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즉시연금 소송' 자존심 구긴 금감원…이겨도 불안한 생보사
보험사, 즉시연금 미지급 보험금 1조원 지급 피해…2000억원 과징금에 불안
금감원, 금융사 당대 첫 소송에서 '패소'…'불완전판매' 정황 찾아낸다
-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생명보험사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한 즉시연금 미지급 소송에서 승소했다. '즉시연금 사태'는 금감원이 금융사를 상대로 한 첫 소송전이다. 이에 금감원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들여다보기 위해 각 생보사를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했다. 만약 검사를 통해 불완전판매 정황이 포착될 경우 금감원은 생보사에 약 20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지난 7년간의 즉시연금 소송 결과 패소한 금감원은 자존심을 구겼고, 승소한 보험사는 과징금 압박에 불안감이 커졌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법원 1·2부는 삼성생명,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고객들이 각각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즉시연금 보험금 소송 상고심에서 보험사 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즉시연금 상품의 목적·구조와 거래 관행, 가입설계서에 보험 유형별로 생존연금의 예시금액이 기재돼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보험약관을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하면, 원고들에게 매월 지급될 생존연금 액수는 본래 산출방법서에서 정한 내용에 따라 산출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이러한 해석이 보험계약의 목적 달성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어느 한쪽 당사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해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보험계약을 무효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보험계약자인 원고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보험계약은 나머지 부분만으로도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결국 피고가 보험계약에 따라 원고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생존연금액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앞선 1심과 2심을 뒤엎은 판결이었다. 앞선 1심 재판부는 "연금월액 산출 방법에 관한 사항은 피고가 명시·설명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고, 산출방법서에서 정한 내용을 명시하는 것과 함께, 연금월액이 어떠한 방법으로 결정되는지 등에 관해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2심 재판부도 "보험약관에 해당 내용이 포함돼 있더라도 복잡한 수학식에 의해 계산하도록 돼 있으므로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원고들이 주장하는 내용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보험사가 복잡한 즉시연금 지급액 계산식에 대해 설명을 충분히 하지 못했지만, 계약은 유효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생보사들은 약 1조 원으로 추정되는 미지급 즉시연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금감원은 법원의 판결을 즉시연금 판매 당시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삼성생명,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등을 대상으로 검사에 나섰다. 이번 금감원 검사는 즉시연금의 판매 경위와 설명 의무 이행 여부를 중심으로 점검을 진행하며, 관련된 내부통제나 상품 설계 방식 등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판결로 보험사는 미지급 즉시연금 1조 원 지급을 피했지만 금감원 검사 이후 이어질 수 있는 과징금, 제재 등의 부담이 커졌다. 삼성·동양·미래에셋·교보생명 등 4개 생보사가 지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판매한 불완전판매 논란 즉시연금 규모가 10조 2553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최종 과징액은 최대 2000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생보업계는 금감원의 검사에 대해 과도하다는 반응이다. 우선 약 10년전 영업현장에서 판매된 상품의 판매경위와 설명 의무 이행 여부를 이제와서 금감원이 검사를 통해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즉시연금이 상품이 출시되고 판매되고, 분쟁과 소송기간 동안 금감원은 보험사를 대상으로 정기검사, 수시검사 등을 실시해 왔는데, 이미 많은 검사로 드러나지 않은 '불완전판매'를 또다시 검사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지난 7년간 법적 공방에서 금감원과 생보사는 보험판매 과정의 약관 설명 범위, 가입설계서 보험금 예시 유효성 등에 즉시연금 판매 경위와 설명 의무 이행 여부에 대해 치열하게 다퉈왔는데, 이 내용을 금감원이 또다시 검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법원의 즉시연금 판결로 패소한 금감원은 자존심을 구겼다. '즉시연금 사태'는 금감원이 민원인의 소송을 지원한 첫 소송전으로, 과거 소비자보호를 내걸며 금융권 검사를 대폭 강화했던 윤석헌 전 금감원장 시절 시작됐다.
현재 참여연대 출신의 이찬진 금감원장 역시 소비자보호를 최우선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은 보험사를 상대로 한 첫 소송에서 '패소'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즉시연금보험은 목돈을 보험료로 한꺼번에 납입하고 시중금리와 연동하는 공시이율로 적립해 그다음 달부터 바로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즉시연금의 종류는 크게 상속형, 종신형, 확장기간형으로 나뉜다. 문제가 된 즉시연금은 상속형 상품이다.
상속형 즉시연금 소비자들은 연금액이 최저보증이율보다 낮다며 금감원에 민원을 넣었고, 보험사는 일정기간 연금에서 사업비를 공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공제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고, 생보사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금감원은 직접적인 소송 당사자는 아니지만 민원인의 소송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생보사를 상대로 '대리 소송전'에 나섰다. 금감원이 금융사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소송 비용과 법률 조언, 자료 제공 등으로 민원인을 지원하는 '소송지원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보험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한 것은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다"라며 "다만 법원에서 보험사의 불완전판매를 지적한 만큼 소송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금감원은 보험사의 불완전판매 정황을 확보해야만 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jcp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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