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위한 신발 만들어주세요"…뇌성마비 소년 편지에 응답한 나이키

[날 변화시킨 너]⑧나이키·타미힐피거 등 장애인 전용 상품 출시
국내는 아직 걸음마 수준…"더 많은 기업이 동참해야 시장 활성화"

편집자주 ...'날 변화시킨 너.' 그들은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란 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이거나 가르치는 선생님, 신체적 결함을 보완해 주는 옷을 제작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들은 장애인 곁을 지키면서 더 배웠다고, 더 성장했다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됐다고 입을 모읍니다. <뉴스1>은 그들의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그리하여 장애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존재임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서울=뉴스1) 배지윤 기자 = "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신발은 없는 걸까? 스스로 신발을 신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2012년 미국 플로리다주, 한 소년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16살 소년 매튜 왈저 얘기다. 그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다. 끈을 묶지 못해 주변의 도움을 받아 신발을 신는다. 왈저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에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16살이나 됐는데 부모님이 아직도 신발을 신겨줍니다. 더 이상 이를 원치 않습니다. 저를 위한 신발을 만들어주세요."

◇'단 한사람 만을 위한 신발'

왈저 자신도 답장을 확신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키는 예상을 깨고 '응답'했다. 왈저 '단 한사람 만을 위한 신발'을 제작해 그에게 선물했다. 끈 대신 지퍼를 사용해 한 손으로 신고 벗을 수 있게 만든 운동화다. 상품명은 '플라이이즈'(Flyease) 컬렉션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이키는 이후에도 플라이이즈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왈저처럼 몸이 불편한 소비자들에게 공급했다. 나이키도 각종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이 같은 행보 만큼은 "글로벌 기업답다"는 찬사를 끌어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 장애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장애 인구는 약 10억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인구의 15%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전용' 의류·신발 등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장애인은 또 한번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비장애인 기준에 맞춰 제작된 의류·신발 등을 착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변화를 주도한 것은 글로벌 기업들이다. 나이키를 비롯한 패션·스포츠 브랜드들이 장애인 전용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충성 고객을 상당수 보유한 타피 힐피거가 대표적이다. 장애인 전용 의류 등을 의미하는 '어댑티브 패션' 상품을 만들고 있다. 어댑티브 패션은 '옷 앞에서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상식을 일깨워주는 스타일을 의미한다.

타미 힐피거 장애인 전용 의류ⓒ 뉴스1

"아들 올리버는 청바지를 입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다리에 보조기를 낀 아들이 편하게 입을 만한 청바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전직 디자이너 민디 샤이어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근육 위축병에 시달리는 아들에게 청바지를 선물하고 싶었다. 장애인 복지를 위한 비영리 단체 '런웨이 오브 드림스'를 설립한 그는 사업가 타미 힐피거에 '장애인 전용 상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타미 힐피거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타미 힐피거는 지난 2017년부터 장애인 전용 의류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아동용에 이어 성인용까지 제품군을 확대·출시하며 '어댑티브 패션' 대표 브랜드도 자리 잡았다. 기능성과 디자인을 다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티셔츠 제품은 단추 대신 자석과 찍찍이를 사용해 소매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타미 힐피거는 "모든 소비자를 포괄하고 민주주의적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게 우리 브랜드의 철학"이라며 "(장애인을 포함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차별 없는 세상'으로 향하는 첫걸음 될 수 있다"

어댑티브 패션은 점점 확산하고 있다. 러시아 패션 브랜드 '베즈그라니즈 꾸뛰르'도 장애인 전용 의류를 선보였다. 지난 2014년 3월 러시아 소치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에서 해당 상품군을 처음으로 공개하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미국 패션 브랜드 '랜드즈 엔드'도 유방절제술 받은 여성 소비자를 위한 수영복을 출시해 호평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어댑티브 패션 흐름이 시작됐다. 지난 4월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휠체어 장애인 전용 브랜드 '하티스트'를 출범하며 제품 생산을 하고 있다. '예쁘게(멋있게) 보이고 편하게도 입을 수 있다'는 게 이 브랜드의 철학이다. 기능성과 디자인 모두 만족스러운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박소영 '하티스트' 수석 디자이너가 브랜드 제품 앞에서 인터뷰용 촬영 자세를 하고 있다. 2019.10.30/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업계에서는 '의미있는 시도'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하티스트 하나만으로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다른 주요 패션브랜드도 동참해야 선진국처럼 '어댑티브 패션' 시장도 커지고 장애인들의 선택 폭도 넓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사회에 나올 수 있는 문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어댑티브 패션'은 의미가 있다"며 "그들이 차별없는 세상을 향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jiyounba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