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가 뭐길래 기업들이 소각하나요? [손엄지의 주식살롱]
지분율 20%→50% 확대되는 '자사주의 마법', 이제는 안 돼
국민연금, 자사주 소각 대신 보유 선택한 기업 안건에 반대표
- 손엄지 기자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자사주란 기업이 이미 발행한 자기 회사의 주식을 거래소 등에서 직접 사들여 보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 뉴스에서 '자사주 소각'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들리죠? 삼성전자(005930)는 연내 16조 원, SK그룹은 5조 원어치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회삿돈 들여 산 주식을 왜 없애는 걸까요? 오늘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핵심 키워드인 '자사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원래 주식은 기업이 사업 자금을 모으기 위해 투자자에게 파는 겁니다. 그런데 장사를 잘해서 회사에 현금이 쌓이면 반대로 시장에 풀린 주식을 다시 사 오기도 합니다. 이걸 자사주 매입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주식을 회사가 매수하는 순간 자사주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됩니다. 주주인데 배당을 못 받고, 경영 의사결정을 하는 의결권도 없습니다. 회사가 필요할 때 쓰려고 금고 속에 넣어두는 셈입니다.
만약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남아있는 주식의 가치는 더 커집니다. 예컨대 기업 가치가 1000만 원이고 주식이 10주라면 한 주의 가치는 100만 원입니다. 그런데 회사가 자사주 2주를 사서 소각해버리면 기업 가치는 그대로인데 주식 수만 줄고, 한 주당 가격은 125만 원으로 껑충 뛰게 됩니다.
자사주 매입은 나중에 다시 팔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소각은 "다시는 시장에 내놓지 않겠다"는 확실한 주주환원 약속이라 주가에 훨씬 큰 호재가 됩니다.
사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쟁여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 때문인데요. 대표적으로 기업을 쪼개는 인적 분할을 할 때, 자사주를 활용하면 대주주가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꼼수가 가능했거든요.
A라는 회사가 자사주 10%를 들고 있고, 대주주는 지분 20%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인적 분할은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 그대로 신설 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입니다. A사가 'A홀딩스'와 'A사업회사'로 쪼개지면, 대주주는 두 회사 주식을 각각 20%씩 똑같이 갖게 됩니다.
여기서 마법이 시작됩니다. 원래 자사주(10%)는 의결권이 없는 '잠자는 주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쪼개지면서 존속법인인 'A홀딩스'가 신설법인인 'A사업회사'의 주식을 발행할 때, 자신이 보유했던 자사주 10%에 대해서도 신주를 배정해 버립니다. A홀딩스는 가만히 앉아서 A사업회사 주식 10%를 가지게 됩니다.
이후 대주주는 유상증자 등의 방식을 통해 본인이 들고 있던 'A사업회사' 주식 20%를 'A홀딩스'에 갖다줍니다. 그 대가로 'A홀딩스'의 신주를 새로 받습니다. 대주주는 A홀딩스의 지분이 20%에서 40~50%로 늘어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A그룹은 '대주주→A홀딩스→A사업회사'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가 완성됩니다. 대주주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A그룹의 지배력을 공고히했습니다. 만약 이해가 어렵다면 과거 현대중공업(329180)(현 HD현대)의 지주사 전환 과정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올해 제3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 마법이 풀렸습니다. 새로 산 자사주는 1년 내 소각이 원칙이고, 인적 분할 시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는 꼼수가 금지됐습니다.
이제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용 '방패'가 아니라, 주주에게 가치를 돌려주는 '환원 도구'로 완전히 체질 개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기업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다.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의 목적'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자사주를 보유할 수 있도록 정관을 바꾸고 있거든요.
이에 대해 국민연금이 깐깐하게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습니다. CJ대한통운(000120), SK이노베이션(096770) 등이 자사주 소각 대신 내세운 예외 조항들이 상법 개정 취지에 어긋난다며 반대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화끈하게 소각을 결정한 기업들도 많습니다. 삼성전자, SK그룹은 물론 지난 27일에는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대표가 직접 200억 원 규모 자사주 매입을 결정하면서 주가는 13% 넘게 올랐습니다.
다만 중소기업에서는 앓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주가 부양 목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기보다 임직원 보상 등 핵심 인재 확보에 활용하는 게 주주 가치에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당장 올해 먹고살 자금도 빠듯한 중소기업엔 자사주 소각은 여전히 부담인 것으로 보입니다.
e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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