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의 용선료 협상②]이해관계에 꽉 묶인 용선주...선례 남길까 전전긍긍

하나 봐주면 다 봐줄라...투자자, 고객사이에 낀채 오도가도 못해
투자자의 책임추궁 가능성, 치킨게임 하는 경쟁고객사의 눈총도 의식

현대상선 컨테이너선.(현대상선 제공)ⓒ News1

(서울=뉴스1) 심언기 기자 = 우리나라 국적선사의 명운이 걸린 용선료 협상이 잘 풀리지 않는 데는 용선주들이 경쟁고객이나 투자자의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힌채 선례를 만드는 것을 극히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있게 제기된다.

선뜻 용선료를 깎아줬다가 경쟁 고객과 관계가 불편해지거나 다른 해운사로부터 같은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 체결한 수익구조가 어긋나 선박펀드 등 투자자로부터 책임추궁을 당할 위험 등에 심한 심적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경쟁사와 동맹을 맺고 노선을 공유하는 컨테이너 해운사의 특성상 법정관리는 사실상 청산에 준하는 사태로 읽힌다. 그런 만큼 법정관리는 용선주로서도 손해가 클 수 밖에 없다. 요즘같은 업황불황기에 선박을 회수해도 재용선할 선사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선주들은 있을 수 있는 후폭풍이 두려운 나머지 용선료 조정에 선뜻 동의 못하는 눈치다.

한진해운의 용선주 중에는 페테 될레, 콘티 등 독일 선주들이 많이 눈에 띈다. 독일 정부의 선박금융의 지원 덕분에 대형 컨테이너선을 다수 구매해 보유하고 있는 탓이다. 이중 콘티는 2013년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로 용선료 대부분을 날린 경험이 있다.

한진해운은 페테 될레의 1만3000TEU급 신형 선박과 다나오스의 1만TEU급 선박 등과 2020~2021년까지 장기 계약을 맺은 상태다. 구매 단계부터 해운사들과 장기 용선계약을 맺으면서 배값을 충당하는 스킴을 갖고 있다. 한진해운 등 해운사에 어렵다는 이유로 용선료를 깎아준 결과 선박 구입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 투자자로부터 소송이나 책임추궁을 당할 소지를 원천적으로 안고 있다.

또 실제 선주와 선박을 운용하는 관리회사간 불일치도 용선주 설득에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독일 NSB는 5000TEU급 컨테이너선 1척을 한진해운에 빌려준 선주이면서 동시에 콘티사의 7000TEU급 5척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용선 가운데 상당수가 이처럼 선주와 운용사가 별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과의 관계도 문제다. 우리나라 해운사에 용선료를 먼저 깎아주고 싶어도 다른 고객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컨테이너선만 100척 이상 보유한 페테 될레의 경우 자사 컨테이너선 상당수를 1,2위 해운동맹인 2M과 오션 얼라이언스에 속한 해운사에 대여중이다.

글로벌 1, 2위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와 스위스의 MSC는 1만8000~2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대거 보유, '규모의 경제'를 통해 하위 컨테이너선사 고사 작전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컨테이너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면서 치킨게임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 2M이 한진해운에 대한 용선료 인하를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1만TEU급 선박을 7척을 한진해운에 용선해준 캐나다 시스팬이 첫 협상에서 용선료 인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한 데는 이같은 요인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용선주들의 불안감을 고려해 현대상선, 한진해운은 채권단과 함께 당근책으로 인하 용선료의 출자전환 등을 제시해놓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잘 통할지 아직 예단은 힘들다.

현대상선의 경우 사채권자 집회가 이달 31일로 예정돼 있어 사실상 협상시한이 30일이 끝이다. 이달 18일 있었던 단체협상에서도 용선주들은 채무재조정 후에도 현대상선이 생존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eon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