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에도 오기로 버텼죠"…세계 최고 엘리베이터 만든 비결

[대한민국명장] ⑤ 신상용 현대엘리베이터 생산4팀장

편집자주 ...나라가 잘 되려면 기업이 잘 돼야 한다. 기업이 잘 되려면 기술 인력이 잘 돼야 한다. 뉴스1이 대한민국 기술인력을 다시 조명하는 '대한민국 명장'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했다. 기술 인재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대한민국 경제의 주춧돌이자 버팀목인 명장들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들어본다.

신상용 현대엘리베이터 기성대우가 현대엘리베이터 이천공장 테스트타워 전망대에서 BIFC에 설치된 국내 최고속 엘리베이터 '디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News1

(서울=뉴스1) 강현창 기자 = 부산 남구 문현동에 가면 289m의 높이를 자랑하는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우뚝 서 있다. 63층 전망대에서는 부산항과 부산항대교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43초에 불과하다. 분속 600m를 자랑하는 '디엘'(The EL)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다.

'디엘'을 만든 현대엘리베이터는 기술직 근로자 중 경력과 실력면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소수의 직원에게 '기술을 완성했다'는 의미로 '기성대우'(技成待遇)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현대엘리베이터에 근무 중인 중 가장 연차가 높고 실력으로 인정받는 신상용 기성대우(이하 기성)를 만났다. 그는 '디엘'의 제작과 설치, 유지보수를 진두지휘하는 생산부 생산4팀 팀장이다.

◇ 최연소 기술직에서 초고속 엘리베이터 제작 담당자로

신 기성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생긴 지 1년 뒤인 1985년에 입사해 올해로 입사 31년째를 맞이한 최고참 '현대엘리베이터맨'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생산부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한번도 부서를 옮기지 않고 엘리베이터 제작 현장에서 땀을 흘려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의 기술력은 승객이 탄 본체를 얼마나 재빠르게, 진동없이, 정확하게 움직이느냐다. 4~5층 정도의 낮은 빌딩이라면 엘리케이터가 다소 흔들리거나 동작이 느리더라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BIFC와 같이 고층의 건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상용화한 모델 중 가장 빠른 '디엘'은 동전을 세워두고 움직이더라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진동이 적다.

신상용 기성대우가 제작한 '디엘'용 관상기. ⓒ News1

저진동과 초고속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엘리베이터의 구동력을 발생시키는 권상기(卷上機·트랙션머신)과 진동을 제어하는 RGB(롤러가이드슈), 충격에 대비하는 오일버퍼 등 주요부품에서 최고 품질의 기술력이 적용돼야 한다.

신 기성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핵심 부품을 최고 수준으로 만드는 일이다.

신 기성은 "현대엘리베이터에 입사해 오로지 엘리베이터 부품을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다"며 "입사 당시에는 내가 가장 어린 직원이었는데 지금은 나보다 연장자가 딱 한 명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 텃세·굴욕 견디며 인정받아…욕심이 장인을 만들어

신 기성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엘리베이터를 제작하는 실력을 쌓는 과정에는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다.

신 기성이 21살의 어린 나이로 현대엘리베이터에 처음 입사했을때 선배들은 그에게 범용기계를 활용한 단순한 기계 작업만 맡겼다.

엘리베이터의 핵심 부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동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정밀하게 조정되는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장비가 사용되는데 이는 소수의 엘리트 직원들만 다뤘다. 신 기성은 초년병 시절엔 CNC장비를 만져볼 기회도 얻기 힘들었다.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 CNC 기술을 알려달라고 조르는 신 기성에게 결국 담당자는 기술교육을 받는 것을 허락했다.

간신히 허락을 얻었지만 텃세는 계속됐다. 교육 첫날 단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난 뒤 담당자는 신 기성에게 CNC 기계의 작동을 위한 프로그래밍을 해보라고 지시했다. 관련 기술을 익힌 다른 동료와 실력을 비교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엉망으로 프로그래밍을 마친 신 기성에게 선배들은 "기계를 망가트리고 싶느냐", "제대로 못할거면 손을 떼라" 등의 망신을 안겼다.

신 기성은 그럴수록 이를 더욱 악물었다. 교육 3달 뒤 일본에서 도입한 새로운 CNC 기계가 그의 운명을 갈랐다. 일본에서 파견 온 교육진이 해당 기계의 기술자로 낙점한 사람이 바로 신 기성이었다. 악착같이 매달려 밤낮으로 공부했다.

신 기성은 "지금도 산업현장에서는 일반 범용기계 기술자와 CNC 장비 기술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며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에서만큼은 그 벽을 허물고 원하는 기술을 얼마든지 배울 기회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 "후배들, 기술에 욕심내야…본인 실력이 곧 회사의 경쟁력"

신 기성은 현대엘리베이터에 입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부산 BIFC에 설치된 '디엘'을 직접 탑승했던 순간을 꼽았다.

신상용 현대엘리베이터 기성대우. ⓒ News1

신 기성은 "유지보수를 위해 찾은 BIFC 꼭대기에 있는 '디엘'의 기계실에서 바라본 부산 풍경이 아름다웠다"며 "우리 팀이 땀 흘려 만든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작동되어 하늘로 사람들을 데려다주는 걸 직접 보니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디엘'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신 기성은 "단순히 업무 두 개를 하는 차원이 아니라 제작업무와 연구·개발 업무를 융합시켜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온다"며 "촉박한 일정 속에서 양쪽에서 밀려오는 업무압박을 이겨낸 결과 결국 '디엘'이라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기성이 만든 엘리베이터의 품질은 '디엘'을 넘어섰다. 1분 만에 1㎞를 넘게 움직일 수 있는 엘리베이터 '디엘1080'을 현대 아산타워에서 볼 수 있다. '디엘1080'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로서 아직 판매 실적은 없다.

그는 "현대엘리베이터는 이제 세계화를 위해 나아가야 할 회사"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기술자들의 실력도 세계적인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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