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스토리]완두콩에서 찾은 에틸렌 '석유화학의 쌀'이 되기까지
- 이철 기자
(서울=뉴스1) 이철 기자 = 초록 토마토가 빨간 토마토로 변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것일까? 초록 바나나가 노란색으로, 다시 검은 반점이 나타나는 원인은?
바나나는 원래 생산지에선 아직 숙성되지 않은 초록색인 상태로 수확하고, 판매지에서 숙성시켜서 노란색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이동 중에 바나나가 익어 물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판매지에 도착하면 바나나를 빠르게 숙성시켜야 하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에틸렌(ethylene) 가스'다. 토마토를 비롯한 과일들이 익어가는 과정에서도 이 에틸렌 가스가 분출된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린다. 원유에서 휘발유 경유 등을 뽑아내면서 나오는 납사(Naphtha)를 분해하면 에틸렌이 나온다. 에틸렌의 사용량은 한 나라의 석유화학 산업의 규모를 엿보는 척도이기도 하다.
◇완두콩에서 시작한 의문…누가 발견했을까?
에틸렌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러시아의 과학자 넬류보프(Dimitry Neljubow)다. 실험실에서 완두콩을 키우고 있었던 넬류보프는 어느날 콩이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현상의 원인이 실험실 안의 공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석탄 가스 등에서 나오는 에틸렌 가스가 실험실에 퍼져 있었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넬류보프는 가스에 노출된 완두의 황화 유식물에서 나타나는 '3중 반응(줄기의 신장 억제, 비대 생장 및 수평 생장)'이 석탄 가스 중에 포함되어 있는 에틸렌의 작용에 의함을 밝혀냈다.
1934년에는 영국 과학자 게인(R.Gane)이 성숙 사과 과실에서 발생되는 기체가 에틸렌임을 화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증명함으로써, 에틸렌이 식물에 의해서 생합성된다는 최초의 증거를 제시했다.
◇석유화학 산업의 근간…무궁무진한 가능성
에틸렌은 탄소 2개와 수소 4개로만 이뤄진 아주 작은 분자다. 녹는 점은 섭씨 169.2도, 끓는점은 -103.7도다. 때문에 아주 낮은 온도가 아니면 평소에는 우리 주변의 공기처럼 기체로 존재한다. 에틸렌은 기체일 때 색이 없어 눈으로 확인 할 수 없지만 약간 달콤한 냄새가 난다.
에틸렌은 화학적인 방법을 이용하면 다양하게 변신 시킬 수 있다. 산소를 넣어주면 비누나 샴푸, 설거지나 세탁에 많이 사용되는 세제의 주요 성분인 계면활성제를 만드는 원료로 변신하게 된다.
에틸렌으로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도 만든다.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보호 필름, 각종 포장지, 쇼핑백,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성이 없는 플라스틱 용기에 폴리에틸렌이 사용된다.
폴리에틸렌을 파라자일렌이라는 물질과 합성시키면 현재 우리생활에 가장 밀접한 패트(PET)병이 만들어진다. 에틸렌을 물과 반응시키면 술의 주요 성분인 에탄올이 만들어진다. 이외에도 에틸렌은 화학반응만 이용하면 수십가지 물질로 변신 가능하다.
◇국가 경쟁력…에틸렌에 울고 웃다
에틸렌이 중요한 이유는 산업에서 많이 쓰이는 물질들을 만드는 데에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의 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에틸렌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 때문에 각 국가의 에틸렌을 만드는 '납사 분해설비(NCC)'를 그 나라 석유화학 산업 규모의 척도로 삼기도 한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지난해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작년 석유화학 생산량의 55.1%를 수출한 효자산업이다.
에틸렌을 생산하는 주요 국내 기업들은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 대한유화, SK종합화학 등이다.
최근 '에틸렌' 업황 호조로 이들 업체들의 1분기 영업이익이 일제히 개선됐다. 국제 유가 하락에 따라 에틸렌의 원료인 납사의 가격도 떨어진 반면 수요는 유지된 덕이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지 여부는 미지수다. 글로벌 시장에서 석유화학 산업의 공급 과잉 이슈는 여전하다. 근본적인 경제 활력, 경기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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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화학 제품이 없는 삶이 가능할까. 물을 한잔 마시려 해도 플라스틱 컵이 필요하고 입고 다니는 옷, 사는 집, 타고 다니는 자동차까지, 화학 제품이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철기시대 다음을 일컫자면 '플라스틱 시대'라 할 수 있겠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플라스틱부터 첨단 제품의 기초가 되는 신소재까지 어려운 화학(Chemistry)을 이야기(Story)로 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