주요 기업 전직 CCO(최고소통책임자)들의 증언과 전언은 생생하다 못해 감동적이다. 그 자체로 기업사(史)이자 한국 경제의 성장사(史)다. 도전·열정·혁신·창의·보국·리더십 등 '기업가 정신'의 주요 가치와 키워드들이 생생한 사례 속에 녹아 있다. 기업인들의 촌철살인 어록과 장수제품의 탄생 비결, 대형 M&A 비화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삼성의 무모(?)한 '도전'...43년後 세계1위 반도체 우뚝
삼성은 1974년 12월 한국반도체를 50만달러에 인수했다. 연매출 240조원, 기업가치 세계 7위(포브스 선정)의 글로벌 삼성이 '짜릿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1983년 2월 고(故) 이병철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대규모 시설투자를 지시했다. 이른바 '2.8 도쿄 선언'이다. 이듬해 삼성은 국내 최초 64K D램을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지 43년만인 지난해 인텔을 꺾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정주영의 '포니 신화', 글로벌 수소차 리더 성장한 현대차
1973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의 첫 '독자모델' 개발을 선언했다. 하지만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시 미국 대사는 "독자 개발을 포기하고 포드의 조립 생산라인을 담당하면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정 회장은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현대차는 6000만원을 들여 이탈리아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한국 1호, 세계 16번째 독자생산 모델 '포니'를 최초로 공개했다. 포니는 10년만에 60개국에 30만대 이상 수출됐다. 현대차가 세계 5위의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로 성장하는 시발점이었다. 현대차는 궁극의 친환경차로 불리는 수소차 분야의 글로벌 리더이기도 하다.
◇주인없이 표류하던 하이닉스, '초이스'한 최태원의 결단
지난해 SK하이닉스는 45%의 영업이익률을 냈다.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5%)의 9개에 달하는 꿈의 이익률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하이닉스는 표류하는 난파선 신세였다. 2000년대 초반 반도체 경기 악화로 사세가 기울어 2001년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을 밟았다. 2005년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6년간 주인을 찾지 못했다. 불투명한 반도체 사업에 누구도 투자하려 하지 않았다. 2012년 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하이닉스를 3조3747억원에 전격적으로 인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할 수 있다"는 하이닉스 임직원들의 자신감, "사업 다각화로 활로를 찾겠다"는 최 회장의 결단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이자 수출 한국의 전사가 되어 돌아왔다.
◇쇳물은 고로에서?… 200년 상식 바꾼 포스코의 '혁신'
쇳물은 고로(용광로)에서 뽑는다. 200년도 넘는 '철(鐵)'의 상식이다. 전세계 철강회사 모두가 그렇지만 예외가 있다. 국내 최대 철강회사인 포스코 얘기다. 포스코는 1992년부터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신개념의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개발했다. 글로벌 철강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이었다. 포스코 파이넥스는 값싼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원료로 사용해 용광로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것보다 생산원가가 싸다. 환경 오염도 줄여준다. 중국 등 세계 철강회사들이 탐내는 기술이다.
◇'병아리 10마리'로 시작된 열정, 이젠 자산 10조원 하림
닭고기 국내 1위인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에게서 병아리 10마리를 선물받았다. 이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 판 김 회장은 밑천 2500원으로 다시 병아리 100마리를 샀다. 작은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농업고등학교 진학 후엔 양계장을 직접 설계해 닭 1000여마리를 키웠다. 이렇게 모은 돈 4000만원은 하림그룹의 모태인 황동농장 설립의 자본금이 됐다. 양계 사업을 향한 김 회장의 열정은 하림을 자산 10조원 규모의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키워냈다.
◇스위스 융프라우의 '필수 먹거리' 식품한류 농심 신라면
장수 제품엔 비결이 있다. 유럽 알프스 최고봉으로 해발 4000m 넘는 스위스 융프라우(Jungfrau).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먹거리는 '신라면'이다. 성수기 하루 판매량이 1000여개에 이를 정도로 별미로 꼽힌다. 히말라야에서도, 지구 최남단 칠레 푼타아레스나스에서도 신라면컵은 필수품으로 통한다. 농심은 1986년 '사나이도 울리는 매운 라면'이란 콘셉트로 수년의 연구개발 끝에 신라면을 출시했다. 이후 32년 동안 300억개에 가까운 누적 판매량을 자랑한다. '식품한류'의 중심이자 해외교포나 관광객들 사이에선 '식품업계의 반도체'란 별칭이 붙어 있다.
'한국 경제를 만든 이 순간'은 2015년 8월 저자인 한국CCO클럽 멤버들이 기업인 70인의 주옥 같은 어록과 일화를 담아 출간한 '한국경제를 만든 이 한마디'의 후속편 성격의 책이다.
저자들은 3년 만에 다시 펜을 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경제가 많이 어렵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반 세기가 넘는 우리 경제의 발전사에서 힘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늘 그래 왔듯 힘든 환경 속에서도 성패를 가름하는 건 결국 기업인의 의지와 집념이다". 지금의 한국 경제를 만든 100가지 순간과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을 위기 타개와 통찰의 밑거름으로 활용하자는 얘기다.
최근 일부 대기업의 일탈과 재벌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반(反) 대기업 정서'가 커지고 있는 점도 집필의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권오용 전 SK 사장은 "요즘 일부 기업의 일탈로 할 말은 없지만 재벌 1세대의 노력을 자기 잇속을 위한 것처럼 깎아내리는 사회분위기에 화가 나 진실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상국 한국CCO클럽 회장은 "어제의 역사를 모으면 오늘의 나침반이 된다"며 "이번에 모은 100개의 순간이 다음에는 500개, 1000개로 늘어날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쁠 것"이라고 했다. 한국CCO클럽은 기업과 사회가 소통하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한국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갖고 출판, 저술, 교육, 국제협력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LG그룹 홍보실장을 지낸 정상국 전 한국PR협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고, 권오용(SK), 김명환(GS), 김문현(현대중공업), 김봉경(현대자동차), 김상영(포스코), 김종도(대우자동차), 김 진(두산), 이길주(KT), 임대기(삼성), 장성지(금호아시아나), 장일형씨(한화) 등이 회장단으로 속해 있다. 402쪽, 2만2000원, 더벨
bborirang@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