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골목 감성으로 브랜드 체화…서촌으로 가는 패션·뷰티

자하문로 일대 출점 경쟁 치열…임대료도 두 배로 '껑충'
아디다스부터 프로-스펙스까지…로컬과 브랜드의 결합

프로-스펙스·몽벨 서촌 플래그십 스토어(왼쪽)와 살로몬 서촌 매장 ⓒ 뉴스1 박혜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열 군데에서 전화가 왔어요. 경쟁자가 너무 많으니까 가격을 확 올려서 얘기했죠. 그러면 팔겠다고 했더니 진짜 한 시간 만에 현금을 보내더라고요.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에서 약 40년간 '효자골프'를 운영해 온 A 씨는 16일 뉴스1과 만나 최근 건물을 매각한 과정을 이같이 설명했다.

올해 초 경영난으로 매장을 축소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건물을 내놓자 패션·뷰티 브랜드들의 연락이 잇따랐다고 한다.

효자골프가 자리했던 곳은 약 60평 규모의 단층 건물이다. 남향인 데다 최근 서촌에서도 브랜드 매장이 몰리고 있는 자하문로10길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수십억 원을 주고 이 건물을 사들인 곳은 한 화장품 브랜드 업체였다.

A 씨는 "옛날에는 굉장히 침체된 골목이었는데 6개월에서 1년 전부터 많이 활성화됐고 임대료도 크게 올랐다"며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니까 제품이 얼마나 판매되느냐뿐 아니라 일단 매장을 내고 브랜드를 알리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서촌 자하문로10길 거리 ⓒ 뉴스1 박혜연 기자
200m 골목에 올해만 6곳…패션·뷰티 '서촌 러시'

패션·뷰티업계가 서촌으로 몰리고 있다.

최근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부터 국내 패션·뷰티 업체까지 잇달아 서촌에 매장을 내면서 관광객과 젊은 소비자를 잡기 위한 출점 경쟁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서촌과 경복궁을 잇는 자하문로10길은 약 200m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지만 올해에만 최소 6개의 패션 관련 매장이 새로 들어섰다.

지난 2월 아디다스의 러닝 특화 매장 '아디다스 퍼포먼스 서촌'이 문을 연 데 이어 4월에는 살로몬의 트레일러닝 전문 매장과 프렌치 감성 여성복 브랜드 로라로라가 들어섰다.

이달에는 프로-스펙스와 몽벨, 러닝화 전문 브랜드 마운트투코스트가 매장을 열었다.

여성복 브랜드 '로라로라'(왼쪽)와 아디다스 퍼포먼스 서촌 매장 내부 ⓒ 뉴스1 박혜연 기자

뷰티 브랜드도 가세했다.

에스티로더그룹의 니치 향수 브랜드 르 라보가 최근 이 길에 서촌점을 열었다. 이미 로레알그룹의 뷰티 브랜드 이솝과 벨기에 기반 아로마테라피 브랜드 프라나롬도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변으로 범위를 넓히면 더일마와 지이크, 모노하, 아트 이프 액츠 등 최근 2~3년 사이 들어선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도 밀집해 있다.

브랜드들이 잇따라 진입하면서 한때 오래된 상점과 주택이 자리했던 서촌 골목의 풍경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한옥·골목이 곧 콘텐츠…'서촌에서만 가능한 매장'

패션·뷰티 브랜드가 서촌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유동인구 증가 때문만은 아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한옥, 오래된 낮은 주택이 남아 있는 서촌 특유의 풍경을 브랜드 정체성과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성수동처럼 대형 플래그십과 팝업스토어가 밀집한 상권과 달리 서촌에서는 기존 건물과 골목의 분위기를 살려 매장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경복궁 등 전통 관광지와 함께 서울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브랜드들이 서촌을 주목하는 이유다.

더일마 서촌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인테리어(왼쪽)와 아디다스 서촌 매장 단독 상품 ⓒ 뉴스1 박혜연 기자

실제 뉴스1이 둘러본 서촌의 패션·뷰티 매장 상당수는 나무와 돌 등 자연 소재를 활용하거나 한옥의 요소를 살린 인테리어를 통해 한국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었다.

아디다스 퍼포먼스 서촌 매장은 태극기와 호랑이, 용 그래픽 등을 적용한 한국 단독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더일마는 한옥을 개조해 쇼룸을 조성했다.

글로벌 브랜드가 이미 만들어진 매장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서촌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상품과 공간에 적극적으로 녹이고 있는 셈이다.

살로몬 서촌 매장 러닝용품 진열대(왼쪽)와 옆 뷰티 브랜드 프레나롬 러닝 이벤트 ⓒ 뉴스1 박혜연 기자
경복궁 '러닝 성지' 부상…스포츠 브랜드도 몰렸다

최근에는 경복궁 일대가 러닝 코스로 인기를 끌면서 스포츠 브랜드들의 서촌 진출도 두드러지고 있다.

아디다스와 살로몬에 이어 프로-스펙스, 마운트투코스트 등이 잇달아 자하문로 일대에 매장을 낸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단순히 러닝화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러너들이 매장을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체험 요소도 강화하고 있다.

프로-스펙스는 서촌 매장에서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춘천마라톤 80주년 기념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살로몬은 러너들을 위한 탈의실과 사물함을 갖추고 주변 러닝 코스를 추천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업계 관계자는 "성수동이나 강남과 같은 대형 상권과 달리 서촌은 유동인구뿐 아니라 '자연 속 도심'이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며 "브랜드 철학과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다른 상권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