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HBM '경쟁체제' 공식화…삼성·SK하닉 '캐파 확대' 속도전
엔비디아, HBM4 멀티벤더 예고 '가격 경쟁력' 중요 변수로
HBM 여전히 공급 부족, 캐파 확대로 '가격·생산량' 다 잡는다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엔비디아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부터 납품처를 다변화하는 '멀티 벤더' 체제를 시사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독점했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생산이 늘어날수록 매출이 늘어나던 구조가 깨지게 된 셈이다.
최근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경쟁적으로 '캐파'(CAPA·생산능력) 확충에 나선 것도 이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생산능력이 클수록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HBM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부담 없이 캐파 확충에 나설 수 있는 요인이다.
11일 외신 등에 따르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현지시각) 대만에서 열린 TSMC 연례 체육대회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으로부터 최첨단 메모리 샘플을 받았다고 밝혔다. 황 CEO가 언급한 메모리 샘플은 'HBM4'로 추정된다.
황 CEO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3곳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메모리 제조업체"라며 "이들은 우리(엔비디아)를 지원하기 위해 엄청나게 생산 능력을 확대했다"고 했다. 다만 메모리 가격 인상 가능성에 대해선 "가격 결정은 제조사가 판단할 일"이라고 했다.
엔비디아는 내년 하반기 출시하는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루빈'부터 HBM4를 탑재할 예정이다. 황 CEO는 HBM4 납품을 시도하는 3개사 모두로부터 샘플을 받았다며 '멀티벤더'를 예고한 동시에 '가격 협상' 문제에 대해선 메모리 업계에 공을 넘긴 것이다.
일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4 공급은 확정적인 분위기다. 황 CEO는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HBM4 샘플을 확보했으며 잘 작동하고 있다"며 "우리는 둘 다 필요하다"고 했다. 두 회사의 HBM이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9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주요 고객사들과 내년도 HBM(HBM4) 공급 계획에 대해 최종 확정했다"며 엔비디아향(向) HBM4 납품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삼성전자도 엔비디아와 HBM4 공급에 대해 긴밀히 협의 중이다.
다음 스텝은 '캐파 싸움'이다. SK하이닉스가 HBM을 독점 공급하는 현재(솔벤더)와 달리, 복수의 공급사가 납품하는 멀티벤더 체제에선 '가격 경쟁력=수주 물량' 공식이 강하게 작동한다. 제조업은 생산량(캐파)이 많을수록 생산 비용을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약속한 듯 앞다퉈 생산능력(CAPEX) 확대를 공식화했다. 삼성전자는 범용 D램 공정을 HBM으로 돌리거나 증설하는 방식으로 캐파를 키우고 있고, SK하이닉스는 내년부터 HBM4 생산 기지를 청주 M15X로 확장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HBM 생산 계획은 올해 대비 크게 확대해서 수립했다"며 "이미 고객 수요를 확보하고 추가적인 고객 수요가 접수되고 있어 증산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29일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설비투자는 올해에 비해 상당한 규모로 증가할 전망"이라고 했다.
SK하이닉스는 2027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완공되면 HBM 캐파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3일 "용인 클러스터에는 팹(fab·반도체 생산시설)이 4개 들어가도록 설계했는데, 팹 하나에 청주 M15X 팹 6개가 들어간다"며 "용인 클러스터가 완성되면 24개의 청주 팹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도 360조 원을 투자해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내에 팹 6기를 조성할 계획으로, 오는 2030년 첫 번째 팹 가동이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HBM4 이후에도 병목 현상(공급 부족)은 업계의 과제"라며 "가격 경쟁력과 점유율 확보를 위한 캐파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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