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걸렸던 실차 테스트, 10분으로 단축"…현대차·기아 '신무기'

[르포]남양연구소 고성능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첫 공개
1㎜ 도로 데이터, 노면 진동 재현…와이어카로 제어기 검증

1일 현대자동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공개한 고성능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모습. 영국 장비 제작사 앤서블 모션의 하드웨어 '델타 시리즈'에 남양연구소가 축적한 도로 데이터가 접목돼 실차 테스트를 가상 환경에서 대신할 수 있다(현대자동차그룹 제공). 2026.7.1.

(화성=뉴스1) 김성식 기자

#높이 5m, 화각 240도에 달하는 거대한 곡면 스크린 앞에 제네시스 준대형 세단 'G80' 1열 내부를 구현한 콕핏(조종실)이 바닥 레일과 연결돼 공중에 떠 있었다. 스크린에는 남양연구소 주행시험장이 한눈에 펼쳐졌다.

주행 평가가 시작되자 스크린 속 도로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연구원이 스티어링 휠(운전대)을 왼쪽·오른쪽으로 꺾자 콕핏 전체가 좌우로 움직였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에는 콕핏이 상하로 출렁였다.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나 투박한 시멘트 바닥에 들어서니 타이어 마찰음과 노면의 미세한 진동까지 콕핏에 그대로 전달됐다.

지난 1일 경기 화성 소재 현대자동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마주한 고성능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모습이다. 약 1년간 시범 테스트 기간을 거쳐 지난 2월 연구소에 정식 도입됐다. 해당 시뮬레이터가 취재진에게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필영 주행성능개발팀 책임연구원은 "실차 제작 없이도 신차를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지난 10년간 고민한 산물"이라며 "도로 위 운전 상황을 가상 환경에 구현해 차량의 주행 성능을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라고 설명했다.

1일 현대자동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공개한 고성능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콕핏(조종석)의 모습. 제네시스 준대형 세단 'G80' 1열이 그대로 구현됐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영국 장비 제작사 앤서블 모션의 하드웨어 '델타 시리즈'에 남양연구소가 축적한 도로 데이터가 접목돼 실차 테스트를 가상 환경에서 대신할 수 있다(현대자동차그룹 제공). 2026.7.1.
1㎜급 도로 데이터, '지형 서버'로 먹통 없이 구현…하루 걸릴 실차 테스트, 10분으로 단축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하드웨어는 영국 장비 제작사 앤서블 모션의 '델타 시리즈'를 들여왔다. 이를 통해 전후, 좌우, 상하의 직선 운동과 롤(Roll), 피치(Pitch), 요(Yaw) 등 회전 운동까지 총 6가지 콕핏 움직임을 정밀하게 구현했다. 여기에 더해 270도의 곡면 스크린은 4K의 초고해상도와 240Hz의 주사율로 선명하고 부드러운 화면을 제공한다.

그러나 가상 주행에 사용되는 각종 도로 관련 소프트웨어들은 남양연구소가 축적한 데이터로 고도화했다는 게 정 책임의 설명이다. 정 책임은 "수개월간 유럽, 북미, 호주 등 세계 곳곳의 도로 수백㎞를 라이다를 활용해 1㎜ 단위로 스캔했다"며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1㎝ 단위로 스캔한 것과 다르다. 1㎝ 단위 도로 데이터에선 느낄 수 없었던 노면의 미세한 진동까지 그대로 재현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용량이다. 테라바이트(TB)급 도로 데이터를 한꺼번에 불러오면 지금의 통신 속도로는 시뮬레이터와의 교신에 과부하가 발생해 구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1㎜급 도로 데이터 스캔을 주저한 이유다. 남양연구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지형 서버'(Terrain Server) 방식을 적용했다. 가상 주행 위치 주변의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교신을 최적화해 먹통이나 지연 없이 자연스러운 구동이 가능하다.

앞으로 드라이빙 시뮬레이터가 신차 개발에 적극 활용되면 신차 개발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정 책임은 "실차 테스트를 진행할 때는 실험값을 얻기 위해 관련 부품을 교체하다 보면 하루에 한·두 차종밖에 진행하지 못하지만,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상에서는 부품 교환 대신 소프트웨어상 관련 설정값만 바꿔주면 되기 때문에 하루 걸릴 테스트 시간이 10분으로 단축된다"고 말했다. 해외 현대차·기아 연구소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글로벌 공동 차량 개발도 가능해진다.

1일 현대자동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공개한 '와이어카'(Wire-car)의 모습. 차량 구조의 테스트 벤치 위에 와이어링과 제어기, 전장 부품을 그대로 연결해 각종 제어기(ECU)의 성능을 가상 공간에서 검증한다(현대자동차그룹 제공). 2026.7.1.
와이어카, 실차 대비 제어기 문제 파악 용이…전방충돌방지보조 테스트도 안전하게 반복

차량의 각종 부품을 전자적으로 제어하는 제어기(ECU)를 검증할 때도 가상 공간을 활용했다. 이날 또 다른 연구동엔 차량 구조의 테스트 벤치 위에 와이어링과 제어기, 전장 부품을 그대로 연결한 '와이어카'(Wire-car)가 자리했다. 와이어카는 차량 전체의 전기·전자 시스템을 실물 하드웨어로 구현한 검증 플랫폼이다. 남양연구소는 2019년부터 제어기 검증 과정에 와이어카를 활용하고 있다.

김상연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파트장은 "시험차가 제작되기 전, 와이어카가 차량 전체 시스템을 연결해 기능과 통신, 진단을 검증한다"며 "문제점 발생 시 실차에선 트림 내부에 위치한 제어기를 탈거해야 하지만 와이어카에선 이러한 과정이 생략돼 빠르게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와이어카를 활용해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관련 제어기 기능 검증 과정을 시연했다. 레이더 타깃 시뮬레이터를 통해 마치 물체가 와이어카 앞에 있는 것처럼 신호를 송출하고, 가상의 주행 이미지를 와이어카 카메라에 제공하면, ADAS 제어기가 상황에 맞게 관련 기능을 켜고 끄는 형태다.

와이어카에 앉은 연구원이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가상의 차선을 이탈하려고 스티어링 휠을 꺾자 스티어링 휠을 원위치로 돌리는 차선이탈방지 기능이 작동했다. 또한 주행 중 가상의 차가 갑자기 화면에 들어서자 차량이 경고음을 내며 자동으로 감속하는 전방충돌방지보조 기능이 활성화됐다. 시연을 끝낸 연구원은 "전방충돌방지보조의 경우 안전상 실차 테스트에선 반복해서 검증하기 어려운데, 가상환경을 통해 극복했다"고 말했다.

1일 현대자동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공개한 '와이어카'(Wire-car)의 모습. 차량 구조의 테스트 벤치 위에 와이어링과 제어기, 전장 부품을 그대로 연결해 각종 제어기(ECU)의 성능을 가상 공간에서 검증한다(현대자동차그룹 제공). 2026.7.1.

seongs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