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VDC 국산화' 도전장 낸 K-전력기기…11조 시장 '전초전' 불꽃
500㎸급 변환용 변압기 국책과제에 효성·HD현대·LS·일진 참전
'선두' 효성重, 뒤쫓는 3사…부산 WEC 2025서 기술력 신경전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11조 원 규모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사업을 따내기 위한 '전초전'의 막이 올랐다. 국내 전력기기 4사가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용 변압기 국산화를 위한 국책사업에 뛰어들면서 'K-전력망'의 주도권 쟁탈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기평)이 이달 초 공고한 '500킬로볼트(㎸)급 전압형 HVDC 변환용 변압기 기술개발 사업'에 효성중공업(298040)·HD현대일렉트릭(267260)·LS일렉트릭(010120)·일진전기(103590) 4사가 모두 신청서를 냈다.
이 사업은 양극성 ±50㎸급 HVDC 시스템에서 교류(AC)-직류(DC)/DC-AC 변환 시 전압조정 및 절연을 담당하는 변환용 변압기의 설계와 제작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골자다. 총 280억 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
쉽게 말해 HVDC 변환용 변압기의 국산화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과제 최종 평가는 개별 컨소시엄이 제작한 시제품으로 이뤄지며, 과업에 성공한 컨소시엄은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사업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후보군에 포함된다.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으로 'K-전력기기'는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았지만, 핵심 기술인 '전압형 HVDC'는 대부분 외산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효성중공업이 가장 먼저 전압형 HVDC 원천기술 국산화에 성공하며 업계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나머지 3사도 기술 개발을 서두르며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2017년 20메가와트(㎿) HVDC를 개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국내 최초로 200㎿급 전압형 HVDC 핵심 기술을 개발, 양주 변전소 설치를 완료했다. 이 독자기술로 HVDC 전압형 시스템 설계부터 컨버터·제어기·변압기 등 기자재 생산까지 'HVDC 토탈 설루션'을 제공한다.
LS일렉트릭은 최근 500㎿급 전압형 HVDC 변환용 변압기를 독자 개발하고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개발된 전압형 HVDC 변환용 변압기 중 가장 큰 용량으로 인천 HVDC 변환소에 적용될 예정이다. 전류형 HVDC 변압기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버노바와 기술제휴를 맺고 생산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도 200㎿급 전압형 HVDC 변압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9년 히타치에너지코리아가 준공한 '제주-육지 연결 전압형 HVDC 시스템'에 변압기를 공급한 바 있다.
하지만 에기평이 국책과제로 내건 '500㎸ 전압형 HVDC'는 국내 전력기기 업체 중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차세대 기술이다. 사실상 이번 국책과제는 국내 업계의 숙제이자, 이르면 내년 본입찰이 예상되는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수주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전초전'인 셈이다.
효성중공업은 2기가와트급(GW) 대용량 전압형 HVDC 국산화 기술 개발을 목표로 3300억 원을 투자해 2027년까지 HVDC 변압기 전용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나머지 3사도 에기평 국책과제를 통해 500㎸급 전압형 HVDC 기술 개발을 완수하겠다는 방침이다.
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 3사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5 기후산업국제박람회(WEC 2025)에서 나란히 '에너지고속도로관'을 열고 자사의 차세대 전력망 인프라 설루션을 선보이며 불꽃 경쟁을 벌였다.
효성중공업은 국내 최초로 독자개발한 전압형 HVDC(200㎿)를 앞세웠는데, LS일렉트릭도 독자개발을 완료한 HVDC 변환용 변압기(500㎿)를 선보이며 기 싸움을 벌였다. HD현대일렉트릭은 친환경 절연유를 사용한 전력변압기 등 차세대 전력기기 라인업을 선보였다.
전력기기 업계가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사업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총사업비만 11조 5000억 원이 투입되는 '대어'(大漁)이기 때문이다. 2040년 목표인 'U자형 전국 전력망 건설' 프로젝트까지 합치면 시장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세계 시장 규모는 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HVDC 시장은 2024년 15조 6000억 원에서 2030년 23조 1000억 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은 현재 히타치(스웨덴), 지멘스(독일), GE(미국)가 약 90% 점유율을 독식하고 있다. 국산화에 성공하면 이 틈새를 파고들 여력이 생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전날(27일) WEC 2025 기조연설에서 AI 산업 발달로 2035년까지 전력 사용량이 현재보다 6배 증가할 것으로 분석한 IEA 보고서를 언급하며 "세계는 전기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매년 세계적으로 발전 부문에 1조 달러(약 1400조 원)가 투자되는 데 비해 전력망 투자는 4000억 달러(약 560조 원)에 그친다"면서 "데이터센터 건설에 2년이 필요하지만, 송전망 구축에는 8년이 걸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에너지가 없으면 AI도 없다"고 슈퍼 그리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dongchoi89@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