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쏘아올린 'AI 국가투자론'…반도체 전쟁 '국가 대항전'

日싱크탱크 보고서 "韓 첨단 반도체 생산 점유율, 2년 뒤 2→3위"
정부 반도체 지원금 美 73.3조 中 70.4조 日 27조 …韓 '미정'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초대형 인공지능(AI) 투자' 논의가 불붙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인텔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정부 주도형 반도체 육성'에 시동을 건 데 이어, 일본 정부도 라피더스에 27조 원 규모의 예산 지원을 결정하면서 반도체 주도권 경쟁이 '국가 대항전' 국면으로 번지고 있다.

26일 일본 미쓰이글로벌전략연구소가 지난달 발간한 '첨단 반도체 주도권 경쟁'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첨단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2023년 12%로 미국과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년 뒤인 2027년에는 미국의 점유율이 17%까지 확대되는 반면, 한국은 13%에 머물러 순위가 3위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됐다.

국가별로 보면 대만은 2023년 68%에서 2027년 60%로 8%포인트(p) 하락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점유율 1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간 한국은 12%에서 13%로 1%p, 미국은 12%에서 17%로 5%p, 일본은 0%에서 4%로 상승해 순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됐다.

대만을 제외한 주요 제조국들의 점유율이 일제히 증가하지만, 한국만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작아 전체 순위가 밀리는 구조다.

보고서는 점유율 변화의 이유로 '국가 지원' 수준을 꼽는다. 먼저 미국에 대해 "2022년 칩스법(반도체법)을 제정해 향후 5년간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 건설 및 확장이 390억 달러의 보조금, 연구개발(R&D)에 110억 달러를 지원하고 25%의 세금 공제를 도입했다"고 분석했다. 직접적인 지원금만 약 73조 3100억 원에 달한다.

중국에 대해선 "정부 주도로 2014년 1400억 위안, 2019년 2000억 위안이 자국 반도체 생태계 육성에 투입됐다"며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와 통신 장비 대기업 화웨이의 성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세계 3위 파운드리인 SMIC는 자국산 AI 칩 사용 의무화 정책에 힘입어 공장 가동률이 95.8%까지 상승한 상태다. 중국의 지원금 규모 역시 70조 3700억 원에 이른다.

'반도체 강국' 부활을 꿈꾸는 일본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22일 라피더스에 1조 1800억엔을 추가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라피더스에 지원하기로 한 1조 7000억엔을 합친 누적 공적 자금 투입은 총 2조 9000억엔(약 27조 원) 수준이다.

일본 미쓰이글로벌전략연구소가 10월10일 발간한 '첨단 반도체 주도권 경쟁' 보고서 내 글로벌 첨단 반도체 생산 점유율 변화 추정치(보고서 발췌)

한국도 반도체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육성 중이지만, 현금성 직접 지원보단 세액공제 등 간접 지원이 대부분이다. 반도체 기업의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5%p(대기업 15→20%) 높여주는 'K칩스법'이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직접 보조금 지원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발이 묶여 있다.

세계 1위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사 SK하이닉스를 이끄는 최태원 회장이 총대를 메고 '직접 지원'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지난 20일 기업 성장 포럼에서 논란이 된 '금산분리 해제'와 관련해 "저희가 원하는 건 금산분리(해제)가 아니다"라고 정정하면서 "여태껏 보지 못했던 유례없는 투자 자금들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000660)는 용인 반도체 일반산단 클러스터에 조성하는 반도체 팹(fab·생산시설) 4기에만 최대 600조 원, 삼성전자(005930)는 최근 건설을 시작한 평택사업장 2단지 5라인(P5)과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클러스터 내 팹 6기에만 총 420조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용적률 상향으로 SK하이닉스의 투자 계획이 기존 120조 원에서 5배 증가한 만큼, 삼성전자의 투자 규모도 크게 뛸 수 있다.

문제는 민간 기업의 자력만으로는 천문학적 투자를 감당하기 벅차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AI 대호황의 수혜로 실적이 급증하고 있다지만, 5~6년 내 짧은 기간 수백조 원을 시설 투자에 쏟을 여력은 없다는 게 재계 공통의 지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2028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 건설에 약 2조 9000억 달러(약 4300조 원), 연간 9000억 달러(약 1300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기업의 내부 현금 흐름에만 투자 집행을 의존할 경우 최대 1조 4000억 달러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1조 5000억 달러의 자금 조달 갭이 발생해 글로벌 시장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K-반도체가 글로벌 톱티어(최정상) 수준의 기술력과 점유율을 가진 것은 딱 현재의 시점"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 생겨나는데 국내 반도체 기업의 생산능력(CAPA)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는 경쟁력 하락은 자명하다"고 부연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