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리밸런싱 '딜레마'…상승장엔 못 팔고, 하락장엔 못 사고

외국인 12.7조 팔 때 개인이 받아…연기금 매수는 월말 집중
김성주 "증시 방어 목적 아냐…매일 4000억 팔면 시장 충격"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 뉴스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국민연금이 상반기 국내 주식 리밸런싱(자산 재배분)을 7월부터 재개했지만 증시가 급락과 급반등을 거듭하면서 운용상 딜레마가 부각되고 있다. 높은 국내주식 비중을 유지한 채 하락장을 맞으면서 적극적인 추가 매수에 나설 공간은 상대적으로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기금 평가액은 1848조 7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국내 주식은 543조 6000억 원으로 전체의 29.4%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263조 7000억 원과 비교하면 다섯 달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 수익률은 106.76%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주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평가액과 비중이 함께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체 기금 수익률도 26.18%에 달했다.

이에 따라 5월 말 국내 주식 비중은 올해 목표 비중 20.8%는 물론 전략적자산배분(SAA) 허용범위를 적용한 상단 26.8%도 웃돌았다. 전술적자산배분(TAA) 허용범위까지 합산한 28.8%도 소폭 넘어선 수준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을 대규모로 매도할 경우 증시에 미칠 충격을 줄이기 위해 리밸런싱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한 뒤 7월부터 재개했다. 리밸런싱은 가격 상승으로 비중이 커진 자산을 줄이고 비중이 작아진 자산을 늘려 포트폴리오의 위험 수준을 조절하는 절차다.

이후 코스피가 급락하면서 국내 주식 비중도 작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31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001.89포인트(17.91%) 오른 6595.45로 마쳤지만 5월 말과 비교하면 22.2% 낮은 수준이다.

5월 말 국내 주식 평가액에 지수 변동률을 단순 적용하면 지난달 31일 기준 국내 주식 평가액은 약 423조 원으로 추산된다. 국내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 자산의 가치가 그대로라고 가정하면 전체 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4.5%다. 목표 비중 20.8%보다는 높지만 SAA 허용범위 안으로 내려온 셈이다.

코스피 지수가 역사상 처음으로 2거래일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한 7월 29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종가가 나오고 있다. 2026.7.29 ⓒ 뉴스1 김성진 기자

시장 일각에서는 상반기 리밸런싱 유예가 결과적으로 투자 수익률 면에서는 손해가 됐다. 상승장에서 비중을 일부 줄였다면 급락장에서 활용할 매수 여력도 더 컸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무라증권도 최근 증시 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미리 줄여놓지 못한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신디 박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국내 자산 배분 비중이 현실적인 한계 수준에 근접하면서 기관의 추가적인 수급 지원이 약화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리밸런싱이 재개된 7월 한 달간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 등은 급락 이후 매수 규모를 확대했지만 그 이전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 국면에서는 핵심 매수 주체로 나서지 않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 등은 7월 유가증권시장에서 9955억 원을 순매수했다. 다만 매수는 월말 급락 이후에 집중됐다. 7월 1일부터 27일까지 외국인이 12조 7311억 원을 순매도하는 동안 개인은 12조 7413억 원을 순매수했지만 연기금 등은 40억 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 매물을 사실상 개인이 받아낸 셈이다.

이후 연기금 등은 같은 달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9995억 원을 순매수하며 매수 강도를 높였다. 다만 28일에는 외국인의 4조 5261억 원 순매도를 개인이 4조 3152억 원 순매수로 대부분 소화했고, 30~31일에는 개인 매도 물량을 외국인이 주로 받아냈다. 급락 이후에도 연기금 등이 시장 수급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다만 국민연금은 증시 방어나 단기적인 수급 지원이 기금 운용의 목적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MBC 라디오 '뉴스하이킥'에서 "국민연금은 증시 부양이나 주가 방어가 목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반기 리밸런싱 유예에 대해서는 "자산 배분 기준에 따라 매도에 들어갔다면 매일 4000억 원 이상을 팔아야 했다"며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리밸런싱을 그대로 집행했다면 증시에 상당한 부담을 줬을 수 있어 유예 결정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며 "다만 국내 주식 비중이 높은 상태에서 급등락장이 이어진 만큼 시장 충격을 줄이면서 하락장 대응 여력도 확보할 수 있는 운용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