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촉발한 '전력인프라' 전쟁…'장투' 지주사 몸값 뛴다

AI, 포털 검색보다 전기 10배 사용…美·中 빅테크 '전력 수급' 사활
SK, 지주사 주도 전력 인프라 장기 투자…국내 1위 전기 체력 길러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인공지능(AI) 산업 황금기가 도래하면서 든든한 '전력 인프라'를 갖춘 지주회사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AI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일찌감치 에너지 공급망의 중요성을 알아채고 지주사 체제 아래 긴 호흡으로 '전기 체력'을 길러왔던 SK그룹과 GS그룹, 포스코그룹이 최근 주목 받는 이유다.

구글 검색보다 10배 전기 먹는 AI…빅테크, 전력 수급 사활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데이터센터 구동에 필요한 전력량이 오는 2030년 945테라와트시(TWh)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한국 전체의 연간 전력 소비량(2023년 기준 557TWh)을 훌쩍 웃도는 수준이자, 460TWh이던 2022년보다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전력 소모량이 수직 상승하는 건 AI 때문이다. 구글 검색을 1회 사용할 때 필요한 전력량은 평균 0.3Wh이다. 반면 챗GPT 등 생성형 AI 모델은 검색당 2.9Wh의 전력을 소모한다. 포털 사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연산을 하는 만큼, 전력도 10배 가까이 잡아먹는 셈이다.

미국 전력연구소(EPRI)는 AI 검색 기능이 구글 검색에 통합되면 1회 검색에 필요한 전력량이 최대 30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AI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연산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구조다. AI에 '전기 먹는 하마'라는 꼬리표가 붙은 배경이다.

AI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중국 IT 기업들이 '전력 인프라'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충분한 전력 인프라가 없이는 AI 사업도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어서다.

구글은 핵융합 스타트업 TAE 테크놀로지스,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사 카이로스파워, 지열 발전 스타트업 페르보 등에 수억 달러를 투자했고, 최근엔 글로벌 자산운용사 브룩필드와 30억 달러 규모의 수력발전 전력 구매 계약도 체결했다.

오픈AI도 핵심 전력 인프라 스타트업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며 전력 수급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브룩필드와 손잡고 2030년까지 10.5기가와트(GW) 규모의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를 투자했고, 메타도 콘스텔레이션과 20년짜리 전력 공급계약을 맺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는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서부 내륙에 풍력·태양광 기반의 친환경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자가발전 및 마이크로그리드(소규모 독립형 전력망)를 통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는 추세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울산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20/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발전소·SMR 사업자 몸값 고공 행진…韓, SK그룹 초격차

글로벌 빅테크들이 '전력 공급자'에 앞다퉈 러브콜을 보내면서 든든한 에너지 인프라를 갖춘 기업들의 몸값도 고공 상승 중이다. SK그룹 등 지주사 주도로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장기간 공들인 소수 기업이 AI 시대에 들어 '초격차' 발판을 딛게 됐다는 평가다.

발전소, 송전망, SMR 등 에너지 인프라 사업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지만 수익 회수에는 장기간이 필요해 지주사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사업으로 꼽힌다. 실제 국내 3대 민간발전사업자인 SK이노베이션 E&S, GS EPS,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은 모두 지주사 산하 기업들이다.

SK그룹 지주사인 ㈜SK(034730)가 대표적 사례다. SK가 최근 글로벌 클라우드 1위인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울산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 건립 계약을 맺은 배경에는 AI 생태계 육성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꾸준히 강화해 온 SK㈜의 포트폴리오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SK㈜는 지난해부터 저성장 사업을 정리하고 AI 등 고성장이 예상되는 유망 사업을 집중 육성하는 '리밸런싱'(재조정)을 추진 중이다. 궁극적으로 AI·반도체·신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설루션을 그룹의 3대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SK㈜와 SK이노베이션(096770)은 지난 2022년 4세대 SMR 선두 주자인 미국 테라파워에 공동으로 약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주요주주 지위를 확보하기도 했다. SMR은 송배전망의 추가 확충이 필요 없이 데이터센터 인근에 건설할 수 있어 AI 시대의 핵심 전력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E&S가 5G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용량을 갖춘 국내 최대 민간개발사업자인 점도 시너지를 기대하는 대목이다. SK그룹은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가상발전소(VPP), 그리드 설루션, 분산 자원 설루션 등 에너지 설루션 분야에서도 국내 1위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한화(000880)의 자회사 한화솔루션(009830)도 미국 조지아주에 5.1GW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공장을 가동 중이며, 연말 생산 돌입을 목표로 3.3GW 규모의 잉곳·웨이퍼·셀 공장을 건설 중이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확대가 실적으로 이어지면서 올해에만 주가가 두 배 넘게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다수 빅테크의 전력 파트너인 브룩필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송전망 등 기존에 보유한 전력 인프라에 더해 최근 데이터센터 건설로 사업을 넓히고 있고, 일본 소프트뱅크도 전력 인프라 사업에 뛰어드는 추세"라며 "AI 시대에 대비해 전력 인프라에 장기 투자한 지주사들이 약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