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맥킨지 트라우마…기업잡는 선무당, 외국계 컨설팅사
[이슈터치]맥킨지 대우조선 사실상 퇴출결론에 멘붕
"외국계 컨설팅사 신봉 말고 정부가 책임지고 판단해야
- 최명용 기자
(서울=뉴스1) 최명용 기자 = 맥킨지 트라우마가 재연됐다.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 용역을 맡은 맥킨지가 사실상 대우조선해양 퇴출을 시사하는 안을 내놓아 업계는 물론 정부까지 '멘붕'상태다. 맥킨지의 조언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를 하고 얼마나 따라야 할까.
◇3년전엔 대우조선에 해양플랜트 늘리라더니…맥킨지 구조조정안 논란
한국조선협회는 올해초 외국계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했다. 확정 보고서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금융권을 중심으로 일부 논의 내용이 흘러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선 사실상 독자생존이 어렵다는 결론이 강하게 느껴진다. 현재 빅3 구도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2강으로 재편하고 대우조선해양은 설비를 매각해 규모를 줄이라고 조언했다.
대우조선해양 해양플랜트사업은 철수하라고도 했다. 3년전인 2013년엔 대우조선해양이 해양플랜트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하더니 상황이 바뀌었다고 그사이 철수를 권고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맥킨지 보고서가 엉터리'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맥킨지 보고서 확정본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도 대우조선의 강력한 반발 탓이다. 정부에서도 '맥킨지 보고서대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물론 조선업의 구조조정은 필요하고 이미 진행하고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LG전자 맥킨지 트라우마
맥킨지 등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이 한국에서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IMF외환 위기가 계기가 됐다. 졸지에 월가형 모델로 지배구조와 사업구조를 바꾸는 것을 압박받은 기업들은 글로벌 지식자산을 보유한 이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 줄을 섰다.
이들에게 한국시장은 물좋은 시장이었다. 시대적 당위성에 맞춰 선택과 집중의 이름하에 적극적인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안을 제시했고 한국 정부 당국과 기업들은 이를 따랐다.
하지만 컨설팅 회사들의 조언이 잘못돼 치명타를 입히는 일도 적지 않았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워 결국 해서는 안될일을 조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LG전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LG전자는 2007년 남용 부회장이 취임하면서 맥킨지의 컨설팅을 받기로 했다. 컨설팅 비용으로 300억원을 들였다고 알려졌다.
컨설팅에서 맥킨지는 LG전자에 기술 기업에서 마케팅 선도기업으로 전환을 주문했다. 글로벌 마인드를 함양한다는 취지로 영어로 회의를 진행하도록 조언했고 사내 임원 8명중 7명을 외국인으로 채우는 시도도 진행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부작용만 키웠다.
회의시간엔 서로 말을 안하고 고위 임원에겐 보고를 하지 않았다. 연구개발(R&D) 비용은 점차 줄이고 마케팅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리면서 차세대 제품을 준비하는 것은 자연히 뒤로 밀렸다.
LG전자는 2007년 초콜릿폰이란 제품으로 1000만대 판매 실적을 올렸다. 명품 패션업체 프라다와 협업한 프라다폰은 당시로서는 초고가인 88만원에 내놨음에도 100만대 넘게 팔렸다.
하지만 마케팅에만 열을 올리며 피쳐폰에 올인한 LG전자는 대세가 된 스마트폰 시장을 놓치고 말았다. 3년의 공백은 컸다. 삼성전자고 갤럭시 시리즈로 고속으로 가담하면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과 삼성전자, 두톱으로 재편돼 버렸다.
LG전자의 영업이익은 2009년 2조9466억원으로 정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0년 영업이익은 1220억원으로 20분의 1로 줄었다. LG전자는 지금까지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LG전자 임원들은 맥킨지라고 하면 아직도 치를 떤다고 한다.
◇두산그룹, OB맥주 팔고 밥캣 샀는데
두산그룹의 변신도 맥킨지 컨설팅에 따른 결과였다. 맥킨지는 1996년 두산그룹에 소비재 사업을 정리하고 중장비 산업재로 전환하라고 조언했다. OB맥주와 코카콜라 등 주력 산업들을 잇따라 매각하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미국 소형 건설장비회사 밥캣을 인수햇다.
두산의 구조조정은 선제적 움직임이라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들이닥친 금융위기에 중국 건설 경기가 꺾이면서 선제적 구조조정은 재앙이 됐다.
두산은 2007년 두산밥캣을 49억달러(약4조4500억원)에 인수했다. 이중 39억달러(3조6000억원)가량을 국내외 금융회사로부터 빚을 내 인수했다. 두산은 두산밥캣 인수 자금에 대한 부담으로 지금까지 10년째 구조조정에 시달렸다.
반면 팔려나간 OB맥주는 꾸준한 매출 성장을 올리면 몸값이 몇배로 불어났다. AB인베브는 2014년 헤지펀드인 KKR·어피니티와 OB맥주를 6조17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몇년새 몸값이 3배이상 뛰어올랐다.
두산의 구조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성적표를 보면 맥킨지의 조언은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 '의사결정 장애'로 먹고사는 외국계 컨설팅사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한 맥킨지의 조언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정말 맥킨지의 조언대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해야 조선업이 살아남을 수도 있다. 반대로 조선업 경기가 빠르게 개선된다면 맥킨지의 충고대로 설비를 줄인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선가가 회복하고 조선업 시황이 개선되면 경쟁국가인 중국과 일본 업체들이 과실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엔 이미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대우조선해양을 살리려면 천문학적인 혈세가 또 들어가야 한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을 해체한다면 수많은 실직자와 지역 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남기게 된다. 어떤 상황이든 정부 당국자와 금융 당국이 져야 하는 부담이다.
그래서 조선 구조조정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객관성'의 이름으로 거액의 돈을 들여 맥킨지같은 외국계 컨설팅사 의견을 묻는다는 자체가 비겁한 행위로 읽힌다. 물론 냉정하게 사안을 봐줄 존재는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사사건건 외국계 컨설팅사에 의존하다시피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외국계 컨설팅사는 경영진이든 정부든 바로 그러한 '의사결정장애'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한 컨설팅사 관계자는 "내용은 우리도 할 수 있다"며 "다만 외국계가 더 선호되는 것은 그들이 외국계라는 이유로 외압을 받지않는 객관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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