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 日보다 4.5배 많은데…소재·장비 절반은 '외산'

지난해 韓 반도체 생산 123조원…일본은 30조원 미만
소재 국산화율 50% 수준…지난해 장비수입 日비중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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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주성호 기자 =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라는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해 국내 산업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시장에서 소재 및 장비의 절반은 외산 제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를 포함한 반도체 제품 생산 규모는 우리나라가 지난해 123조원으로 30조원에도 못 미친 일본보다 4.5배 이상 많지만, 반도체 제조 장비와 소재의 절반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을만큼 생태계가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3일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 생산액은 122조9084억원으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를 포함한 집적회로 생산 규모는 2017년부터 시작된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5년 전인 2013년과 비교하면 127.9% 급증한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금액기준으로 2013년 15.5%에서 지난해 23.8%까지 확대됐다.

같은 기간 일본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JEITA)에 따르면 일본의 IC 생산액은 2조6987억엔(약 29조1000억원)에서 2조7364억엔(약 29조5000억원)으로 1.4% 증가하는데 그쳤다. 일본의 IC 생산 5년간 성장률은 41%로 나타났다. 한국의 IC 생산은 2013년 일본의 2.8배에서 지난해에 4.5배까지 증가했다.

한국의 반도체 제품이 D램과 낸드 중심의 메모리에 치중돼 있다 하더라도 생산 규모만으로는 일본의 4배 이상에 달할만큼 시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매출액 기준 세계 10대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가 1위, SK하이닉스 3위를 차지하며 한국 업체 2곳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단 한곳도 랭크되지 못했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장비와 소재산업을 놓고 살펴보면 상황은 반전된다. 노광, 식각, 증착 등 반도체 핵심 공정에 필요한 장비의 80% 이상을 해외 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 점유율은 3.6%에 불과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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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반도체 장비 시장 국가별 점유율은 미국이 44.7%로 1위이며 일본이 28.2%로 2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50%를 기록할 만큼 반도체 장비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차지했으나 미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장비 산업 지원에 나서며 점유율이 다소 낮아져 30%대를 오르내리는 수준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는 노광 분야에서 니콘과 캐논이 있으며 증착과 식각 분야에선 도쿄 일렉트론을 꼽을 수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 6월 발간한 '반도체 장비·소재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이 미국과 함께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앞선 것은 한국보다 일찍 반도체 산업 자체가 발전하면서 선제적으로 진출해 M&A(인수합병)를 통한 사업포트폴리오 강화와 대형화를 통해 과점구도가 형성된 덕분으로 보인다.

이번에 일본이 '경제보복'의 무기로 삼은 반도체 소재 산업에서도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한 수준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은 산화·노광·식각·증착 등을 언급하는 '전공정' 분야와 패키징을 다루는 '후공정' 분야로 나뉜다. 이 중에서 전공정 소재가 전체 반도체 소재산업의 약 60%를 차지한다.

반도체 전공정 소재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18%)이 실리콘 웨이퍼인데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일본기업이 차지한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실리콘 웨이퍼는 일본 신에츠, Sumco가 각각 30%, 27%로 업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사인 SK실트론은 10%대로 업계 5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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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 1일 발표한 '對韓(대한) 수출' 규제강화 리스트에 포함된 포토리지스트(Photoresist)는 노광 공정에서 빛을 인식하는 감광재로 쓰이는데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포토레지스터 시장의 99%를 일본 업체가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반도체용 차단재(78%), 반도체 봉지재(80%) 등의 전공정 재료가 일본산 제품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시장 중 최대 규모인 실리콘 웨이퍼를 일본 기업이 60% 가량 차지하며 포토마스크 등 기타 소재시장도 일본이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들이 있으나 우리나라 기업들의 장비산업 경쟁력은 세계 최고의 60% 후반 수준으로 전해진다. 그나마도 증착 분야에선 글로벌 최고 기업 대비 기술수준이 90%까지 높아지고 부품 국산화도 60% 가량 이뤄졌다. 하지만 노광 분야에선 네덜란드의 ASML, 일본의 니콘, 캐논 등이 장비 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국내 기업의 기술준은 10%에 불과하고 부품 국산화는 사실상 '제로'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도 50%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중에서 전공정 소재 부문에서 국산화 비중이 46%로 후공정 소재(56%)에 비해 낮다. 노광 공정에서 포토마스크의 기술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 대비 35%에 불과하며 원천기술이 부재해 해외 의존도가 높은 실정이다.

이처럼 취약한 반도체 장비·소재 부문 생태계의 모습은 지난해 무역규모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한국무역협회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155억달러, 수출액은 35억달러로 무역수지 12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휴대폰 수출액(146억달러)보다도 많은 규모다. 반도체 장비 수입국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일본(45%)이며 네덜란드(25%), 미국(24%) 순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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