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중동 먹구름'…헬륨 65%·브롬 98% 의존…장비 거점 타격

중동 영향 가시권…에너지값 급등+소재 리스크 부상
단기 영향 제한적, 장기화 땐 타격…삼성전자·SK하닉 "예의 주시"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의 지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형상을 3D 프린터로 만든 모형의 모습.ⓒ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 국면에 접어들면서 비교적 안전지대에 있던 국내 반도체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 메모리는 수요처가 대부분 빅테크향(向)이고, 납품도 항공을 통하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둘러싼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다만 중동 사태 여파로 국제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다 메모리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와 장비의 수급 차질까지 예상돼 K-반도체가 때아닌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중동發 에너지 파동 현실화…日 "4월 수도권 전기료 인상"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도쿄를 비롯한 일본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는 도쿄전력의 기업용 전기요금이 미국-이란 전쟁의 영향으로 이르면 4월부터 인상될 전망이라고 9일 보도했다.

일본은 원유 수입의 90%, LNG 수입의 10%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일본의 전력회사들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원유나 LNG 가격을 기업용 전기 요금에 종전보다 빠르게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일본 전력요금 체계의 특수성이 있다지만, 중동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파동'이 전면화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국제 원유시장에 따르면 전날(9일) 기준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27.61% 오른 116.0달러,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25.06% 오른 115.9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두바이유도 100달러를 돌파했다.

LNG 가격도 폭등세다. 아시아 지역 천연가스 가격지표인 LNG 일본·한국 마커(JKM)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전 100만 BTU당 약 10달러 수준에서 최근 15달러까지 50%가량 치솟았다.

반도체 제조 공정은 대규모 전력과 상업용 가스를 끌어다 쓰는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 산업이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에너지 가격 폭등이 지속하면 생산비 부담이 크게 뛸 수 있다. 항공 운임 상승에 따른 제품 운송 비용 증가도 이익률을 낮추는 요소다.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직원 등이 오가고 있다. 2026.1.8 ⓒ 뉴스1 박정호 기자
중동産 소재·장비 수급 차질도 우려…"단기 영향은 아직"

반도체 공급망 불확실성 확대도 예기치 못한 '복병'이다.

반도체 웨이퍼 냉각 공정에 필수적인 원료인 '헬륨'이 대표적이다. 카타르는 전 세계 헬륨 공급량의 38%를 담당하는 최대 생산국이다. 이번 사태로 현지 헬륨 생산시설 3곳의 가동이 중단되고 해상 운송도 막히면서 수급 차질이 현실화했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기준 헬륨 수입량의 64.7%를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어 공급망 리스크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반도체 식각 공정에 쓰이는 브롬은 무려 97.5%가 이스라엘산이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이 몰린 이스라엘 텔아비브 지역이 이란 미사일 공격을 받은 점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이 지역은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측정·검사 장비를 생산하는 거점으로, 일부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에도 공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동 사태가 글로벌 반도체 업황에 직접적 타격을 주거나 메모리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원자재와 장비의 대체선을 물색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브롬·헬륨 등 품목은 미국산 대체 수입이나 국내 생산·재고 활용을 통해 대응이 가능하고, 장비 공급망도 이미 플랜B가 세워진 상황"이라며 "(에너지·운임 비용 상승도) 전체 업황이나 기업 실적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만큼은 아니다"라고 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