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없는' 韓바이오산업 '방향타' 잃었나

[뉴스1 창사 2주년 기획] 창조경제 로드맵을 짜자
바이오산업 성장동력 육성 '역부족'

최근 '역대 최대' 규모 의약품 리베이트 적발로 의사 수백명이 수사 대상에 오르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의사협회 회관에서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가운데)과 대한의학회 김동익 회장(오른쪽)이 의약품 리베이트 단절을 선언하는 의료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3.2.4/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바이오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하자,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화이자, 머크, BMS 등 다국적 제약사들은 10여년전부터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로 개발방향을 전환하며 발빠르게 대응하고 나섰다. 반면 국내 제약사들은 바이오의약 사업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다국적 제약사들과 국내 제약사들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8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세계 바이오 시장규모는 2010년 기준 246조원에 달한다. 같은기간 국내 바이오 시장규모는 6조1600억원으로, 전세계 바이오 시장의 2.81%에 불과하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2015년까지 연평균 9.6%씩 성장하는 세계 바이오 시장에서 한국 바이오 시장은 연평균 18.4%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같은 전망이 현실화되면, 국내 바이오 시장규모는 2015년에 14조3300억원으로 늘어나, 전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1%로 늘어나게 된다.

◇국내 제약사가 바이오의약품 개발? '배보다 배꼽'

그러나 바이오 산업을 이끌어나갈 국내 제약사들의 상황은 너무 열악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한 국내 제약사는 230여개. 이 가운데 매출 1조원이 넘는 제약사는 동아제약이 유일하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본부장은 "바이오의약품에 제대로 투자하기 위해서는 매출 1조원이 넘는 제약사가 적어도 3~4개는 돼야 하는데, 국내는 1곳 뿐이어서 적극적인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자금이 부족한 제약사들이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적일리 만무하다. 통상 바이오의약품을 하나 개발해서 시판되기까지 대략 1조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우선 바이오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는데 최소 10억원 이상이 들어가고, 이 후보물질의 안정성 테스트를 위해 진행되는 임상실험이 최소 3단계는 거쳐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최소 3000억원이다. '임상1상~임상2상~임상3상'의 단계마다 1000억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임상3상을 통과했다고 해도 바이오신약에 대한 허가승인을 받고 이를 판매할 마케팅을 구축하는데 최소 3000억원이 든다. 여기에 바이오신약 생산설비를 갖추는데 3000억~5000억원이 소요되므로, 개발에서 생산 판매까지 적어도 1조원 이상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개발부터 공장 설립까지 총 1조원을 투자했다.

국내 제약업체 1위인 동아제약의 연간 순이익은 1000억원. 10년동안 벌어들인 수익을 한푼도 안쓰고 바이오신약 개발에 모두 쏟아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매출 1조원도 안되는 국내 제약사들이 한해 수천억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바이오의약 개발에 나선다는 것은 '생존을 건 도박'이나 진배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제약사들은 복제약(제네릭의약품) 판매로 손쉽게 돈을 버는데 급급한 모습이다. 그나마 벌어들인 수익은 미래산업인 바이오신약 개발에 투자하기는 커녕 판매 리베이트 자금으로 탕진하면서 오히려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어버렸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신약을 개발하려면 수천억원이 들지만, 제네릭의약품은 생동성실험만 하면 되기 때문에 1~2억원밖에 들지않는다"면서 "여기서 생긴 수익은 리베이트로 모두 쓰고나선 이제와서 '못살겠다'며 리베이트 규제와 약가인하 정책을 펴는 정부를 향해 불평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들도 앞다퉈 진출...그러나

자금력이 막강한 대기업들은 어떨까. 3~4년전부터 삼성, 한화, LG 등 대기업이 바이오의약산업에 뛰어들었지만 초라한 성적표만 남기고 말았다.

삼성그룹은 2009년 신수종 사업으로 바이오의약을 선정하고 2011년 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해 오는 7월부터 계약생산대행(CMO)에 나선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분 85%를 소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 개발된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한다는 전략이지만 아직 개발에 성공한 바이오시밀러는 없다. 2011년 식약처(당시 식약청)로부터 항암제, 관절염 치료제로 쓰이는 '맙테라'의 바이오시밀러 임상 승인을 받고 개발을 진행해왔으나 이마저도 중단된 상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삼성같은 글로벌 기업이 바이오의약산업에 뛰어들었을 때에는 다국적 제약사와의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국내 제약산업의 덩치를 키워줄 것으로 기대했다"며 "하지만 삼성은 소극적 투자로 국내 제약시장을 나눠먹기 하는데 그치고 있다"고 했다.

국내 바이오벤처들이 개발한 물질 가운데 상품성 있는 연구결과를 찾으려고 하지만 다국적 제약사들이 이미 대부분 사들인 상태다. 게다가 연구개발에 성공한 바이오신약이 임상단계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이 임상2상 이상을 통과한 신약을 사들이는 것으로 방향을 수정해 기술개발 이전도 쉽지 않게 됐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기술개발로 투자 자본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막히면서 국내 제약사들의 투자 부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연구개발 이후 허가승인이 났다고 해도 해외 시장을 상대로 마케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LG생명과학은 '팩티브'로 국내 최초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얻었지만 연매출액이 2000억원에 불과하다. 바이오신약 개발과 마케팅은 별개 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유다.

셀트리온이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개발에 성공하고 유럽 허가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지분 매각을 선언해 회사가 도덕성 논란에 빠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본부장은 "제약사가 연구개발에 성공하는 것과 펀딩 자금을 모으고 해외시장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는 것은 별도로 봐야 한다"며 "국내 제약사가 기술력으로 신약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이후 상황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꽉막힌' 제약사간 M&A...정부 지원은 '겉돌아'

그렇다면, '인간수명 100세 시대'의 미래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바이오산업을 이대로 방치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국내 제약사들의 덩치를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국내 제약사들의 대부분은 수십년간 오너 친정체제로 경영해오다보니 M&A에 대해 부정적인 성향이 강하다. 게다가 제약사들은 저마다 서로 비슷한 기술과 제품을 가지고 있어서, 합병을 하더라도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도 M&A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다.

결국 정부가 나서 대폭적인 지원으로 바이오신약 개발에 나설 제약사를 육성해야 하는데, 정부의 지원정책은 겉돌고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은 연간 2~3억원 수준이어서 신약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신약개발역량이 있는 기업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나눠주기식 지원책만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내 일원화되지 않은 허가절차도 문제다. 약품 한가지를 허가신청하려면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동일한 허가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거치는데 족히 1년이 걸린다. 예를 들어 합성의약품은 제재별로 항목이 나눠져 있지만 바이오의약품은 같은 제재라 하더라도 생산공장이 다르면 동일한 물질로 취급하지 않아 이중으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나의 실험이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허가 당국자로부터 면밀히 확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체계화되지 않은 예산집행도 문제다. 교육부는 바이오의약 관련 대학과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제약사를 대상으로 개발비를 지원하고 있다. 바이오제약을 산업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지원 예산도 턱없이 적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바이오의약에 대한 인식이 낮아 보건복지부의 예산안 신청을 거절하기 일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을 발족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발족한지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성과가 없는 것은 문제"라며 "빨리 성과를 보여라"고 압박을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에는 최소 10년이 걸리고, 비용도 조 단위로 들어가는데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 정서상 신약개발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기에는 여러가지 위험요소가 많다"고 우려했다.

l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